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보통사람에게 보내는 갈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잘못된 일에 마음 아파하고 때로는 잠도 이루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 이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보통사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대한민국은 1910년 나라를 잃은 후, 일제 강점기 35년, 미군 군정 3년, 한국전쟁 3년 그리고 1953년 정전 등– 무려 43년,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탓에 국민소득이 불과 60여 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총소득, 국내총생산, 무역 규모 등을 모두 고려할 때 유엔 회원국 가운데 상위 10% 이내에 드는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지표로 본다면 세계대전과 다름없는 한국전쟁 정전 후 70여 년, 사람의 나이로 치면 갓 고희를 넘긴 대한민국 경제 현주소는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이 같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동안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너무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성장 동력의 모티브를 생각한다

경술국치,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 지난 2010년, 모 공영방송은‘대한민국 100년의 신화-기적적으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우리 역사를 조명하고 뒤이어 한국 주재 외국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대한민국이 짧은 기간에 성장 발전한 동력을 묻고 분석하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우선으로 꼽은 성장 동력의 가치들이 너무 익숙하고 평범하여 매우 놀라웠다.

 

정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우리 민족의 협동과 단결 정신,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유대감, 공동 목표를 향하여 힘을 모으는 공동체 의식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내의 정신 등이 그것이다. 물론 교육열, 탁월한 지도자의 지도력, 민주주의 체제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가치와 덕목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정과 보통의 구성원이 가정 교육 등을 통해 배워 이미 익숙하고 몸에 배어 실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지향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특별한 가치로 보인 듯하다.

 

그리고 성장 발전의 중추를 생각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파견, 건설 근로자 중동 건설 현장 투입,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공업화 및 산업화의 성공 등을 경제 성장의 초석으로 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우리 국민, 이른바 보통사람이라는 것이다.

 

보통이라는 말은 어의적으로는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라는 뜻이고, 보통사람은 통상의 판단 능력과 행위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서양에서 민주주의 도입 초기에는 일부 계층에 한정되었던 투표권과 피선거권이 점차 보통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부여되어 그들의 권한과 역할이 크게 확장되었다. 즉 성별, 인종, 종교, 빈부, 계급에 상관없이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 제도를 도입하면서 민주주의는 정착되었고, 보통사람은 정치적인 주목을 받으며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도입한 대한민국 초창기 통치자와 지배 계층, 특히 여러 독재자는 보통사람을 헌법상의 4대 의무인 ‘국방, 근로, 교육, 납세’의 의무를 확실하게 이행하고 국가 정책에 늘 협조적이고 순응적인 사람들로 인식하였다. 그런데 4.19 혁명, 80년대 6월 항쟁 등을 겪으면서 보통사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찍어주세요!”라고 보통사람의 편에 서서 외치고 구애하여 당선된 후,‘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고 호언함으로써‘ 보통사람’을 이용하였는데 그가 공약을 잘 이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보통사람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중추 역할을 했고, 민주주의 정치 발전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을 예로 들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무대에서 배제되어 온 보통사람

기존의 역사는 국가나 전체 사회의 공적인 문제에 치중한다. 그래서 전쟁 등의 역사,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가적 대사의 역사는 늘 통치자, 지도자 등 지배 계층, 엘리트 등의 업적, 성과, 리더십 등을 중심으로 하여 연대기로 기록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이름하여 지도자 중심의 역사, 엘리트 역사, 산업 중심 역사 등으로 말하고 비판한다. 그런데 그런 역사 기록에서는 보통사람, 평범한 개인, 민중 등의 생각이나 성과, 행위, 경험, 생각이 설 자리는 거의 없고 배제되기 마련이다. 기껏해야 조연 또는 엑스트러로 등장하거나 무기력한 존재로 기록되는 게 예사이고 때론 왜곡되었다.

 

6.25 전사를 보면 전쟁을 둘러싼 정치사, 장군들의 영웅적 무공을 다룬 전투사 중심으로 기록되어 많은 부분이 이승만 대통령, 신성모 국방장관 등 대통령, 장관 등 주요 관료나 정치인, ‘맥아더 백선엽 김종오 김홍일’ 장군 등 전쟁의 영웅들과 관련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평범한 보통의 참전 군인 이야기는 백마고지 3용사의 활약 등이 고작이고, 장군들의 주요 전투사에 양념 정도의 서사적 이야기로 첨가되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영화, 드라마, 소설의 몫으로 남아 정서적 감성적으로 각색된 채 표현되어 관객과 독자의 가슴 속에만 남겨져 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비사와 형제의 우애를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 장동건·원빈 주연)’, 정치적 격변기에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국민이 보통사람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그린 영화 ‘보통사람(김봉한 감독, 손현주 주연)’과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송강호 주연)’ 등의 영화가 그렇다. 영화 ‘보통사람’의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보통사람, 평범하지 않았던 시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라는 홍보 문안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국전쟁 희생자 330만여 명 대부분이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이 생각난다.

 

역사 속에서 왜곡되기도 하는 보통사람

필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의 항일 활약상을 기술하며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통사람’으로 호명하며 일제가 그들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묶어 두었음에도 그들을 식민 통치의 하수인으로 내몰며 죄인 취급을 하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회고록에서는 “보통 조선인은 매일 아침 일장기를 바라보고 일본을 향해 절을 하며 황국신민의 서사를 낭송하였다. 나는 그들을 충실한 일황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회고록은, 어쩔 수 없이 굴종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보통 조선인들의 일제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일반적으로 그렇게 폄훼하여 기록한다.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근원적 심리를 더욱 깊이 가진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여론의 향방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구분하는 본능적 능력을 활용하여 대응한다.

 

보통사람들은 작게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크나큰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권력이 함께 하는 여론의 편에 서거나 고작 침묵하는 것으로 저항한다. 그렇게 인내하던 그들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는 힘을 한데 모아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그런데 지배 계층, 지도자 중심의 역사 기록을 보면 주인공들이 이렇게 침묵하던 보통사람의 중추적 역할, 성과나 공을 가로채거나 착복하는 경우를 가끔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앞의 회고록의 사례처럼 보통사람을 왜곡하거나 폄훼하여 낮추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업적을 키우려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보통사람은 쉽게 말하자면 시시하게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통사람으로 산다는 게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낄 줄 알면서도 때론 남을 위해서 쓸 줄 알고, 직접적 관계가 없으나 ’그른 일, 잘못된 일, 슬픈 일, 돼먹지 않은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아 하고, 때론 잠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 온갖 법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바로 보통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사람들이 보다 편히 살고, 마음 상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보통사람이 자존감과 긍지를 갖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대우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글을 마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요, 중추 역할을 한 대한민국의 보통사람들에게 에런 코플런드(미국 현대작곡가)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라는 우렁차고 씩씩한 분위기의 관현악곡을 바치며 힘차고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