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좋은신문 창간 때부터 칼럼을 연재해 온 임후남 시인이 최근에 산문집 '나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를 펴냈다. 이 책은 저자가 시골책방을 하면서 직접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가 독자들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가끔 트럭을 타고 오는 할아버지가 계시다. 이런 비밀스러운 곳을 당신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는 분. 처음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내 책장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보다 가셨다. 어느 날 말씀하셨다. “나, 그냥 믹스커피 주면 안 돼요? 통 쓰기만 해서.” 그래서 믹스커피를 드렸다. 우리 카페에 믹스커피가 있는 이유다. 처음에는 3천원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책을 한 권 사셨다. 내 책 <시골책방입니다>였다. 이후 오실 때마다 책을 한 권씩 구입하셨다. 당연히 믹스커피는 서비스가 됐다. 며칠 전 새로 나온 나의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를 사 갖고 가셨다. 그리고 긴 문자가 왔다. 참 좋은 날씨입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기다리며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와 함께하는 시간이 감사합니다. 번뇌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소중한 시
지난 5월 어버이날에 부인이 희한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그날 아침 아들이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며느리가 대화방에서 빠져나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부인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직접 며느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인은 며느리를 다시 대화 방에 초대하고 기지를 발휘해 “아가, 너 전화기 새로 바꾸었니? 네가 대화방에서 나갔다는 메시지가 떴네”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니 며느리가 또다시 대화방에서 퇴장해 버렸더란다. 얼마 전 친구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는 현재 대학교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입담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좋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모두가 자연스레 즐거움에 빨려든다. 그런데 이날 그의 표정엔 평소와 달리 뭔가 난처한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술잔이 몇 잔 오간 후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의 알 수 없는 행동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TV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인 그는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 때문에 대인관계가 매우 원만하다. 그런 그가 자기 집안일로 속을 썩인다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학 시절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한 그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못 믿을 게 따로 있지!” “왜 말이 안 됩니까? 짐을 다 내가야 돈 드리는 게 맞지요!” “그렇게만 고집하면 안 되지요.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2년 전 딸네 집 근처로 전세를 얻어 왔었다. 계약이 만료돼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었던 일들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같은 사안을 두고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가히 절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전세 계약 기간이 석 달쯤 남았던 어느 날 집주인 여자가 연락했다. 우리도 계약연장 여부를 물어보려던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집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우리더러 계약 기간 만료 후 3개월만 더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네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우리의 계약 기간 만료일보다 3개월쯤 뒤라는 것이다. 참말로 자기들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차질 없이 전세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사람값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어린이가 아닌 어른에게는 어른에 해당하는 만큼의 어른 값도 있지 않겠는가. 어른이기가 버거운 까닭은 그 어른값을 다하고 있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그 때문에 '어쩌다 어른'임을 겁내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날 때 방송 프로를 돌리다 보니 한 번은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유념해 본 일이 있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공개방송 형식의 1인 토크 프로다. 이즈음의 방송 프로를 보면 한 마디로 수준 미달이랄까,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공중파니, 종편, 케이블방송 등으로 방송국은 수도 없이 늘어났는데 채널마다 똑같은 연예인, 혹은 똑같은 패널들이 나와 온통 먹고 놀고 수다 떨기가 극악을 부리며 경쟁한다. 수다 떨기의 질도 갈수록 저질이다. 방송이 이래도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방송에 대한 이야기, 혹은 그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란 제목이 던져주는 포괄적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 미팅에서의 일이다. 나이 차가 다소 있는 선후배 전직 직장 동료들이 구성원이다. 미팅에선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건강 얘기들이 흔한 화제로 오른다. 그런데 그날
동네 할아버지들이 책방에 오는 게 나는 참 좋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그분들이 서점을 갔던 적은 먼 옛날일 것이다. 카페야 어쩌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갈 수는 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더욱이 이런 작은 책방을 모시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가로운 시골책방의 어느 봄날.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왔다. 막걸리를 한 잔씩 걸쳐 모두 얼굴이 불콰했다. 이곳에서 자라고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었다. 한 분은 언젠가 한 번 동창회를 마치고 책방에 들러 차 한 잔씩을 하고 돌아갔고, 한 분은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온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한 분만 들어왔다. 다른 두 분과 달리 얼굴이 낯설었다. 시골책방에 불콰한 얼굴로 들어온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코로나 19로 방명록 작성이 필수라 먼저 작성을 부탁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글씨 몰라. 좀 이따 글씨 잘 쓰는 사람 올 테니 그 사람보고 쓰라고 하면 돼.” 그제야 나는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글씨를 잘 쓴다는 할아버지와 다른 한 분이 같이 들어왔다. 낯이 익은 분들이었다. 비로소 경계심이 확 풀렸다. “아무거나 그냥 주셔. 맛있는
