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서거(逝去)로 내가 받은 충격은 무슨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막힌다. 어찌해서 그다음 날도 해가 뜨는지, 어찌해서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는지, 납득할 수 없기에 내 가슴은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아버지의 급서(急逝) 비보를 접한 것은 대학 2학년을 막 올라와서였다. 3교시 수업을 하던 중 학생과로 연락이 왔는데 급히 달려가 전화를 받았더니, 사환 학생(아버지가 고교 공부를 시키던)이 울먹이면서 아버지의 부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아서 벌컥 장난하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그 아이가 엉엉 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아침에, 나의 등교와 거의 같은 시간에 아버지는 병원(당시는 아버지 병원이 종로5가에 있었음)으로 가셨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병원에는 간호사도 있었고 급할 때 쓰는 구급약도 있었는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알기로는 아드레날린(당시 일반 병원에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아버지는 의사협회 총무였기 때문에 우리 병원에는 이 약이 구
건국한 지 300년이 채 안 된 신생국 미국이 현대사의 주인공이 되어 버티고 서있는데, 그 나라 연방정부의 행정수도 외곽에서 35년째 살면서도 서울 사람들이 남산 안 가듯, 위싱턴DC 도심에는 관공서에 볼일이 있거나 외지에서 오는 손님 접대차 원이 아니면 별로 드나들지 않고 살아왔다. 오래된 도시라서 우선 주차가 불편하고 이민자로 살아내느라 급급하여 미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숨 가쁘던 일상이 은퇴로 인해 여유가 생기게 되니 역사와 문화 등 인문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바로 옆에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도시가 있다는 것도 요즈음 알게 되었다. 굳이 비행기 타고 시간대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비싼 여행경비 들여가며 구경하러 가는 도시들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많은 면에선 오히려 파리, 런던, 뉴욕 등의 도시들보다 훨씬 우월한 관광지임을 절감하며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재발견하는 중이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정 지역에 영웅이나 천재들이 모여 있으면, 역사는 커다란 전환점을 돌게 되는 것 같다. 삼국지는 고대의 이야기지만 군웅이 활거하며 중원의 역사를 주무른 이야기로 수천 년 지난 요즘도 필독서로 자리하고 있
하늘이 파랗다. 너무 맑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40일이 넘는 긴 장마가 끝나니 태풍이 연이어 왔다. 장마 때 폭우로 부서진 집을 수리하는 중인데 자꾸 멈춘다. 바로 어제도 폭우가 쏟아졌다. 집 공사는 그래서 자꾸 멈춘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폭우, 태풍.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자 그나마 뜸하던 책방의 발길은 뚝 끊겼다. 코로나19 감염 걱정으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오늘 오전에는 갑자기 성인 남성 4명이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그들 역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커피 되나요?” 이런! 한동안 손님이 없다 보니 그만 내가 책방과 카페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것이다. 근처에 볼일을 보러 왔다는 그들은 책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책은 읽기 싫은데 책 있는 데 오니까 좋네.” 이 책 저 책 열심히 살펴보길래 나는 기대에 차서 그들 중 하나라도 책 한 권을 집어 계산대로 갖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희 밖에서 커피 마시고 갈게요.” 흠! 결국
유럽엔 왜 태풍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럽은 태풍이 생기지 않는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 중 풍속이 강한 폭풍우이므로 태풍이 만들어 지는 곳은 대부분 서태평양이나 남중국해이다. 유럽이 태풍과 같은 피해가 없는 것은 내륙지역이어서 큰 바다가 근접해 있지 않고 위도도 높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태풍(Tempest Op. 31-2)> 3악장은 요즘처럼 태풍이 줄이어 몰아칠 때면 한 번쯤 들어볼 만한 걸작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 금방이라도 광풍이 불어올 듯 장엄한 선율이 울려 퍼져 일순 무아의 경지에 말려든다. 전 악장이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곡을 이해하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먼저 읽어보라”고 베토벤이 귀띔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1770년 12월 그가 태어난 나라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에도 태풍(The Tempest)이라곤 없었고 지금도 없다. 태풍은 7~10월 사이에 주로 북태평양 남서부와 아시아 쪽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의 하나인데, 한자 이름 태풍(颱風)의 영어식 발음인 ‘타이푼(Typhoon)’으로도 통한다. 베토벤이 출생한 독일의 라인(Rhine)강 상류에
