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수필 '적국의 아이'

민천식 · 전 포천시부시장, 포천문인협회 자문위원

 

‘라이따이한’은 전쟁의 쓰나미가 쓸고 간 오늘도 적국의 아이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달고 무거운 짐을 지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이들에게 가해진 견딜 수 없는 억압과 차별의 고통에 하늘도 보슬비로 답한다. ‘라이따이한’은 지금도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친 바다를 헤매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죄를 지은 범죄자인가.

 


적국의 아이

 

인류의 역사는 전쟁에 의한 인간을 학살해 온 역사라고도 표현한다. 이웃한 타민족 간에 이웃 나라와의 영토, 종교 문제 등으로 침략과 점령을 반복해 왔다. 전쟁은 우리 인류에게 많은 고통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전쟁은 승리가 아니라 둘 다 죽는 것이다”라고 했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 인간 중 자신들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위정자들이 만들어낸 사악한 욕심의 산물로 그 피해는 힘없는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베트남은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나라로 우리나라 경우와 같이 이웃나라로부터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백성들은 몸이 부서지도록 저항해 왔다. 그들은 나라 잃은 설움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함께했다. 동족 간에 남북으로 나누어 총부리를 겨누며 생사를 넘나들곤 했다. 지금도 고엽제 등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해자요, 죄인이기도 하다.

 

베트남에 가면 전쟁의 피해자 중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아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베트남인들은 이들을 ‘라이따이한’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들에게 깊은 슬픔만을 남겨 주었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희생자들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라이따이한’에 대한 어원에는 나쁜 뜻이 숨어있어 우리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라이따이한’의 라이는 베트남어로 경멸의 의미를 나타내는 잡종이라는 뜻이고, 따이한은 대한을 베트남어식으로 읽는 것이다. 길고 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이 낳은 상처인 이들은 적국의 아이라는 오명을 쓰고 갖은 학대와 멸시를 받으며 오늘도 험준한 산을 힘겹게 넘고 있다.

 

이들에게 진정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라이따이한’은 주위의 갖은 박해를 견디면서 들풀처럼 살아왔다. 이들은 베트남 사회에 동화하지 못한 채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공동체 마을을 이루며 오늘도 수도승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끼리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기만 하다.

 

‘라이따이한’의 삶은 대부분 가난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보는 이의 마음은 더욱 애잔하기만 하다. 이들은 적국의 스파이도 아니고, 어떠한 적대행위와도 거리가 멀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한 채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 누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이들에게 고통의 굴레를 씌웠는가.

 

많은 사람은 ‘라이따이한’이 베트남에 몇 명이나 살고 있을지 하는 의문을 가진다. 베트남 정부에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고 한다. 어느 자료에 의하면 최소 오천 명에서 최대 삼만 명까지로 추산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추정치일 뿐이다. 20여 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국민들을 암울한 죽음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베트남 전쟁은 같은 피를 나눈 민족끼리 양 진영으로 나누어 죽음의 장으로 치닫던 불행한 역사로 기록된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참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전쟁은 확전되어 국토와 백성들의 삶은 더욱 황폐해져 갔다. 죄 없는 백성들의 피해는 큰 산을 이룬 비극의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이 극에 치닫던 1964년부터 참전하게 된다.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한국군은 약 31만 명이 파병되어 수많은 고귀한 젊은 피를 타국의 전쟁터에 뿌려야만 했던 슬픔이 있다.

 

전쟁은 사람들의 고귀한 생명을 포함해 송두리째 삼키고 말살하는 악령과도 같다. 참전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한 약소국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전쟁의 상처로 태어난 “라이따이한”의 비극적 삶에 보는 이의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의 삶은 힘겹기만 하였다.

 

‘라이따이한’은 전쟁의 쓰나미가 쓸고 간 오늘도 적국의 아이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달고 무거운 짐을 지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이들에게 가해진 견딜 수 없는 억압과 차별의 고통에 하늘도 보슬비로 답한다. ‘라이따이한’은 지금도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친 바다를 헤매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죄를 지은 범죄자인가.

 

가해자에게 묻고 싶다. 참으로 가엽고 기구하게 태어난 이들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되돌리기에 현실의 벽은 너무나 가혹하기만 하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사회구성원으로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기본권마저도 맛볼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 오늘도 내일도 베트남 하늘에는 이들의 원망 소리만 메아리친다.

 

미국 정부는 1987년부터 베트남전쟁의 미군 혼혈아와 그의 가족에 대하여 미국으로 이주를 허용하는 인도주의적 이민정책을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도 미국 정부의 포용 정책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라이따이한’ 이들에게 가해자요, 죄인이 아닌가. 이들을 위한 정부의 현실성 있는 포용 정책을 기대해 본다.

 

이들이 지금까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삶의 아픔과 원망 소리에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가슴을 열어 본다. ‘라이따이한’이 살고 있는 베트남의 밤하늘을 밝혀줄 별들이 저 하늘 가득 메우는 그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련다.

 

민천식 약력

호 운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박사

전) 포천부시장, 전) 포천시장 권한대행, 전) 포천시 체육회장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소설. 시. 수필 등단 .포천문인협회 자문위원

2017, 2018년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신인작가상 수상

제7회양주서예대전 입선(한문부문). 홍조근정훈장(2018),

저서 : 희망스토리『함께 꿈꾸다!』. 달포수필 공저(2024).

구절초 향기 공저(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