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형님과 함께 식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지난 추석 때였다. 온 가족이 모인 날 형님은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온갖 추억들을 살려내어 옛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막냇동생과 함께 약속드렸다. ‘형님 건강이 조금만 더 좋아지시면 모시고 고향에 가겠다’고. 마침 올해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막내가 새 차를 샀기에 그 차로 모시겠다고 했다. 형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3형제가 함께 가게 됐다고 좋아하셨다. 몇 해 전 12월 29일 저녁 9시,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마당. 한겨울 밤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그 시각 나는 맏형님과 손을 잡고 기념관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81세인 형님은 14살 아래인 내 손이 따뜻해서 좋다고 하셨다. 나도 형님의 온기를 꼭 잡은 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그 형님이 귀향하셨다. 6·25전쟁 전 서울로 유학 온 후 군대 복무 3년, 해외 근무 4년을 제외하고 계속 서울에서 사셨던 분이다. 그런 형님이 이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으로 완전히 귀향하셨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3세. 형님은 매우 건강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80살을 넘기면서 급격히
다른 사람들은 어떤 대화들을 나눌까. 남편과 내가 하는 대화란 고작 시사 토크가 전부다. 그는 언제나 그의 관심이 쏠려있는 시사 문제 외엔 내게 특별히 할 말이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도 반갑고 고마워 열심히 경청하면서 응대한다. 그것도 안 한다면 그는 온종일 누구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본디 말수가 많은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다. 말수가 많은 사람을 흔히 다변한 달변가라 한다면 말수가 적은 사람에 대해서는 눌변(訥辯)이라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편인가 하면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재미있게 말할 줄도 모르거니와 평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달까, 꺼린 달까, 아무튼 좋게 말하면 말을 절약한다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화제에 인색하여 자칫 어리숙하다는 얘기도 들을 만하다. 그런데 남편 역시 아주 말이 적은 편이어서 우리는 살면서 그닥 많은 말을 해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젊어서는 서로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노년에 들어서는 바쁜 것도 아니면서 서로 말이 별로 없으니 아주 재미없는 커플인 셈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눈빛 하나, 표정 하나, 동작 하나 손끝 발끝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작년이 된 경자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점철된 우울한 해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코로나로 인해 평생에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새해 첫날 존스홉킨스대학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확진자 수는 8천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80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게다가 영국발 신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립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울리던 제야의 종소리도 올해는 취소됐습니다. 행사가 시작된 지 67년 만이라고 합니다. 모두 코로나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은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30여 나라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치료제 개발도 목전에 있다니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를 극복하고 마스크 없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합니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가 극복되더라도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혀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은 바람일 것입니다. 포천좋은신문은 작년 9월 1일 창간했습니다. 해가 바뀌며 벌써 창간
▲티탄으로 가는 길에 성채처럼 솟아있는 자연의 위용. Day-6, Keep Wyoming Wild 지금도 여전히 서부시대로 살아가는 와이오밍주 Riverton의 숙소를 아침 8시에 출발,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scenic drive를 달려 Grand Teton으로 향한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드문 아름다운 황무지가 펼쳐지자, 여기까지 달려온 보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고속도로에서도 가끔 보이던 캐슬이 떠오르면서, 자연이 세운 아름다운 성채 같은 풍경들을 감상한다. 니들이 castle이 뭔지 알어? 라고 인간에게 말하고 있는 듯, 우뚝 솟아있는 자연의 건축물이 장대하고 아름답다. 먼지 속에서 죽을 고생 하며 서부로 가던 개척자들은 이 경치가 아름답다기보다 넘어야 할 고난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2시간쯤 달리니 Duboise라는 이름의, 서부영화 세트장 같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인구 900여 명 사는 이마을의 원래 이름은 건조하고 시원한 날씨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Never sweat(땀이 안 나는 마을)이라고 불렸다. 우체국이 세워지며, 그 이름은 도저히 안 되겠다 하여 그 당시 아이오와 상원의원을 지낸 프랑스계
