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지우지 마세요 봄 햇살 깊게 넣으려면 땅을 카랑카랑 더 파야 한다 가을을 가득 그리기 위해 보송한 흙색 도화지 만든다 꽃은 지우지 마세요 너무 작아 부서질까 햇볕 한줌 나누는 꽃다지 다 피지도 못하고 흙에 묻힐까 하늘이 비를 흘린다 꽃은 지우지 마세요 차마 지울 수 없는 꽃 사월 더 노랗게 살아라 따뜻한 마음 한번 더 안아라 점 점 진하게 비 두드린다 손잡고 걷고 싶다 손잡고 걷고 싶다 메모장에 저장해줘 연애하고 싶군요? 낭만적인 말입니다 제발, 제발 그 봄 언제였는지 묻지마라 덜컹거리는 겨울 면접을 보고 또 보고 기간제 너무 크게 누른다 덜컹거리는 겨울이다 날마다 추석 같았는데 뭐가 달라졌을까 아버지 없는 세상 날마다 나 잘되라고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해도 눈물로 기도했겠지 얼어붙은 흙에 누워서도 선생 아들 자랑하겠지 시인 송계원 2001년 시집 『꿈을 펼쳐!』로 작품활동 시작 포천문인협회 회원 이음창작동인회 사랑방시낭송회 회원 맥놀이창작동인회 부회장 도서출판 담장너머 대표 시집 『꿈을 펼쳐!』, 『사랑水』 jinu514@hanmail.net
온점 뭉게구름이 내려와 파도를 타며 갈매기와 조우하는 바당을 걷고 물고기 뛰어올라 구름을 타고 노는 가드막길을 넘는다. 흘린 땀방울 수만큼 걸은 걸음걸이마다 추억이 대롱대롱 달린다. 이 모두가 모여 26개의 고샅길 따라 425개의 징검다리를 건너니 오늘 나는 하나의 추억을 저장한다. 설레임 하늘이 파랗게 시리고 솜털 구름이 걸리면 나는 설레인다. 하늘이 노을에 익어서 서산 언덕에 걸리면 나는 설레인다. 하늘이 주룩주룩 비를 토해내다 저 먼 언덕에 무지개 걸리면 나는 또 설레인다. 나를 설레게 하는 당신 그대여서 행복합니다.봄 봄 바람에 실려 온 봄이 땅을 뚫고 올라온 봄이 빨랫줄에 걸터앉아 햇빛과 조우하는 아침 이슬에 맺힌 구슬이 망원경 되어 세상 안에 들어온다. 오늘 들여다본 세상은 너도나도 날숨이다 시인 고한종(高漢鍾) 갈매 1961년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충남 태안출생 20016년 『한국작가』 시 부문 등단 2019년 『에세이문예』 수필 부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포천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포천문학회장 역임 2019년 포천시의회 의장 표창장 수상 시집『외잎으로 다시 피고 싶어라』 010-3796-4811 epsko@naver.com
봄이 기다려지는 시간 하루가 더디 간다 곰이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당신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기다려보고 기다려지는 가운데 나무는 점점 말라가지고 초췌해지고 땅 속으로 들어가네 세상으로 나오는 해는 고개를 숙여 보이지 않지만 날아가는 바람의 향기에 천지를 깨우는 거친 흙과 새싹이 솟아나는 냄새가 가득하네 아 봄이 멀지 않았구나 조금씩 나도 모르게 오고 있네 꽃바람 하늬바람 불어오니 땅에서 퇴비 냄새 올라오고 자연의 장난이라도 부리든지 금방 하늘로 사라지네 새싹 틔우려고 준비 중 이 향 그리웠나보다 봄꽃 향기가 봄나무가 보고파 자연이 선사하는 색과 향기 황소바람에 죽은 강아지풀도 살바람에 흔들흔들 곧 살아난다고 웃고 있네 인연 설레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같은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만찬을 즐기며 음악 속에 추억을 담고 지난 세월을 그려 본다 봄이 오면 그리운 이 생각나며 첫사랑이 보고싶다 봄날 나들이 웃음소리 끝이 없고 행복 꽃이 피어난다 봄날의 아지랑이 속으로 어깨동무하고 같이 가세 작가 김은경 2019 계간 운율마실 신인상 2016 여성기예전 시부분 최우수상 2015 포천문인협회 2016 마홀문학회 사무국장 2020 글
시집의 향기 생각의 조각들이 하얀 종이 위로 시집을 가네 글자들은 꽃이기에 꽃잎에게 향기를 건네주듯 소리 없는 미소가 숨을 쉬듯 침묵의 숨소리가 빛나네 페이지는 별처럼 반짝이는 글자들의 정원 글자들은 마음의 숲에 내리는 이슬방울 사랑도 명예도 꿈으로 새겨지는 여정 침묵으로 말하는 글자들의 줄서기 시인과 종이는 늙어도 시집간 시어들은 늙지 않고 초록의 나무로 서 있네 십자성처럼 반짝이네 시인은 죽어도 시는 죽지 않기에 시집은 글자들의 여행길 시집은 산이요 바다요 강이요 새싹들이 자라는 꿈속의 푸른 들녘 3월의 정원 햇살이 부드러운 손을 내미는 봄 뒷동산 아래 얼었던 샘터도 녹아 흐르고 길섶에 숨었던 냉이가 꽃을 피우고 나들이 길에서 만난 민들레는 노오란 꽃눈으로 해를 쳐다보고 정원에 서있는 꽃나무들이 꽃눈을 뜨네 이제 4월이 오면 진달래 목련이 화사한 웃음으로 만나겠지 봄볕은 나를 나는 봄볕을 기다리기에 정원에 선 꽃나무들에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향기를 사랑한다고 눈길로 포옹하네 인생 법정 그대는 인생이라는 소풍을 와서 눈물과 웃음을 만나 살면서 삶이라는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는가 가야금 열 두 줄을 닮은 열 두 달이 묻는 말을 무슨 언어로 대답 했는가
