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작은 기쁨, 즐거운 웃음이 많은 사회를 보고 싶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우리는 대부분 경사로운 일을 소원하며 살고 있다. 출생, 혼사, 입학, 어려운 시험 합격, 입신양명, 부의 취득은 대체로 큰 기쁨을 주는 일이다. 경제가 매우 어렵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생활이 힘들고, 장사는 되지 않고, 인심은 점점 삭막해져 간다고 한다. 살기가 팍팍하고 영 재미없다 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 역전의 한방을 바라는 풍조가 더욱 확산되어 로또 등 각종 복권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대박’을 노리는 사회적 심리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 대박이라는 말은 2000년 초까지는 어린이나 젊은이의 대화, 특정한 분야에서 다소 저급하게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큰 횡재 등을 바라는 심리를 담은 일상어가 되었다. 대박이란 말은 영화계 등에서, ‘흥행에 성공함’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 말은 ‘바다에서 쓰는 큰 배, 큰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큰 배가 입항을 하면 뜻하지 않은 많은 수익이 생기는 일이 있어서 오늘날의 유행어 대박의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지 않았나 유추해 본다. 흥부가 큰 박을 터뜨려 횡재하는 장면을 연상하여 ‘큰 박 → 대박’과 같은 말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요즘 일상어 ‘대박’의 어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이도 있으나 이 또한 별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대박이라는 말은 ‘큰 행운이나 성공’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다 ‘복권 당첨 등과 같은 큰 횡재’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그러다 지금은 일상언어에서 엄청난 유행어가 되었다. 큰 노력 없이 ‘요행수를 바라는 심리’, ‘한탕주의에 대한 기대 등 사행 심리’가 우리 사회 전반에 폭넓고 번져나가는 것 같아 적이 걱정되는 바이다.

 

그래서 필자는 노력 없이 기대하는 큰 기쁨, 즐거움의 ‘대박’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능한 소소한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일상생활 속의 작은 기쁨’을 ‘정당한 노력’으로 찾고, 거기에서 오는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법정 스님의 글이 공감을 준다.

 

우리처럼 산골에 묻혀서 사는 덜된 사람들은 둘레의 지극히 사소한 일들 속에서 삶의 잔잔한 기쁨을 찾는 수가 있다. 이를테면, 고무줄로 된 허리띠가 탄력을 잃고 느슨해져서 자꾸만 바지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성가셔 하다가 어느 날 새 허리띠로 갈아 낀 다음의 그 든든함. 이것도 홀가분한 기쁨일 수 있다........ 중략......장마가 갠 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낫으로 베다가 풀 섶에 가려진 커다란 호박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이거 웬 호박이냐는 경우도 살아가는 기쁨이다. (법정스님의 산방한담 '맑은 기쁨' 중에서)

 

사회는 어수선하고, 생활 전반이 어려워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남북관계, 세계 경제 외교 환경, 지구 환경 등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으니 더더욱 그렇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우리 생활과 상황, 환경이 어려울수록,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갖고 즐겁게 생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활력소가 될만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즉 일상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슬기로운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은 기쁨일지라도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보다 큰 대박 같은 기쁨’을 찾는 것이 좋다. 작지만 더 큰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 일상의 기쁨을 노래한 필자의 시를 소개한다.

 

<일상의 기쁨>

 

가뭄에 이어 지루한 장마...... 무더위 끝,

대궁 다발 사이 불쑥 피어난 이슬 맺힌 꽃대

동양란의 분만이 기쁨을 준다.

한여름 간난에게 주는 작은 선물

 

단잠에서 깨어나

새벽 강에서 만나는 작은 나팔꽃의 미소

바람기 없어도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어린 나뭇가지 평화로운 춤사위와 반짝이는 물결......

속내 깊게 흐르는 강이

부지런한 사람에게 주는 아침 선물

 

소식 없던 제자가 보내온

매실 한 상자와 문자 메시지

‘유화에요, 애들 잘 가르치고 있어요. 근처에 오시면 연락주세요’

모두에 감사하라는 세월이 주는 보람과 가르침의 선물

 

겨울 아침 백색으로 찾아와

기쁨을 주는 황홀경, ‘눈의 세계’처럼

많은 사람에게 은혜로운 선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은 우연도 있지만 대부분 필연으로 다가오는 듯싶다. 대체로 내가 노력한, 배려한, 관심을 기울인, 사랑한 대가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아 그런 생각을 해본다. 속정 깊게 대해 온 이웃이 주는 따뜻한 인사와 작은 선물, 최선을 다해 가르친 제자의 감사 인사 등...... 사랑으로 기른 자식에게서 얻는 값진 기쁨 등은 더더욱 그러하다. 자연이 주는 기쁨 또한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새벽 또는 저녁에 부지런 떨어야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이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 이해가 있어야만 느껴볼 수 있는 기쁨이다.

 

산길을 걸을 때 나무 위를 오가는 앙증맞은 다람쥐 한 마리, 시월의 농촌 마을 뒷산을 오를 때 눈에 띄는, 햇빛을 받아 발갛게 반짝이는 밤 아람 서너개 개가 기쁨을 준다. 서녘 하늘을 곱게 물들이고 있는 황혼의 감동, 구름 하나 없는 가을 밤하늘에 쏟아질 듯 알알이 박혀 있는 별들의 향연이 주는 경이로움, 단잠을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고 보았을 때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온 백설이 주는 신선함 등이 모두 일상의 기쁨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나아가서 우주가 선사하는 작은 기쁨 또한 그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심미안이 없으면 누릴 수 없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이와 같은 작은 기쁨들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때로는 슬픔, 시기, 질투, 미움 등 반갑지 않은 감정들을 덮고, 희석하고, 물리치는 큰 역할을 한다. 끝으로 신영복 교수의 잠언록이라 할 수 있는 언약의 ‘처음처럼’ 글을 소개한다.

 

큰 슬픔 작은 기쁨

 

큰 슬픔은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기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사회와 국민을 보자니 웃음이 줄어들고, 갈등과 우울함, 슬픔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쁨이 많은, 그래서 웃을 일이 많은 대한민국, 우리 사회를 보고 싶다.

 

 

 

서재원 이력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학교, 포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등학교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