어느 날 오후, 스물셋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로 5번째 수능. 그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 내년에도 수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담담했다. 안쓰러운 마음을 그래서 내비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었다. 이제까지 다섯 번째예요. 다시 해보려고요. 힘드냐고요? 당연히 힘들죠.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학원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열 번도 넘게 수능 시험을 본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은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이어서 매년 시험을 봤지만, 저는 군대도 가야 하니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요. 항상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치르는데 올해도 마지막이 안 되네요. 내년에도 다시 해야겠어요. 부모님 때문이냐고요? 그렇긴 하지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넌 의대를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의대를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어요. 그렇다고 전교 1등을 하는 건 아니었고요. 그런 애들은 따로 있더라고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성적이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성적이 있어요. 그건 개인의 노력이 아니에요. 공부도 일종의 재능인 거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세한도’라는 작품명에는 ‘고난과 역경에도 변함없이 오랫동안 서로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다는 것을 겨울이 온 뒤에야 알게 되는 법(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그 해의 추운 겨울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고 했다. 즉 사람들이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의 모습을 보면 군자인지 소인인지를 가늠할 수 있으니, 급할 때라도 차근히 생각하고 처신을 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그의 이 같은 가르침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현혹되지 않고, 온전한 사람다움을 갖추면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보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 있구나"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 세한도(歲寒圖)에 이 뜻을 담아 오늘날 그 가치를 높여준다. 추사 김정희는 19세기 조선 시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50대 에 이르러 종2품 벼슬까지 오르며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치적 풍랑에 휘말려 제주도 유배형에 처해진다.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
그렇게 불안에 떨며 꼬박 나흘이 지나갔다. 마침내 36.5도! 월요일 아침의 체온이었다. 나 자신, 아니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길었다고도 할 시간이었다. 무서운 암 검사 후 건강판정 결과를 받기까지의 시간도 이보다는 덜 하지 않았을까? 이날따라 동쪽 하늘의 일출광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입천장과 코 안쪽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침을 삼키려니 목구멍 쪽에서 뜨끔거리며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틀 전 낮에 10여 명이 만나 떠들며 식사하고 자리 옮겨 맥주까지 한 잔 했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혹시 코로나에 감염된 게 아닐까? 엄습하는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강해지던 12월 3일 점심 무렵의 일이다. 전날 저녁 때부터 코가 약간 가려워지며 미열이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체온을 재보니 36.7∼36.9도를 오락가락 했다. 집사람에게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볼까 물어봤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기다려 보자고 했다. 집에 비치돼 있는 코감기 약을 먹고 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열도 정상으로 내렸
무릇 세속적인 출세나 성공, 혹은 명예란 얼마나 슬픈 이름의 영예인가. 슬픈 이름의 영예―, 그것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얼굴, 위선에 찬 표정만큼이나 슬프다. 그러니 내 그것들을 위해 찬양할 까닭이나 탐할 까닭이 하나도 없지 아니한가. 나는 세상에서 무릇 출세한 이들을 결코 선망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무릇 성공한 이들을 결코 추종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무릇 이름을 떨친 이들을 결코 존경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대뜸 나에게 화살을 겨누리라. 그것은 네가 이를테면 세상에서 그들만큼 출세하지 못했으며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름을 떨치지 못한 까닭이 아니겠느냐. 그 때문에 그들을 투기하며 시기하며 혐오하며 외면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서 결코 그들만큼 출세하지 못했으며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름을 떨치지 못했으니 그런 공격을 받는다면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살면서 특히 어떤 이들을 선호하며 어떤 이들을 선호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긴 하나 자신의 소견대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마땅치 않게 바라보며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런 그들이 아름답지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워렌 버핏이 사는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그의 집은 너무나 소박해서 유명하다. Day-4, 나의 버전으로 "Nebraska" 영화를 찍다. 오늘은 7시간 동안 네브래스카 땅만 달렸다. 7시간 달려야 겨우 횡단하는 넓은 땅에, 인구 180만 명이 사니까 인구밀도 희박함이 에베레스트 산소 수준 동네다. Nebraska는 인디언 언어로, 평평한 물, Omaha는 절벽 위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부족의 이름이라고 한다. 작년에 너무 재미있게 본 영화, Nebraska를 생각나게 하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은 내 버전으로, 영화 Nebraska를 머릿속으로 찍었다.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 Omaha에서 유숙한 호텔을 나서는데, 아침부터 90도 찍고도 사정없이 올라가는 불볕더위다. 짐 가지고 먼저 내려간 남편이, 왜 안 내려오나 하고 기다릴 것 같아서 샴푸 한 머리가 젖은 채로 로비로 내려오니 호텔 정문 앞 명당에 주차해놨던, 꽃바구니 머리에 인 우리 차가 안 보인다. 효율적으로 시간 쓰려고 혼자 주유소에 갔나 하며, 젖은 머리를 더운 바깥 공기로 말리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유소
콜린스가 선정한 2020 올해의 단어 1위는 ‘봉쇄(Lockdown)’다. 봉쇄는 코로나 대유행을 한마디로 반영하고, 작년보다 검색 수가 60배나 뛰어넘을 정도로 인터넷매체나 TV 방송 등에서 많이 언급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휴직 또는 일시 해고(Furlough)’다. 이 단어는 코로나19 때문에 각국의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조치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TOP10 중 7번째로 선정한 우리말 ‘먹방(Mukbang)’이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내외 언론, 학술단체들이 한해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를 앞 다퉈 선정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이 단어의 사용 빈도는 12개월 동안 11% 정도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9년 한반도에는 엄청난 미세먼지가 뒤덮였던 해여서 문자 그대로 ‘기후 비상‘이었다. 서울에서만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14차례 발령됐고, 미세먼지 관측 이래 한 번도 없던 '초미세먼지 경보'도 두 차례나 있었다. 실제로 '기후 비상사태'라는 용어의 사용이 최근
