지난해 심은 명이나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이것들이 불쑥불쑥 사방에서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있어 매일 들여다보면서 싹을 기다리는 것들은 쉽게 모습을 안 드러내는데, 오히려 잊고 있던 이것들은 쑥 자라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신통방통한 명이나물 새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렇게 불쑥 새순을 내민 명이나물을 보고 문득 어젯밤 아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몇 마디 재촉하는 말을 했더니 아들은 믿고 기다리세요, 그래야 제가 스스로 성장하지요, 라고 말했다. 자식과의 관계야말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쉽지 않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보지 않고 있다 보면 명이나물이 이렇게 쑥 새순을 내밀듯 달라진, 그래서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몇 마디 재촉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가까운 이가 아들 앞에서 아들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아들 앞에서 처음에는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라고 말했다. 계속 봐야 할 사람이라 안
설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자 아는 사람이 큭큭 댔다. 명절날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라니. 그는 아마도 조금 어이가 없었던 듯하다. 사실 책방을 시작하고 명절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책방을 목숨 걸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과 함께 있으니 사실은 특별히 문 닫을 일이 없다. 집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책방이 있는 1층과 살림집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퇴근한다. 중간에 내가 집에 올라가는 때는 점심시간뿐인 경우가 많다. 살림은 아침 출근 전이나 저녁 퇴근 후에 한다. 무엇보다 나에게 책방 문을 여닫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 나의 일상은 늘 같다. 명절이라고 해서 나의 일상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 간 모임도 불가능한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명절 아침에도 나는 1층 책방으로 내려와 커피와 빵,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청소를 간단히 하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책방이고 카페지만 이곳은 나의 소중한 작업실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이라고 하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하
비록 프로그램 비중이 경(輕)하다 해도 연 이어져 있는 세 프로(생활의 지혜, 오늘의 요리, 주부 뉴스)를 격일로 방송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이를 갖고 가타부타 불평할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감수하는 밖에 없었다. 아침 방송이 늘었음에도 여성 PD를 뽑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숨 가쁘게 변해왔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나 사회구조, 기계문명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초고속으로 바뀌고 있어 웬만큼 공부해서는 미처 따라가기도 어렵다. 참으로 억울한 것이 기존의 전통 사회를 살아온 7080세대이다. 디지털이 정착되면서 세상의 소통 수단이 달라진 것이다. 모든 기준이 인터넷으로 축약되고 수 없는 웹사이트들에 넘쳐나는 정보들 하며 이 때문에 까닭도 없이 시대의 뒤편에 밀려나, 인터넷도 제대로 못 하고 스마트폰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무지 계층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일이 어찌 억울하지 않은가. 혹여 컴퓨터를 쓰다 문제가 있는듯해서 손을 놓아야 한다거나,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의 활용이 쉽지 않아 닫아버리는 일을 7080세대는 다반사로 겪고 있다. 그때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혹은 속속 알 수 없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공연히 오지랖 넓게 행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말로 무안을 준다고 그 사람들의 행동이 고쳐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도 성인인데다 나름대로의 교양이나 상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갔어도 아무런 잘 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난 체 하거나 지적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을 줄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 거기에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것도 같은 날 아침에 두 번씩이나 그랬다. 내가 교양이 부족해서였는지 어쭙잖게 의협심이 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두 당사자에게 조금 미안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며칠째 계속되던 청명한 날씨가 그날 아침엔 잔뜩 찌푸렸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의 구름이 험상궂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온도 상당히 서늘했지만 운동하기엔 좋았다. 아침 운동 나가는 길에 음식쓰레기를 수거함에 버리고 나오다 아주머니 한 분을 봤다. 그 여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앞 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무안해할 일이었다. ‘이 수도에서는 손만 씻으세요.’ ‘아무리 깨
그가 구름과 비행기, 신호등과 물탱크. 그가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시간은 약 6년. 그동안 찍은 사진은 수천 장에 이른다. 그는 그중 일부를 골라 책을 내고 싶어 했다. 그는 가급적 많은 사진을 넣고 싶다고 했다. 1천여 장의 사진집. 그 많은 사진을 다 넣고 싶은 이유는 매일의 기록, 즉 일기이기 때문이다. 아는 친구가 책을 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오래 한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것은 구름과 비행기, 그리고 신호등과 물탱크였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걷다 구름이 있으면 핸드폰을 꺼냈고, 비행기 소리가 나면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땅을 보고 걷는 것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매일 달랐다. 하늘의 표정은 구름으로 인해 변화무쌍했다. 구름은 단 한 번도 같은 표정을 한 적이 없다. 구름은 하늘의 특권이었다. 특히나 저녁 하늘은 그의 마음을 언제나 앗아갔다.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은 그를 어디에서나 멈추게 했다. 중학교 시절, 집에 갈 때마다 그는 쓸쓸하다고 느꼈다. 쓸쓸해서 하늘을 바라본 것인지, 저녁 하늘 때문에 쓸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독서 이야기가 아닌 일상에 관한 반복적인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서로 주고받을 농담이 이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해서 오늘 직장 동기와의 모임에 안 갔어요. 