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심은 명이나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이것들이 불쑥불쑥 사방에서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있어 매일 들여다보면서 싹을 기다리는 것들은 쉽게 모습을 안 드러내는데, 오히려 잊고 있던 이것들은 쑥 자라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신통방통한 명이나물 새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렇게 불쑥 새순을 내민 명이나물을 보고 문득 어젯밤 아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몇 마디 재촉하는 말을 했더니 아들은 믿고 기다리세요, 그래야 제가 스스로 성장하지요, 라고 말했다. 자식과의 관계야말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쉽지 않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보지 않고 있다 보면 명이나물이 이렇게 쑥 새순을 내밀듯 달라진, 그래서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몇 마디 재촉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가까운 이가 아들 앞에서 아들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아들 앞에서 처음에는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라고 말했다. 계속 봐야 할 사람이라 안
Day-19 & Day-20 Mental bootcamp 여행은 정신력 훈련장 여행은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은 것을 우리에게 채워준다. 여행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 물질, 동반자, 시간... 등 그 모든 것을 이고 앉은 기본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본다. 마음에 어두움이 짙어서 즐거워야 할 여행이 무겁고 어두웠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이번 여행도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무겁고 어두운 짐도 있어서, 준비하는 동안 그다지 설레고 기대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매일 글을 쓰며 여행이 풍성해지고, 여기저기 아프려고 하던 몸도 그런대로 3주 가까이 잘 견뎌내고 있었다. 19일째 되는 어제는 비가 오고 추운 날씨였다. 그 전날 Mammoth Hot Springs에서 85도였는데, 우리가 묵는 동네 비 오는 날의 날씨는 45도 정도.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널뛰는 험한 날씨다. 서로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음과 서로에게 느껴지는 단점들을 참으며 24시간 같이 움직이는 여행에서의 피곤함이 추운 날씨와 맞물리며 섭섭하게 느껴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미국식 표현 melt down(멘붕?)이 왔다. 급성 우울증의 증상, 물도 마시고 싶지 않고 손가락도 까딱
설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자 아는 사람이 큭큭 댔다. 명절날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라니. 그는 아마도 조금 어이가 없었던 듯하다. 사실 책방을 시작하고 명절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책방을 목숨 걸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과 함께 있으니 사실은 특별히 문 닫을 일이 없다. 집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책방이 있는 1층과 살림집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퇴근한다. 중간에 내가 집에 올라가는 때는 점심시간뿐인 경우가 많다. 살림은 아침 출근 전이나 저녁 퇴근 후에 한다. 무엇보다 나에게 책방 문을 여닫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 나의 일상은 늘 같다. 명절이라고 해서 나의 일상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 간 모임도 불가능한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명절 아침에도 나는 1층 책방으로 내려와 커피와 빵,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청소를 간단히 하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책방이고 카페지만 이곳은 나의 소중한 작업실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이라고 하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하
Day-16, 천국과 지옥 누군가 옐로스톤을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 기억난다. 미국 국민들이 일 인당 10평 정도의 분깃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마무시하게 넓은 이 공원을 하루에 한구석씩만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오늘 만난 어떤 노부부는 매년 와서 한구석만 일주일간 보고 간다고 한다. 땅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유황 가스와 지열을 품어 올리고, 지각의 변동과 화산활동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에 자리 잡은 광활한 고원이 옐로스톤이다. 오늘은 시간 맞추어 10시에 있는 레인저 프로그램에 갔다. 해안 경비군에서 퇴역한 후 7년째 ranger로 일한다는 61세 아저씨의 깊이 있는 지학적, 역사적, 생물학적, 생태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부글거리며 스팀을 품어올리는 진흙 간헐천, 용의 입이라고 이름 붙은 사납게 생긴 연못들을 돌아본다. 이 진흙 가마솥들은, 온도도 뜨겁지만 pH 1.89 정도의 극한 강산성 독극물이라고 한다. 억수로 돈 써가며 전쟁 무기 만들지 말고 이 흙탕물을 물총에 장전해서 쭈악 쏴대면 전쟁 끝! 아냐? 이런 만화도 그려진다. 지열이 땅을 덥혀서 눈이 마구 오는 극한 겨울에도 푸른 초장인 온돌방