노후 준비는 빠를수록 좋으며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늦어도 55세 전에는 노후 준비 막차를 타야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인생의 3분의 1인 30년이라는 긴 기간입니다. 일찍부터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55세 이후로 인생이 요동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득 크레바스 없이 탄탄하게 준비하시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출처] 퇴사 및 은퇴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 소득 크레바스를 넘어라 | 작성자 고려의 혼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얼어붙은 빙판이 깨져 틈이 벌어진 크레바스(Crevasse)는 탐험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빙하 아래쪽 경사가 급할수록 크레바스는 험하다. 보통 너비 20m 정도에 길이는 수백m에 달한다. 경사가 완만한 사면에는 눈이 덮여 알아볼 수 없는 ‘히든 크레바스(Hidden crevasse)’도 숨어있어 빠지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이처럼 빙하지대에서만 쓰던 크레파스라는 용어가 일상 속에 파고들어,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라고 부른다. 직장에서는 ‘은퇴 크레바스’로도 통하는데, 한국 직장인의 경우 50대 중반에 은퇴해 60대에 들어
광화문에서 목동까지 걸었을 때는 사직터널을 지나 영천시장을 지나고, 연남동과 서교동을 거쳐 양화대교, 선유도공원, 한강 둔치 등으로 길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런 길을 걸을 때는 대로를 따라 걷지 않았다. 골목을 따라 고불고불, 길을 이어나갔으며 어슬렁댔다. 그저 걸으며 어슬렁대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만약 코로나가 끝나고 아이와 여행을 가신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제주올레요.” 얼마 전, 비대면 강의를 했을 때 나온 질문과 답이었다. 이미 시골에 정착한 나와 청년이 된 아들이 제주올레를 다시 걸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툭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그러나 만약 아이가 어리고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제주올레를 택할 것이다. 그날의 강의 내용은 내가 쓴 책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였다. 이 책은 한 신문에 ‘교과서여행’이란 칼럼으로 2년 넘도록 연재한 것을 추려서 낸 책이다. 책 제목과 칼럼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교과와 관계된 곳을 한 번쯤 가보라고 권하는 일종의 여행 정보서다. 주로 초등 사회와 국어 교과와 연계된 곳들이 대부분이다. 책을 낸 입장에서 이 책을 적극적으
D-day, 7월 9일 2015년, 펜실베니아 D-day는 군사용어로 작전 결행의 날이다. 역사적으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가장 센 유명세를 가진 D-day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작전을 결행하고 드디어 긴 여정을 나섰다. 거의 두 달간의 여행을 위해 의식주와 오락거리까지 계획하고 준비해 나가는 과정도 군사 작전급이었다. 막상 워싱턴DC의 집을 떠나 북으로 운전하며 자동차 dash board에서 좔좔 하강 중인 바깥 기온을 보니 성공리에 진행 중인 작전인 것 같았다. 우리 동네는 오늘 90도라고 기상예보에서 들었는데, 오늘 숙박할 오하이오 털리도는 67도였다. 무려 450마일, 7시간을 달렸다. Maryland, Pennsylvania, Ohio로 달리는 동안은 주위에는 푸른 초장과 Alleghany mountain 푸른 숲만 내내 이어졌다.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맥반석 오징어, 닭꼬치, 비빔 국시를 먹어줬음 좋았겠지만, 허접한 햄버거로 허기를 때우고 숙소에 도착하여 집에서 챙겨온 밑반찬에 누룽지를 전자 오븐에 끓여 먹으니 너무 행복하다. 제주도에서 친구가 가져다준 김자반, 내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 볶은 고추장, 오이, 아보카도, 멸치볶음 등등.
보건소 문자에는 기침이나 발열 증상이 있으면 검사하러 나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조건 검사를 받으라는 말이 아니어서 의아했다. ‘증상이 있으면 나와서 검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그것을 문자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라는 이야기인데,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요즘은 무증상자도 많다는데 빨리 가서 검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고, 증상도 없는데 꼭 검사하러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하고 잠시 갈등하며 고민했다. 깜짝 놀랐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직접 겪고 보니 정말 황당했다.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만, ‘왜 하필 나인가’라는 생각에 한동안 당황스러웠다. 나름대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인 12월 6일 밤늦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보건소에서 온 문자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포천시보건소> 11월 28일 ○○ 갤러리 방문자 중 확진자 발생으로 귀하께서는 12월 12일까지 수동 감시대상자로 분리되었습니다. 감시 기간 동안 발열,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나는지 자가 모니터링 부탁드리며, 증상발현 즉시 관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그 첫 종소리를 울리는 구세군 자선냄비(Christams Kettles)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져 올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래한다. 굶주림에 허덕여 슬픈 성탄을 맞이해야만 했던 도시 빈민들을 돕기 위해 구세군(Salvation Army) 사관 한 분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 국솥을 계속 끓게 합시다(Let's keep this soup pot boiling)" 그는 사람들이 붐비는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는 큰 쇠솥을 내 걸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란다. 솥에는 동전과 지폐가 가득 차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할 만큼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웃을 돕기 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질 때면 내 거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정신은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더불어 잘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