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시인 임후남은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사, 웅진씽크빅 등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시골책방입니다', '아들과 클래식을 듣다',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가 있다.

 

"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독서 이야기가 아닌 일상에 관한 반복적인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서로 주고받을 농담이 이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해서 오늘 직장 동기와의 모임에 안 갔어요. 너 나중에 후회한다는 협박을 받았는데 이러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까 봐 내심 걱정도 됩니다. 제가 왜 이런 걸까요?"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가 이런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50대 중반인 그는 요즘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가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은 이제 1년 6개월 정도.

 

그는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는 게 좋겠다 싶어 많은 검색 끝에 유명 작가와 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주로 권해준 책은 자기계발서. 독서 모임에 함께했던 이들은 젊은이들. 그는 그 모임을 통해서 2, 30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책 읽기에 빠졌다.

 

더욱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었던 그는 역시 검색 끝에 우리 시골책방에서도 독서 모임을 한다는 걸 알고 찾아왔다. 함께한 지 이제 9개월째. 그새 그는 유명작가의 독서 모임을 그만두고 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결과 결국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골책방의 독서 목록은 주로 문학과 인문 서적이다. 이 목록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과 별개다. 책방지기인 내가 읽은 책 중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을 나름 ‘엄선’해서 고른다. 그러다 보니 사실 책 고르기가 쉽지 않다. 책이란 것은 따지고 보면 대단히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해도 다 같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내 취향대로 고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고르면 독서 모임을 할 수 없다는 단순함이다.

 

최근 함께 읽은 책은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었다.

“작가님, <그냥, 사람>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고 눈물 나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사람>은 장애인 야학교사였던 홍은전 씨가 강자에 의해 가려진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쓴 글로 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책을 읽어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1천 권 독서법>을 쓴 전안나 작가는 책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우울증을 극복한 것은 물론, 계속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며, 연 수백 회의 강연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직업인 사회지도사를 그대로 하면서.

 

전안나 작가 같은 경우는 매우 특별하다. 책을 읽는다고 모두 다 작가가 되거나 강의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깊어지는 순간이 온다.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독서 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변화되는 것을 느껴요. 나는 스스로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나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종일 책을 읽다 보면 어깨도 아프고 힘들죠. 다른 것도 하고 싶고. 그런데도 책을 읽고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자부심도 생겨요. 무엇보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요.”

 

1년 6개월 동안 그가 읽은 책은 180여 권. 한 달 평균 10권을 읽은 셈이다. 적지 않은 권 수다. 이러다 보니 그는 급기야 친구들에게 야유 아닌 야유,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처럼 덜컥 겁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다 정말 내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모임에 나가자니 그곳에서의 수다가 지루하다. 자식 이야기, 아파트 시세, 주식 투자, 피부 관리, 맛집 등등. 그러다 주변의 아는 사람 이야기 등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들의 반복. 그렇다고 뜬금없이 책 이야기를 하기도 뭣하고. 사실 이미 그는 변한 것이다. 책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즐거운데 그 책 이야기를 맘 놓고 할 수 있는 곳은 독서 모임뿐이다. 그러니 독서 모임이 가장 좋을밖에.

 

 

나는 책 읽기는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 번도 독서 모임을 해본 적이 없다. 책방에 독서 모임이 있으면 좋다고 말할 때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독서 모임을 하지 않을 이유는 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해진 요일마다 모임을 하게 되는 얽매임이 싫었다. 그리고 내가 뭔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을 책방답게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여전히 이곳에 누가 올까,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시작한 독서 모임이 지금은 고정 회원이 생겼다. 그리고 독서 모임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느낀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내가 발견한 지점을 다른 사람은 미처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독서 모임은 보다 입체적으로 책을 보게 한다. 토론 형식이 아니라 각자 읽은 감상을 말하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그러다 서로 다른 지점이 생기면 그것으로 또 서로의 생각들을 말한다.

 

사실 독서 모임은 무엇보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어딘가에 가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이 책 좀 읽으라고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그 책 갖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사실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책 수다가 제일 즐거운 일인 것은 나도 독서 모임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긴 책뿐 아니다. 영화나 음악, 그림 등 혼자도 좋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수다는 얼마나 즐거운가. 주변에 이런 것으로 수다를 떨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가장 부자가 아닐까. (그런 부자로 살고 싶다!)

 

책 조금 읽는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바뀔 수밖에 없다. 책은 너무나 다양해 어떤 책이 말을 걸어올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책과는 진하게, 어떤 책과는 가볍게 만나다 보면 어느 날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책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빠져 있는데 연예인 이야기며, 성형 이야기며,, 맛집 이야기가, 아파트 시세 이야기가 다 부질없을 수밖에.

 

물론 책만 읽다 보면 이걸 읽어서 뭐 하나, 역시 부질없는 순간도 온다. 그럴 때는 안 읽으면 그만이다.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볼 수 없는 것처럼 책은 너무나 많아 내가 다 읽을 수도 없는 일. 그리고 그쯤 되면 나는 예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는 각자의 때이므로 사실 아무도 모른다. 사는 일처럼. 그러다 어느 날 다시 책이 고파지면 쓱 집어 들면 그만이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결코 마를 일이 없는 바다와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