비록 프로그램 비중이 경(輕)하다 해도 연 이어져 있는 세 프로(생활의 지혜, 오늘의 요리, 주부 뉴스)를 격일로 방송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이를 갖고 가타부타 불평할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감수하는 밖에 없었다. 아침 방송이 늘었음에도 여성 PD를 뽑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숨 가쁘게 변해왔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나 사회구조, 기계문명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초고속으로 바뀌고 있어 웬만큼 공부해서는 미처 따라가기도 어렵다. 참으로 억울한 것이 기존의 전통 사회를 살아온 7080세대이다. 디지털이 정착되면서 세상의 소통 수단이 달라진 것이다. 모든 기준이 인터넷으로 축약되고 수 없는 웹사이트들에 넘쳐나는 정보들 하며 이 때문에 까닭도 없이 시대의 뒤편에 밀려나, 인터넷도 제대로 못 하고 스마트폰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무지 계층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일이 어찌 억울하지 않은가. 혹여 컴퓨터를 쓰다 문제가 있는듯해서 손을 놓아야 한다거나,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의 활용이 쉽지 않아 닫아버리는 일을 7080세대는 다반사로 겪고 있다. 그때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혹은 속속 알 수 없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공연히 오지랖 넓게 행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말로 무안을 준다고 그 사람들의 행동이 고쳐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도 성인인데다 나름대로의 교양이나 상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갔어도 아무런 잘 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난 체 하거나 지적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을 줄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 거기에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것도 같은 날 아침에 두 번씩이나 그랬다. 내가 교양이 부족해서였는지 어쭙잖게 의협심이 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두 당사자에게 조금 미안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며칠째 계속되던 청명한 날씨가 그날 아침엔 잔뜩 찌푸렸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의 구름이 험상궂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온도 상당히 서늘했지만 운동하기엔 좋았다. 아침 운동 나가는 길에 음식쓰레기를 수거함에 버리고 나오다 아주머니 한 분을 봤다. 그 여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앞 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무안해할 일이었다. ‘이 수도에서는 손만 씻으세요.’ ‘아무리 깨
Day -13, 어제는 hiker 오늘은 tourist 캠프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이곳에 도착한 첫날 유숙한 Colter bay로 간다. 이곳은 티탄이 발전해나가기 시작한 본거지이고, 가장 번화하고 규모가 큰 캠핑장이기도 하다. Jackson 호수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배 정박하기 딱 좋은, 항만 같은 지형도 있다. 호수를 유람하는 배에 오르니, 정복을 입은 선장과 가이드가 정중히 승객들을 맞는다. 선장은 열 살 때부터 이 호수에서 아버지와 낚시하며 자랐고 45년간 소매업에 종사하다가 은퇴하고 2007년부터 크루즈 보트 선장으로 일한다고 하는, 70대의 건장한 할아버지다. 마이크 없어도 멋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1시간 반 유람하는 방송을 대부분 60대 후반의 가이드가 했으나, 소량을 맡은 선장의 얘기가 훨씬 전달이 잘되고 흥미로웠다. 발성이 선천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라, 준비 많이 해온 가이드의 다양한 얘기들이 선장의 한두 에피소드에 묻힌다. Colter bay는, 디즈니가 개척의 나라 시리즈로 만든 여러 서부영화의 주인공에선 누락되었으나 다니엘분이라던가 버팔로빌 등의 영웅들보다 훨씬 훌륭한 개척자라고 이곳 사람들이 굳게 믿는 John Colter에서
그가 구름과 비행기, 신호등과 물탱크. 그가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시간은 약 6년. 그동안 찍은 사진은 수천 장에 이른다. 그는 그중 일부를 골라 책을 내고 싶어 했다. 그는 가급적 많은 사진을 넣고 싶다고 했다. 1천여 장의 사진집. 그 많은 사진을 다 넣고 싶은 이유는 매일의 기록, 즉 일기이기 때문이다. 아는 친구가 책을 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오래 한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것은 구름과 비행기, 그리고 신호등과 물탱크였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걷다 구름이 있으면 핸드폰을 꺼냈고, 비행기 소리가 나면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땅을 보고 걷는 것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매일 달랐다. 하늘의 표정은 구름으로 인해 변화무쌍했다. 구름은 단 한 번도 같은 표정을 한 적이 없다. 구름은 하늘의 특권이었다. 특히나 저녁 하늘은 그의 마음을 언제나 앗아갔다.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은 그를 어디에서나 멈추게 했다. 중학교 시절, 집에 갈 때마다 그는 쓸쓸하다고 느꼈다. 쓸쓸해서 하늘을 바라본 것인지, 저녁 하늘 때문에 쓸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린