일주일 되도록 무대응으로 일관, 해명 한마디 없는 대처 방식 문제있다 지난 4일 KBS 보도본부는 9시 뉴스를 통해 포천·가평 지역구 최춘식 국회의원이 불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총선 출마 당시 최 의원이 신고한 재산 명세에는 2013년 말부터 송파구 장지동 소재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아파트가 불법 투기한 것으로 보도된 위례에 있는 보금자리 주택이다. 보금자리 주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도입한 공공 주택으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특별법까지 만들어 시세의 70% 가격에 공급한 아파트다. 주로 좋은 지역에 위치해 이 아파트에 당첨되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소문난 소위 ‘로또 아파트’다. 문제는 이 보도 내용이 나간 뒤 보여준 최춘식 의원 측의 사후처리 방식이다. 포천의 의원 사무실 직원들은 ‘KBS 보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 일에 대해서는 저희는 잘 모른다’, ‘의원님께 전달하겠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국회 사무실 직원과의 통화에서도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KBS 보도 이후 일주일이 지나가도록 최 의원이나 의원 사무실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한마디 해명도 변명
참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혜롭고 영명(英明)하여 우러르게 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으니 모두의 나의 발언은 자칫 어폐가 있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갑자기 암이나 회복 불능의 치명적 병에 걸린 이들이 “왜 나냐”고 비탄의 원망을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 말이 다소는 공소하게 느껴졌다. “왜 나”라니, 그런 상황에 처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 ‘누구도…’ 일 수 있으니 그 말처럼 싱거운 표현이 어디 있는가. (물론 그 정황이 극단의 심사를 드러내려 함인 것을 모르진 않지만) 얼마 전 나는 왼쪽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보행이 어려웠다. 정말 갑자기여서 그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 몇 사람이 퇴행성관절염 같다고 했지만 내 스스로는 퇴행성관절염은 뭘…? 그냥 이러다 낫겠지…, 하면서 두 달 가까이를 흘려보냈다. 그런데 웬걸? 별스럽지 않게 소염진통제를 먹으면서 두 달을 버티어도 좀체 나을 기미가 안보여 병원을 찾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물리적 무게나 부피가 없다고 하지만 스마트 폰의 사이버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 양은 한계가 있다. 마구 찍어 둔 사진들이 쌓이다 보니 그 한계에 육박하고 말았다. 뒷날 좋은 추억거리가 되리라 여기며 지우지 않고 남겨둔 탓이다. 차곡차곡 쌓으며 지내왔다. 뒷날 언젠가 아주 귀하게 쓰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니 멋진 추억까지도 고스란히 상기시켜주리란 믿음 때문이라 해야겠다. 또 어느 때는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 멋지게 사용하리라 생각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하나하나 모우고 저장한 지 어언 5년이 가까워졌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좁은 공간에 참 많이도 쌓아두었다. 그렇게 많이 쌓였을 줄 정말 몰랐다. 그런데 그 분량을 알고 나니 이를 어쩌지 하는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버리지 못하는 것도 마음의 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오래된 것들은 버리면서 살아야 된다는 선험자(先驗者)의 충고를 들어서도 아니다. 비우지 않으면 새것을 들여놓을 수가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처음엔 귀하게 생각됐던 것들도 차츰 뒷 구석에다 쌓아두게 되고 새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오래된 것들을