연꽃 어르신 칠월의 여름은 핑크빛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어주는 사랑스러운 사계절의 연인이다. 활력은 콸콸 차오르고 매력은 철철 넘친다. 이 계절 휴일이 되면 외출이 기대되고 설렌다. 날씨에 상관없이 카메라 들고 길 나섬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설렘이 시작되고, 비 오는데 어디로 갈까로 시작해 걱정과 함께 길을 나선다. 비를 핑계로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울미 연꽃마을로 가자.” 말 떨어지기 무섭게 카메라 가방을 둘러맨다. 차로 달려서 30분 남짓 소요, 도착한 곳은 포천 군내면의 울미 연꽃마을이다. 연꽃 무리가 햇살을 받고 선 듯 눈이 부시다. 비를 맞고 선 청초한 아름다움도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마른장마에 목말랐다가 지난밤 내린 비로 갈증을 풀어서일까. 부슬부슬 떨어지는 비바람에 우리를 온몸으로 반긴다. 연꽃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얼쑤 장단 맞추니 참으로 장관이다. 지금쯤 꽃은 피었는지 지금 가면 볼 수 있을지 걱정을 안고 나섰는데, 우려는 어느새 바람같이 사라졌다. 펼쳐진 연밭 풍경은 설렘이나 기대감 그 이상으로 대만족이다. 남편은 평소 감정을 공중 부양시키는 리액션 부자도 아닌데 오늘은 후하게 칭찬을 한다. 장
그날 늙은 어미 소처럼 울먹울먹 금방이라도 눈물 쏟을 것 같은 들판 멀리 바라보는 저 새 가벼운 날개로는 무거운 공기 사이 비집기 어렵겠다 대숲을 빼박은 맞은편 서슬 걸어 들기 어려운 묵직한 허공 사이로 바닥을 쓸며 기어 오는 바람 춥다 연분홍 마시멜로는 영영 떠났을까 손가락 끝에서 노닐던 산꼭대기 구름 오늘은 멀기만 멀다 팔랑팔랑 날고 싶은데 가볍게 바라보고만 싶은데 홍수 지난 들판 검불 거둬내듯 개운하게 치우고 밝게 웃고 싶은데 어렵다 언덕에서 한가로이 볕 쬐는 오두막이나 되었으면 전구 색 웃음 흘러나오는 집을 데리고 바다 마을로 이사하고 싶은 날 기차는 기적소리를 다시 데려왔으면 어머니 자장가도 살아왔으면 눈앞 선명하게 밝아 왔으면 좋겠다 정다운 이와 무릎 맞대고 싶어 생각나는 이름 적어보는 날. 내 안의 그믐 아직 진하디진해 그림이 무겁다 안개에 몸을 헹궈보지만 근거리 나무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평생의 염원은 은회색 풍경 한 자락 되는 일 저만큼 물러선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 하늘 떠받드는 여린 나를 만나고 싶다 생의 어둠 조금 덜고 달빛을 입으면 희붐하려나 어느 세월에 말갛게 물 머금은 수묵화 한 점이 될 거나. 산정호수 울적할 때 주변을 둘러봐 야
반려 청소기 어느 날 우리 집에 이사 온 친구, 낯선 집에 처음 와서 이리저리 한 바퀴 돌더니 어느새 집 설계도를 완성했지. 그 후로 네가 원하는 방을 누비며 깨끗이 청소해 주더라. AI 기술로 무장한 네 모습, 똑똑하고 섬세한 손길에 감탄하며 장애물도 알아서 피해 가는 네가 참 기특해. 때로는 나를 위해 말을 건네기도 하지. "물걸레를 세척하고 올게요", "먼지를 버리고 올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음 짓네. 고마워, 반려 청소기야. 너는 이제 내 삶의 동반자야. 커피 한 잔의 여유 바쁜 일상 속, 작은 쉼표처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머그잔 속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천천히 돌아본다. 좋았던 순간도, 힘겨웠던 순간도 한 잔의 커피 속에 녹여내고 조용히 내려놓는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 감사의 마음을 음미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천천히 누린다. 커피 한 잔의 여유, 그것은 내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반려식물의 기다림 햇살 아래 빛나던 잎새들 바람에 실려 온 슬픔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네 주인의 아픈 마음을 닮아 물방울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리움에 젖어가는 하루 병원의 차가운 바람 속