Day-10, 사랑은 움직이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탁실로 향했다. 이 캠프장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곳답게 널찍하고 깔끔한 세탁실에 신형 세탁기가 많이 구비되어 있다. 세탁실과 같은 건물에 있는 샤워 시설도 관리인들이 항시 대기하고 계속 청소해서 늘 청결하고 널찍하다. 샤워하는 동안 여행 중에 쌓인 세탁물을 상큼하게 정리하고 나니 비가 올 듯 말 듯 하다. Visitor center에서 본 정보에 의하면, 비 오는 날엔 Jackson lake lodge에 가서 놀면 된다고 쓰여 있는 게 기억나서 그리로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는길에 짧은 하이킹 코스로 가장 인기있다는 Targat lake trail 코스를 살펴보자며 트레일 시작점에 들러봤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해가 날 듯 하고 비도 그치는 듯 하여, 짧고 쉽다는 3마일짜리 Targat lake trail을 아침 운동 삼아서 걷기로 하고 입구의 지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5.9마일짜리 trail을 하면, 다녀온 청년들이 아름답다고 하던 두 개의 호수와 시냇물을 볼 수 있다는 걸 발견하자, 예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걸로 가자는 충동구매형 결정을 내렸다. 시간으로 봐서 점심도 필요하고 비라도 오면 돌아오는
"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독서 이야기가 아닌 일상에 관한 반복적인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는 것에 흥미를 잃기도 했고, 서로 주고받을 농담이 이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해서 오늘 직장 동기와의 모임에 안 갔어요. 너 나중에 후회한다는 협박을 받았는데 이러다 제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까 봐 내심 걱정도 됩니다. 제가 왜 이런 걸까요?"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가 이런 글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50대 중반인 그는 요즘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가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은 이제 1년 6개월 정도. 그는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는 게 좋겠다 싶어 많은 검색 끝에 유명 작가와 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주로 권해준 책은 자기계발서. 독서 모임에 함께했던 이들은 젊은이들. 그는 그 모임을 통해서 2, 30대의 생각을 읽으면서 책 읽기에 빠졌다. 더욱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었던 그는 역시 검색 끝에 우리 시골책방에서도 독서 모임을 한다는 걸 알고 찾아왔다. 함께한 지 이제 9개월째. 그새 그는 유명작가의 독서 모임을 그만두고 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해는 희망을 줍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는 해는 아름답습니다. 도시의 건물 사이로 치솟는 해님이 내뿜는 찬란한 광채가 뜨겁게 느껴집니다. 유리알처럼 파란 하늘로 뻗은 가느다란 가지에 조롱조롱 달린 앙증맞은 새빨간 열매들이 귀엽습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목화송이처럼 다시 하얗게 피었습니다.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는 하늘의 변화는 경이롭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고 사람들의 각종 추태가 보기 싫지만, 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날마다 바라보는 똑같은 자연이지만 느낌은 항상 다르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붉게, 다른 때는 푸르게, 또 다른 날엔 희거나 검게 변하는 하늘도 신비롭습니다. 앙상한 모습으로 추위에 떨며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도 예쁩니다. 다가올 여름의 무성한 푸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침햇살을 받아 목화꽃처럼 핀 억새와 이름모를 빨간 열매가 겨울추위를 녹여줍니다. 정말 오랜만에 겨울다운 추위가 찾아온 새해 벽두입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잠시 잊고 있었던 동장군의 건재를 알리는 아침입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는 해가 장엄합니다. 그 해가 솟기 전부
Day-8, 티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Inspiration point' 티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꼭짓점은 Inspiration point라고 불리는 조망지점이다. 캠프에서 만난 청년이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디즈니랜드처럼 바글거린다고 알려주어 일찍 출발했다. 제니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하여, 어제는 발품으로 간 길을 오늘은 배로 건너니 순식간이다.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호수 건너편 선착장에서 1.2마일(2km) 떨어진 곳이라고 하여 3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길이 가팔라서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르는 길목 그늘마다 가다가 쉬고 있는 관광객들이 자리하고 있다. 목적지에 가까워져 오는 지점에서 부모와 아들, 그리고 할아버지로 구성된듯한 한 가족을 만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10대 후반 정도의 손주가 할아버지 바로 뒤에서 할아버지의 한쪽 어깨에 자기 손을 얹고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지형물을 설명하며 친절히 천천히 걷는다. 여기서 나는, inspiration point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충분히 inspire(감동) 되고 있다고 느낀다. 가족의 의미, 인내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in spite of...), 포