인신매매와 포르노 금지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 엔(円)의 약식 명령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과 주소가 3년 동안이나 인터넷에 계속 떴다. 이 40대 일본인 남성은 법원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했다. 일본 사이타마(埼玉) 지방법원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의 삭제를 요구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특정인에게 불리한 개인정보의 삭제 요구에 대해 '잊힐 권리'를 명시하고 삭제를 인정한 것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원은 “범죄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과거의 범죄사실이 사회에서 잊힐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성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사이타마 지방법원이 "갱생에 방해받지 않을 이익을 침해받고 있다"며 삭제를 명령했고, 검색사이트 ‘구글(Google)’ 측은 ‘알 권리’를 내세워 법원에 결정 취소를 요구한 상태다. 구글의 가처분 신청과는 상관없이 현재 남성의 체포 기록은 검색에서 더 이상 나오지는 않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경우 '온라인상에서의 잊힐 권리'를 인정하고 피해가 우려되는 개인정보의 삭제를 명령했으나 구글 측은 58%의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프랑스 사제(司祭)도 자신의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이지만, 팬더믹 초기에는 진짜 마스크는 의료인들에 게 양보하고., 각자 집에서 만든 마스크를 쓰라고 권장하던 초라한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낳고 자란 23년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나에게 시민권을 주고 미국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해준 이 나라에 앉아서 나는 망설임 없이 '타향'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2/3되는 시간을 사용해온 영어보다, 아직도 모국어가 편안할뿐 아니라 그동안 뿌리를 옮겨 내리며 살아내느라 바빠서 미국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요즘 코비드 재난을 지나며 절감하며 내가 살아온 이곳은 '타향'이란 생각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난봄, 지구는 다 같이 끙끙 앓아누웠고, 일상을 멈췄으나 공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효과적으로 투입되었는가에 따라서 팬데믹의 피크를 빨리 극복하고 회복기로 접어든 국가들이 많은 것에 비하여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을 지나고 있다. 1975년, 작고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국력의 소모는 물론, 국론의 분열이라는 손실만 안고 패전의 오명을 감수한 것처럼, 지금은 팬데믹 바이러스에
만병일독(萬病一毒)이라는 말이 있다. 만 가지 병이 하나의 독, 곧 피의 오염에서 생긴다는 뜻이다. 지나친 스트레스, 과로, 과식 등 무리한 생활을 하면 교감신경이 긴장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혈관이 수축하게 된다. 또한 이런 생활 습관은 핏속에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적혈구, 혈소판 등을 많이 생성시켜 과잉 영양분, 중간대사 산물과 함께 피를 혼탁하게 만든다. 이런 혼탁한 피가 혈관 속을 흘러가려면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성분처럼 점액도가 높은 찌꺼기들이 혈관 벽 쪽으로 밀려나야만 하는데, 이런 노폐물들이 혈관 내벽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 고지혈증이고, 이것이 심해져서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져 딱딱해지면 동맥경화증이 된다. 고지혈증, 동맥경화증이란 오염된 혼탁한 피가 좁아진 혈관을 효율적으로 흐르도록 하기 위해 노폐물은 혈관 벽에 달라붙게 하고, 비교적 맑은 피는 혈관 중앙 통로로 흘러가도록 생체 스스로가 자구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탄력성이 떨어지고 좁아진 혈관을 통해서 탁한 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골고루 보내려면 심장과 혈관이 불가피하게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고혈압이다. 그러므로 혈압이 올라간 것이 잘못된 게 아니고
대한민국 서울에서 나고 자라 종로구에 주소를 둔 학교들만 내내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결혼해서 바로 미국으로 온 나는, 고향에서 키워졌을 뿐 어른으로는 한국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태평양을 건너온 지 올해로 40년째다. 포토맥강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시를 흐르는 강으로, 내가 사는 동네 이름도 포토맥인데 이곳 한인들에게는 '부뚜막'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포토맥은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는 "백조의 강”이라는 뜻으로, 포토맥은 강둑에 있던 원주민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종로구청 자리에 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 나온 것이 구세대란 증거라니, 그런데도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굳이 이렇게 써야 할 것 같다)를 같이 다녔던 포천좋은신문사의 김승태 편집국장의 초대로, 미국의 행정수도인 워싱턴디시 근교에서 숨어(?) 