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사는 집은 콘크리트 골조에 황토벽돌로 쌓은 집인데 무려 4층이나 된다. 1층은 카페를 겸한 책방이고, 2, 3층은 주거용, 4층은 회의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집을 지은 이는 집을 최대한 친환경으로 집을 짓고자 안팎을 황토벽돌로 쌓았다. 실내도 서까래와 계단 등을 모두 소나무로 마감했다. 말로만 듣던 황토집에 직접 살아보니 황토집이 얼마나 좋은지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지난여름,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황토벽돌이 무너져내렸다. 비가 계속 오다 보니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중벽 중 외벽이 무너졌으니 그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물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서 간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물은 얕은 곳을 향해 흐르다 틈이 있는 곳에서 뚝뚝 떨어졌다. 벽을 타고 들어온 물은 천정에서도 떨어지고, 바닥을 흥건하게 했다. 심지어 카페와 책방에도 물이 떨어지고 이곳저곳이 물천지였다. 젖은 책은 버리고, 흥건한 물은 퍼냈다. 그런데도 비는 계속 왔다.
한 달여간 생활은 조금 엉망이었다. 벽에서 띄워놓은 가재도구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고, 무너진 벽에 쳐놓은 커다란 비닐 천막은 흉흉했다. 다행히 책방 안은 큰 불편이 없었다. 가끔 책방에 손님이 한둘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8월 15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책방의 발길은 다시 뚝 끊겼다. 비 피해를 보았을 때는 생각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게 문제지만 비 그치면 공사를 하면 된다. 그러니 화가 나거나 낙담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은 다른 문제였다. 뉴스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우울했다. 그걸 견딜 방법은 뉴스를 더 보지 않고,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행정안내 문자가 계속 울려대니 소식을 끊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200~300명이 넘나들고 있는 때, 긴 장마가 끝났다. 드디어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집이 무려 4층이나 되다 보니 공사비 예산이 만만찮게 나왔다. 4층이나 되다 보니 고속작업차로 일을 해야 하고, 황토벽돌을 쌓는 거라 전문가가 와야 하는 등 여러 가지가 일반 공사와 다르다고 했다. 공사하는 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사도 한두 가지 더한다. 예산 외에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체 대표와 실제 공사를 담당하는 팀장은 공사 범위와 방법, 과정을 우리와 의논해서 진행했다. 공사를 실행하는 사람과 생활하는 사람의 간격이 대화를 통해 매워졌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일이다. 입주를 앞두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직장을 다닐 때라 업체에 일을 맡기고 자주 가보지 못했다. 어느 날 퇴근 후 갔더니 문이며 창틀이며 몰딩 등이 온통 분홍색이었다. 내가 말한 색깔은 연한 하늘색이었다!
“요즘 이 색깔이 유행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담당자는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말했다. 그가 잘못했으므로 다시 하면 됐다. 그런데 그가 한 며칠 수고가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생각하니 차마 다시 해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분홍색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공사 진행 과정을 보는 것은 즐겁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서로의 생각을 맞춰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을 짓는 것은 얼마나 즐거울까.
며칠 전, 공사를 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을 직접 만들어내시니 저보다 더 즐거우실 것 같아요?”
그는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 번도 즐겁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할 뿐이죠.”
줄줄 흐르는 땀을 젖은 수건으로 훔치며 그가 덧붙였다.
“그냥 공사 끝나면 이번 공사는 돈이나 잘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죠. 돈 떼먹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심지어 기업도 돈을 안 주기도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흥분했지만, 공사 현장에서는 그런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일이 즐겁지 않냐는 말은 그야말로 ‘말 같지 않은 말’이 되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너절한 일인가.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폭염주의보가 울려대도 그들은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중간에 비 오고, 태풍이 지나가느라 공사 기간이 더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돈 걱정만 빼면 ‘즐겁게’ 일을 바라본다. 여전히 생활은 불편하다. 서울의 아파트 생활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불편하다. 물론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일을 담담히 치러낼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시골에서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젊지 않아서일까. 그냥 받아들여진다.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생활의 일부가 됐다.
시골에서의 삶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활의 연속이다. 그래서 좋다. 이 와중에 며칠 전 심은 김장배추 모종은 빳빳하게 자리를 잡았고, 무는 싹을 틔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추와 무는 쑥쑥 자랄 것이다.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