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사람들

아흔두 살의 군내면 기부 천사, "작년에 한 약속 지켜서 뿌듯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모교 청성초등학교에 1천만원 장학금 기부한 조춘묵 어르신

 

조춘묵 할아버지는 1931년생으로 올해 아흔두 살이다. 할아버지는 지난 10월 6일 자신의 모교인 군내면 청성초등학교를 찾았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모교 방문이다. 교장실로 들어선 할아버지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비닐로 돌돌 싼 돈다발 뭉치가 나왔다. 현금으로 1천만 원이었다.  

 

조춘묵 할아버지는 작년에도 모교에 장학금 1천만 원을 쾌척했다. 당시에도 몇 년 동안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고, 또 할아버지가 집 앞에 있는 500여 평의 밭에서 포도, 감자, 콩, 고추 등 농사를 지어서 판 돈까지 함께 가져왔었다. 

 

할아버지는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이 돈이 내가 다니던 모교 청성초등학교 신입생들 장학금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라며 작은 소망을 전했다.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귀하고 어렵게 모은 돈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이유를 묻자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한 학년이 한 반씩이었어도 80명씩은 있었다. 그런데 현재 청성초 전교생은 60여 명뿐이다"며 "입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 혜택을 주어서 학생 수가 늘어나게 해서 모교가 문을 닫는 일은 절대 없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군내면 좌의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포천 토박이다. 현재 사는 이 집에서는 13대에 걸쳐 450여 년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일찍 어머니를 여위었다. 당시 집 안이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3학년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런 조춘묵 할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이 바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한동 총리였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이한동 총리는 포천에 올 때마다 조춘묵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한동아, 군내면 출신이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니, 이제는 더 올라갈 데라고는 임금님밖에 없네" 하면서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포천 토박이인 할아버지의 포천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언젠가 포천에 수해가 크게 나서 군내면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났을 때, 할아버지는 제일 먼저 군내면사무소에 찾아가 수재의연금 100만 원을 선뜻 기부한 일도 있다.

 

할아버지는 또 95년도에는 자신이 소유한 땅 100여 평을 마을 주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현재 이곳에는 좌의1리 경로당이 지어졌고, 현재 좌의리 마을 어르신들의 유용한 쉼터다. 

 

"이번에 청성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하고 돌아오는 데 너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다. 저희 할머니(아내 이차순, 90세)는 마을에 경로당 땅을 기부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장학금을 마련할 때도 무척 좋아했다. 이번에 1천만 원을 마련할 때 부족했던 돈은 할머니와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주었다"고 전했다.

 

조춘묵 할아버지와 두 살 터울인 이차순 할머니는 각각 19살과 17살이던 1949년에 결혼해 1남 5녀를 낳고 74년을 다정하게 살아왔다. 슬하의 병희, 민희, 병현, 국희, 숙희, 문희 등 6남매 역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고 우애가 좋기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작년에 1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을 때 할아버지의 자제들은 모두 제 일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큰딸 병희 씨는 "부모님이 저희가 드린 용돈을 모아 장학금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웠다"며 "이번 장학금 낼 때는 저희 형제들도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부모님의 뜻에 따랐다"며 장학금 기부에 동참했다. 

 

'군내면의 기부 천사'로 불리는 조춘묵 할아버지와 이차순 할머니는 구십의 나이에도 아직 정정하다. 앞으로도 아낌없이 남을 도우며 건강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겠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 두 어르신의 표정이 보석처럼 빛난다. 

 

"작년 장학금을 기부했을 때 제가 몇 년 더 살게 되면 다시 한번 더 장학금을 마련해 청성초등학교에 기부하고 떠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1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되어 너무 기쁘다"는 조춘묵 할아버지. 이웃 사랑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어르신이다.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마치고 상쾌한 마음으로 나서며 바라본 가을 하늘이 이날따라 유난히 보석처럼 맑고 청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