내가 형님과 함께 식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지난 추석 때였다. 온 가족이 모인 날 형님은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온갖 추억들을 살려내어 옛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막냇동생과 함께 약속드렸다. ‘형님 건강이 조금만 더 좋아지시면 모시고 고향에 가겠다’고. 마침 올해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막내가 새 차를 샀기에 그 차로 모시겠다고 했다. 형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3형제가 함께 가게 됐다고 좋아하셨다. 몇 해 전 12월 29일 저녁 9시,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마당. 한겨울 밤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그 시각 나는 맏형님과 손을 잡고 기념관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81세인 형님은 14살 아래인 내 손이 따뜻해서 좋다고 하셨다. 나도 형님의 온기를 꼭 잡은 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그 형님이 귀향하셨다. 6·25전쟁 전 서울로 유학 온 후 군대 복무 3년, 해외 근무 4년을 제외하고 계속 서울에서 사셨던 분이다. 그런 형님이 이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으로 완전히 귀향하셨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3세. 형님은 매우 건강하셨던 분이다. 그러나 80살을 넘기면서 급격히
다른 사람들은 어떤 대화들을 나눌까. 남편과 내가 하는 대화란 고작 시사 토크가 전부다. 그는 언제나 그의 관심이 쏠려있는 시사 문제 외엔 내게 특별히 할 말이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도 반갑고 고마워 열심히 경청하면서 응대한다. 그것도 안 한다면 그는 온종일 누구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본디 말수가 많은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다. 말수가 많은 사람을 흔히 다변한 달변가라 한다면 말수가 적은 사람에 대해서는 눌변(訥辯)이라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편인가 하면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재미있게 말할 줄도 모르거니와 평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달까, 꺼린 달까, 아무튼 좋게 말하면 말을 절약한다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화제에 인색하여 자칫 어리숙하다는 얘기도 들을 만하다. 그런데 남편 역시 아주 말이 적은 편이어서 우리는 살면서 그닥 많은 말을 해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젊어서는 서로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노년에 들어서는 바쁜 것도 아니면서 서로 말이 별로 없으니 아주 재미없는 커플인 셈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눈빛 하나, 표정 하나, 동작 하나 손끝 발끝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작년이 된 경자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점철된 우울한 해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코로나로 인해 평생에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새해 첫날 존스홉킨스대학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확진자 수는 8천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80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게다가 영국발 신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립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울리던 제야의 종소리도 올해는 취소됐습니다. 행사가 시작된 지 67년 만이라고 합니다. 모두 코로나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은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30여 나라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치료제 개발도 목전에 있다니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를 극복하고 마스크 없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합니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가 극복되더라도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혀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은 바람일 것입니다. 포천좋은신문은 작년 9월 1일 창간했습니다. 해가 바뀌며 벌써 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