지난해 심은 명이나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이것들이 불쑥불쑥 사방에서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있어 매일 들여다보면서 싹을 기다리는 것들은 쉽게 모습을 안 드러내는데, 오히려 잊고 있던 이것들은 쑥 자라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신통방통한 명이나물 새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렇게 불쑥 새순을 내민 명이나물을 보고 문득 어젯밤 아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몇 마디 재촉하는 말을 했더니 아들은 믿고 기다리세요, 그래야 제가 스스로 성장하지요, 라고 말했다. 자식과의 관계야말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쉽지 않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보지 않고 있다 보면 명이나물이 이렇게 쑥 새순을 내밀듯 달라진, 그래서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몇 마디 재촉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가까운 이가 아들 앞에서 아들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아들 앞에서 처음에는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라고 말했다. 계속 봐야 할 사람이라 안
설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자 아는 사람이 큭큭 댔다. 명절날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라니. 그는 아마도 조금 어이가 없었던 듯하다. 사실 책방을 시작하고 명절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책방을 목숨 걸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과 함께 있으니 사실은 특별히 문 닫을 일이 없다. 집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책방이 있는 1층과 살림집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퇴근한다. 중간에 내가 집에 올라가는 때는 점심시간뿐인 경우가 많다. 살림은 아침 출근 전이나 저녁 퇴근 후에 한다. 무엇보다 나에게 책방 문을 여닫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 나의 일상은 늘 같다. 명절이라고 해서 나의 일상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 간 모임도 불가능한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명절 아침에도 나는 1층 책방으로 내려와 커피와 빵,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청소를 간단히 하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책방이고 카페지만 이곳은 나의 소중한 작업실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이라고 하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하
비록 프로그램 비중이 경(輕)하다 해도 연 이어져 있는 세 프로(생활의 지혜, 오늘의 요리, 주부 뉴스)를 격일로 방송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이를 갖고 가타부타 불평할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감수하는 밖에 없었다. 아침 방송이 늘었음에도 여성 PD를 뽑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숨 가쁘게 변해왔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나 사회구조, 기계문명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초고속으로 바뀌고 있어 웬만큼 공부해서는 미처 따라가기도 어렵다. 참으로 억울한 것이 기존의 전통 사회를 살아온 7080세대이다. 디지털이 정착되면서 세상의 소통 수단이 달라진 것이다. 모든 기준이 인터넷으로 축약되고 수 없는 웹사이트들에 넘쳐나는 정보들 하며 이 때문에 까닭도 없이 시대의 뒤편에 밀려나, 인터넷도 제대로 못 하고 스마트폰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무지 계층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일이 어찌 억울하지 않은가. 혹여 컴퓨터를 쓰다 문제가 있는듯해서 손을 놓아야 한다거나,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의 활용이 쉽지 않아 닫아버리는 일을 7080세대는 다반사로 겪고 있다. 그때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혹은 속속 알 수 없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공연히 오지랖 넓게 행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말로 무안을 준다고 그 사람들의 행동이 고쳐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도 성인인데다 나름대로의 교양이나 상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갔어도 아무런 잘 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난 체 하거나 지적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을 줄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 거기에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것도 같은 날 아침에 두 번씩이나 그랬다. 내가 교양이 부족해서였는지 어쭙잖게 의협심이 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두 당사자에게 조금 미안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며칠째 계속되던 청명한 날씨가 그날 아침엔 잔뜩 찌푸렸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의 구름이 험상궂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온도 상당히 서늘했지만 운동하기엔 좋았다. 아침 운동 나가는 길에 음식쓰레기를 수거함에 버리고 나오다 아주머니 한 분을 봤다. 그 여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앞 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무안해할 일이었다. ‘이 수도에서는 손만 씻으세요.’ ‘아무리 깨
그가 구름과 비행기, 신호등과 물탱크. 그가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시간은 약 6년. 그동안 찍은 사진은 수천 장에 이른다. 그는 그중 일부를 골라 책을 내고 싶어 했다. 그는 가급적 많은 사진을 넣고 싶다고 했다. 1천여 장의 사진집. 그 많은 사진을 다 넣고 싶은 이유는 매일의 기록, 즉 일기이기 때문이다. 아는 친구가 책을 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오래 한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것은 구름과 비행기, 그리고 신호등과 물탱크였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걷다 구름이 있으면 핸드폰을 꺼냈고, 비행기 소리가 나면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땅을 보고 걷는 것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매일 달랐다. 하늘의 표정은 구름으로 인해 변화무쌍했다. 구름은 단 한 번도 같은 표정을 한 적이 없다. 구름은 하늘의 특권이었다. 특히나 저녁 하늘은 그의 마음을 언제나 앗아갔다.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은 그를 어디에서나 멈추게 했다. 중학교 시절, 집에 갈 때마다 그는 쓸쓸하다고 느꼈다. 쓸쓸해서 하늘을 바라본 것인지, 저녁 하늘 때문에 쓸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