강아지풀 시창작법 풀은 각자의 서술방식으로 시를 쓴다 자기 이름이 무언지 모르는 풀들 풀은 이데올로기를 모른다 풀은 오직 푸르러야 하는 사명뿐 풀은 명예를 모른다 그래서 풀은 낮을 꿈꾸며 밤에 시를 쓴다 그래서 풀은 여름을 꿈꾸며 겨울에 시를 쓴다 그래서 풀은 줄기를 꿈꾸며 뿌리로 시를 쓴다 풀의 주된 서술방식은 생략 풀은 향기로운 열매를 생략한다 겨울 동토의 시련을 생략한다 그래서 내년의 꿈마저 생략하고 오로지 푸르다 풀은 열매보다 달콤한 새벽이슬을 형용사로 매단다 풀은 온갖 미사여구를 퇴고하여 휴지통에 구겨 녛고 풀은 주변과 동화하는 푸르름의 시를 쓴다 풀의 마디마디와 긴 꼬리수염에 난 수많은 시어들 풀은 제자리를 맴돌며 우주적인 시를 쓴다 숲에서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대화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님을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듣기만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으며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들은 진리는 푸른 것이라고 몸으로 말한다 말하지 않고 듣는 자는 우리며 말해야 듣는 자는 타자인데 말하고 있을 때 지나치는 것이 세월이고 들고만 있을 때 세월도 동안거에 든다고 숲은 겨울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눈[雪]의 화법 눈이 온다 하얀 눈송이가 마구 흩날린다 펑펑
회 날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숙성되어 여무는 것을 알지 못한다 펄펄 뛰고 눈까지 껌벅이는 것을 마주보며 숨조차 쉬기 어려워 뻐끔거리는 아가미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신선하고 새로운 것에 집착하고 서서히 익어가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바람꽃 시간의 강을 건너 너에게로 닿을 수 만 있다면 배롱나무 붉은 그림자에 미래로 가는 배를 띄우고 과거의 수원지에서 흘러 흘러 시간의 강기슭에 피어난 너의 체취를 닮은 꽃잎이 바람처럼 날리는 하늘아래 이슬처럼 머물다 가버린 청춘과 사랑과 인연의 골짜기에 별의 꼬리를 잘라 샘을 만들고 반짝이는 물결이 흐르는 붉게 타오르는 인생 부두에 배는 사라지고 노만 남아 내일을 그리다 지쳐 스러진 너의 발자국만 남은 강나루에 그림자 없이 피어난 꽃 연어 꽃잎이 바람처럼 쏟아지고 추억이 꽃잎처럼 겹겹이 쌓인 호반위의 오솔길을 따라 은빛으로 빛나는 물결위에 피어서 아련하게 손짓하는 무지갯빛 기억의 조각들이 흩어졌다가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여름밤의 반딧불이처럼 가슴속에서 잠든 꿈결에 속삭이고 그리움이 산처럼 쌓여서 평생을 올라도 건너지 못할 봄날의 그 개여울에 가고 싶다 서영석(徐榮錫) - 시인 - 아호 : 녹정(鹿井) -
굿판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새들이 방문까지 날아와 지지배배 하며, 시끄럽게 목청 높여 지저귀는 소리에 단잠을 깨운다. 창문 앞뜰에는 꽃들이 화사하게 얼굴 내미는 계절의 발걸음을 잊은 듯 어린 시절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뒷동산에 진달래꽃, 할미꽃, 벚꽃, 목련이 온산을 뒤덮어 흰 물결에 붉은 점 수놓고, 아지랑이 춤추는 어느 날 오후였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바라보면 서쪽에는 야트막한 산이 시내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봉수골에서 바라본 발아래 펼쳐진 마을은 만개한 꽃으로 덮여 있어 한층 더 아름다움을 더한다. 서쪽 야산에 시내로 가는 지름길을 따라 우리는 학교를 오가곤 하였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처럼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름길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 봉수골 언덕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징. 장구. 꽹과리 소리가 요란스럽게 요동쳐 우리의 귀를 자극했다.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오영(가명)이네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마당에서 굿판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시절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은 아프거나 집안의 길흉화복이 있을 때면 용한 무속인을 수소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