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사람들

'하고로모 분필' 포천서 세계적 명품으로 재탄생

일본제품이었던 분필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만든 (주)세종몰의 신형석 대표

 

분필에도 명품이 있다.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선명한 색감, 힘주어 판서해도 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함, 그리고 부드러운 필기감과 타제품보다 현저히 적은 가루 날림. 바로, ‘하고로모 분필’이다. 일본제품이었던 하고로모 분필이 몇 년 전 ‘귀화’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어 화제다. 화제의 중심에 ㈜세종몰의 신형석 대표(50)가 있다. 글 홍보전산과 추영화 주무관

 

포천에서 생산되는 세계적 명성의 분필

 

포천 영북면에 위치한 ㈜세종몰에서는 하루 7만 개의 명품분필이 생산되고 있다. 가격이 다소 높지만, 일반 분필과 비교되는 월등한 품질로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 구매자들은 ‘분필 한 자루로 온종일 쓸 수 있어 한 시간에도 여러 차례 부러지는 여타 분필보다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평이다.

 

수출도 활발하다. 생산된 분필의 약 40%는 해외로 수출된다. 2019년 기준 연 매출 16억 원. 올해는 20억 원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신형석 대표가 처음 인수해서 제조, 판매하기 시작한 2016년의 3억 원보다 거의 7배 증가한 수치다.

 

하고로모 분필은 강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쓰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는 마성의 분필이다. 한때 하고로모 분필의 생산중단 소식에 세계 유명 수학자들이 ‘10년 치 분필 사재기’를 했다는 에피소드는 이미 유튜브상에서 꽤 알려져 있다.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따뜻한 명품

 

‘분필계의 명품’이라 불리지만 하고로모 분필은 오만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담고 있다.

 

또렷한 색감으로 인터넷 수업 등 방송 강의에 탁월해 인기몰이 중인 ‘형광분필’. ㈜세종몰에서만 생산되는 이 분필은 사실 색약 등 색각 이상으로 색 구분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색약자에게는 초록바탕 칠판에 쓰인 특정 색상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가 밝히지 않는 한 남들은 알 수 없어서 학교 현장에서 배려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세종몰 하고모로 분필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형광분필을 생산한다.

 

생산단가가 비싸고 수요가 많지 않아 이윤을 남기기 어렵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을 위한 것이므로 화장품이나 식품에 사용되는 최고 안전 등급의 재료만 사용한다. 이뿐 아니다. 판매수익의 1%는 반드시 환경이 어려운 아동을 위해 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실천해 오고 있다.

 

사라질 뻔한 일본기술을 우리 기술로

 

유명 학원 강사였던 신형석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생산되던 하고로모 분필을 우연히 접하고 구해보려 했으나 국내 판매처가 없자 수입을 결정했다. 수입한 분필은 인터넷으로 판매하기도 했지만, 사실 강사인 본인이 좋은 분필을 쉽게 구해 수업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015년, 하고로모 분필의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으로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 내 몇몇 업체에서 기술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하고로모의 핵심가치인 ‘품질’을 유지할 수 없어 일을 접는다고 했다.

 

이에 신 대표는 와타나베 사장을 직접 만나 본인이 하고로모 분필의 품질을 이어나가겠다고 설득했다. 뛰어난 분필 제작 기술이 국가·국적을 떠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신 대표에게 하고로모 분필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이어 전해져야만 하는 ‘기술유산’이었다.

 

처음 와타나베 사장은 신형석 대표를 만류했다. 제조업의 고됨을 잘 아는 탓이다. 그러나 품질 계승에의 뜻이 굳음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하고로모 분필 품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계를 헐값에 넘기고 기계 이전을 위한 업체까지도 직접 알아봐 주었다.

 

처음 포천에 공장을 열 때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일부러 방한하여 설치된 기계를 몸소 살피고 생산된 분필의 품질을 면밀히 체크했다. 마치 후계자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그렇게 하고로모 분필은 made in KOREA 표기를 단, 우리 기술이 되었다.

 

어려움의 극복과 성장

 

한편, 일본에서는 세계적으로 이미 유명한 자국의 브랜드와 기술이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NHK에서는 안타깝다며 방송을 하기도 했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와타나베 사장을 향해 공공연히 ‘매국노’라 비난하기도 했다. 제품 품질이 그대로 유지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고로모 분필의 세계적인 품질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기로 한 신 대표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강단에 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던 신 대표에게 있어 제조업이라는 세계는 그야말로 미개척지였다. 생산을 위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가져온 기계가 우리나라의 전압이 맞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세계적인 품질 계승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린 결과, 2016년 아버지가 살고 계신 포천에 공장을 열수 있었다. 포천은 지가도 저렴하고 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도 편리한 데다 인근에 산업단지도 조성되어 있어서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도시다.

 

현재 하고로모 분필은 SBC 중소기업진흥공단 HIT 500 좋은 제품에 선정되고, SISO FAIR 신제품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등 우수상품 인증을 받으며 국내외적으로 ‘분필계의 명품’으로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도올 김용옥 선생, 설민석 선생 등 유명 강사부터 작은 교습소에 이르기까지 학원강사의 80~90%가 하고로모 분필을 쓰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호주의 시드니 국립대, 중국의 베이징대, 칭화대 등 세계 최고 명문대학에도 포천에서 생산된 하고로모 분필을 사용하고 있다.

 

신형석 대표는 “K-팝, K-뷰티 등 세계적으로 한류 붐이 일고 있다. 계속된 기술개발 노력으로 분필을 넘어서 품질 좋고 실용적인 ‘K-문구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