너 나중에 후회한다는 협박을 받았는데 이러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까 봐 내심 걱정도 됩니다. 제가 왜 이런 걸까요?"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가 이런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50대 중반인 그는 요즘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가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은 이제 1년 6개월 정도. 그는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는 게 좋겠다 싶어 많은 검색 끝에 유명 작가와 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주로 권해준 책은 자기계발서. 독서 모임에 함께했던 이들은 젊은이들. 그는 그 모임을 통해서 2, 30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책 읽기에 빠졌다. 더욱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었던 그는 역시 검색 끝에 우리 시골책방에서도 독서 모임을 한다는 걸 알고 찾아왔다. 함께한 지 이제 9개월째. 그새 그는 유명작가의 독서 모임을 그만두고 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해는 희망을 줍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는 해는 아름답습니다. 도시의 건물 사이로 치솟는 해님이 내뿜는 찬란한 광채가 뜨겁게 느껴집니다. 유리알처럼 파란 하늘로 뻗은 가느다란 가지에 조롱조롱 달린 앙증맞은 새빨간 열매들이 귀엽습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목화송이처럼 다시 하얗게 피었습니다.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는 하늘의 변화는 경이롭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고 사람들의 각종 추태가 보기 싫지만, 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날마다 바라보는 똑같은 자연이지만 느낌은 항상 다르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붉게, 다른 때는 푸르게, 또 다른 날엔 희거나 검게 변하는 하늘도 신비롭습니다. 앙상한 모습으로 추위에 떨며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도 예쁩니다. 다가올 여름의 무성한 푸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침햇살을 받아 목화꽃처럼 핀 억새와 이름모를 빨간 열매가 겨울추위를 녹여줍니다. 정말 오랜만에 겨울다운 추위가 찾아온 새해 벽두입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잠시 잊고 있었던 동장군의 건재를 알리는 아침입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는 해가 장엄합니다. 그 해가 솟기 전부
내가 형님과 함께 식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지난 추석 때였다. 온 가족이 모인 날 형님은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온갖 추억들을 살려내어 옛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막냇동생과 함께 약속드렸다. ‘형님 건강이 조금만 더 좋아지시면 모시고 고향에 가겠다’고. 마침 올해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막내가 새 차를 샀기에 그 차로 모시겠다고 했다. 형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3형제가 함께 가게 됐다고 좋아하셨다. 몇 해 전 12월 29일 저녁 9시,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마당. 한겨울 밤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그 시각 나는 맏형님과 손을 잡고 기념관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81세인 형님은 14살 아래인 내 손이 따뜻해서 좋다고 하셨다. 나도 형님의 온기를 꼭 잡은 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그 형님이 귀향하셨다. 6·25전쟁 전 서울로 유학 온 후 군대 복무 3년, 해외 근무 4년을 제외하고 계속 서울에서 사셨던 분이다. 그런 형님이 이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으로 완전히 귀향하셨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3세. 형님은 매우 건강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80살을 넘기면서 급격히
다른 사람들은 어떤 대화들을 나눌까. 남편과 내가 하는 대화란 고작 시사 토크가 전부다. 그는 언제나 그의 관심이 쏠려있는 시사 문제 외엔 내게 특별히 할 말이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도 반갑고 고마워 열심히 경청하면서 응대한다. 그것도 안 한다면 그는 온종일 누구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본디 말수가 많은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다. 말수가 많은 사람을 흔히 다변한 달변가라 한다면 말수가 적은 사람에 대해서는 눌변(訥辯)이라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편인가 하면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재미있게 말할 줄도 모르거니와 평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달까, 꺼린 달까, 아무튼 좋게 말하면 말을 절약한다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화제에 인색하여 자칫 어리숙하다는 얘기도 들을 만하다. 그런데 남편 역시 아주 말이 적은 편이어서 우리는 살면서 그닥 많은 말을 해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젊어서는 서로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노년에 들어서는 바쁜 것도 아니면서 서로 말이 별로 없으니 아주 재미없는 커플인 셈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눈빛 하나, 표정 하나, 동작 하나 손끝 발끝
어느 날 오후, 스물셋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로 5번째 수능. 그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 내년에도 수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담담했다. 안쓰러운 마음을 그래서 내비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었다. 이제까지 다섯 번째예요. 다시 해보려고요. 힘드냐고요? 당연히 힘들죠.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학원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열 번도 넘게 수능 시험을 본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은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이어서 매년 시험을 봤지만, 저는 군대도 가야 하니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요. 항상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치르는데 올해도 마지막이 안 되네요. 내년에도 다시 해야겠어요. 부모님 때문이냐고요? 그렇긴 하지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넌 의대를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의대를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어요.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하는 건 아니었고요. 