살던 아낙이, 불특정 다수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기로 어렵사리 마음을 먹었다. 편지는 친근함이 이미 깊어졌거나, 친밀함을 쌓아가고 싶은 상대를 향해 띄우는 소통인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딛고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포천에서 발행되는 지방(지방=시골의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말이다. 캐나다의 문화비평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맥루한은 미디어가 우리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그의 풍부한 연구를 통해 핵심적으로 보여준 미디어 전문가이며 커뮤니케이션의 패턴과 이론을 정립한 문화학자다. 그가 창출한 미디어 이론은 1960년대 커뮤니케이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막강한 사회적 영향을 도출했다. 산업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그가 주창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정신적, 사회적 영향, 즉 인류 역사의 핵심적 전환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발명과 확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핫(hot)'미디어와 ‘쿨(cool)'마디어를 구분, 이들이 대중문화와 광고 마케팅에 미치는 사회적 궤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뉴미디어인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기능, 역기능에 대한 사회적 균형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의 미디어 이론은 60년대 당시의 세상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고 미디어의 공동체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라는 명제를 정립, 미디어의 발전이 문명과 인류에 미칠 영향, 혹은 부적절한
‘포천좋은신문' 창간에 붙여 아쉽게도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에 4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25시(The 25th Hour)'라는 이름의 뜬금없는 영화 간판이 나붙었다. 너무나 생소한 새 영화 ‘25시’는 루마니아 작가인 게오르규(Constantin Gheorghiu)가 1949년에 발표한 소설의 제목인데, 터키 출신의 베르뇌유(Verneuil)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대박이 난 영화다. 작가 게오르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의의 압박을 받던 고국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에 망명한 후 나치와 볼셰비키에 시달리던 약소민족의 설움을 고발했다. 자전적 소설인 '25시'도 역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는 나라들의 운명을 묘사한 작품이어서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다. 특히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술회하고 '한국 찬가(Eloge de la Coree)'를 쓰면서 한국을 5차례나 찾았다. 소설과 영화의 제목으로 소개된 ‘25시’는 하루 24시간이 모두 끝나고도 영원히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는, 이를테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다. 작품에서는 25시는 수사적 의미로 ‘전쟁’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내가 지금 사는 집은 콘크리트 골조에 황토벽돌로 쌓은 집인데 무려 4층이나 된다. 1층은 카페를 겸한 책방이고, 2, 3층은 주거용, 4층은 회의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집을 지은 이는 집을 최대한 친환경으로 집을 짓고자 안팎을 황토벽돌로 쌓았다. 실내도 서까래와 계단 등을 모두 소나무로 마감했다. 말로만 듣던 황토집에 직접 살아보니 황토집이 얼마나 좋은지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지난여름,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황토벽돌이 무너져내렸다. 비가 계속 오다 보니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중벽 중 외벽이 무너졌으니 그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물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서 간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물은 얕은 곳을 향해 흐르다 틈이 있는 곳에서 뚝뚝 떨어졌다. 벽을 타고 들어온 물은 천정에서도 떨어지고, 바닥을 흥건하게 했다. 심지어 카페와 책방에도 물이 떨어지고 이곳저곳이 물천지였다. 젖은 책은 버리고, 흥건한 물은 퍼냈다. 그런데도 비는 계속 왔다. 한 달여간 생활은 조금 엉망이었다. 벽에서 띄워놓은 가재도구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고, 무너진 벽에 쳐놓은 커다란 비닐 천막은 흉흉했다. 다행히 책방 안은 큰 불편이 없었다. 가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