그런 애들은 따로 있더라고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성적이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성적이 있어요. 그건 개인의 노력이 아니에요. 공부도 일종의 재능인 거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세한도’라는 작품명에는 ‘고난과 역경에도 변함없이 오랫동안 서로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다는 것을 겨울이 온 뒤에야 알게 되는 법(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그 해의 추운 겨울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고 했다. 즉 사람들이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의 모습을 보면 군자인지 소인인지를 가늠할 수 있으니, 급할 때라도 차근히 생각하고 처신을 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그의 이 같은 가르침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현혹되지 않고, 온전한 사람다움을 갖추면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보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 있구나"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 세한도(歲寒圖)에 이 뜻을 담아 오늘날 그 가치를 높여준다. 추사 김정희는 19세기 조선 시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50대 에 이르러 종2품 벼슬까지 오르며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치적 풍랑에 휘말려 제주도 유배형에 처해진다.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
그렇게 불안에 떨며 꼬박 나흘이 지나갔다. 마침내 36.5도! 월요일 아침의 체온이었다. 나 자신, 아니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길었다고도 할 시간이었다. 무서운 암 검사 후 건강판정 결과를 받기까지의 시간도 이보다는 덜 하지 않았을까? 이날따라 동쪽 하늘의 일출광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입천장과 코 안쪽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침을 삼키려니 목구멍 쪽에서 뜨끔거리며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틀 전 낮에 10여 명이 만나 떠들며 식사하고 자리 옮겨 맥주까지 한 잔 했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혹시 코로나에 감염된 게 아닐까? 엄습하는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강해지던 12월 3일 점심 무렵의 일이다. 전날 저녁 때부터 코가 약간 가려워지며 미열이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체온을 재보니 36.7∼36.9도를 오락가락 했다. 집사람에게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볼까 물어봤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기다려 보자고 했다. 집에 비치돼 있는 코감기 약을 먹고 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열도 정상으로 내렸
무릇 세속적인 출세나 성공, 혹은 명예란 얼마나 슬픈 이름의 영예인가. 슬픈 이름의 영예―, 그것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얼굴, 위선에 찬 표정만큼이나 슬프다. 그러니 내 그것들을 위해 찬양할 까닭이나 탐할 까닭이 하나도 없지 아니한가. 나는 세상에서 무릇 출세한 이들을 결코 선망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무릇 성공한 이들을 결코 추종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무릇 이름을 떨친 이들을 결코 존경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대뜸 나에게 화살을 겨누리라. 그것은 네가 이를테면 세상에서 그들만큼 출세하지 못했으며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름을 떨치지 못한 까닭이 아니겠느냐. 그 때문에 그들을 투기하며 시기하며 혐오하며 외면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서 결코 그들만큼 출세하지 못했으며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름을 떨치지 못했으니 그런 공격을 받는다면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살면서 특히 어떤 이들을 선호하며 어떤 이들을 선호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긴 하나 자신의 소견대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마땅치 않게 바라보며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런 그들이 아름답지
콜린스가 선정한 2020 올해의 단어 1위는 ‘봉쇄(Lockdown)’다. 봉쇄는 코로나 대유행을 한마디로 반영하고, 작년보다 검색 수가 60배나 뛰어넘을 정도로 인터넷매체나 TV 방송 등에서 많이 언급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휴직 또는 일시 해고(Furlough)’다. 이 단어는 코로나19 때문에 각국의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TOP10 중 7번째로 선정한 우리말 ‘먹방(Mukbang)’이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내외 언론, 학술단체들이 한해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를 앞 다퉈 선정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이 단어의 사용 빈도는 12개월 동안 11% 정도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9년 한반도에는 엄청난 미세먼지가 뒤덮였던 해여서 문자 그대로 ‘기후 비상‘이었다. 서울에서만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14차례 발령됐고, 미세먼지 관측 이래 한 번도 없던 '초미세먼지 경보'도 두 차례나 있었다. 실제로 '기후 비상사태'라는 용어의 사용이 최근
노후 준비는 빠를수록 좋으며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늦어도 55세 전에는 노후 준비 막차를 타야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인생의 3분의 1인 30년이라는 긴 기간입니다. 일찍부터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55세 이후로 인생이 요동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득 크레바스 없이 탄탄하게 준비하시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출처] 퇴사 및 은퇴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 소득 크레바스를 넘어라 | 작성자 고려의 혼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얼어붙은 빙판이 깨져 틈이 벌어진 크레바스(Crevasse)는 탐험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빙하 아래쪽 경사가 급할수록 크레바스는 험하다. 보통 너비 20m 정도에 길이는 수백m에 달한다. 경사가 완만한 사면에는 눈이 덮여 알아볼 수 없는 ‘히든 크레바스(Hidden crevasse)’도 숨어있어 빠지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이처럼 빙하지대에서만 쓰던 크레파스라는 용어가 일상 속에 파고들어,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라고 부른다. 직장에서는 ‘은퇴 크레바스’로도 통하는데, 한국 직장인의 경우 50대 중반에 은퇴해 60대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