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 대륙 횡단여행기-아홉 번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Day-19 & Day-20 

Mental bootcamp 여행은 정신력 훈련장
 
여행은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은 것을 우리에게 채워준다. 여행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 물질, 동반자, 시간... 등 그 모든 것을 이고 앉은 기본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본다. 마음에 어두움이 짙어서 즐거워야 할 여행이 무겁고 어두웠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이번 여행도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무겁고 어두운 짐도 있어서, 준비하는 동안 그다지 설레고 기대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매일 글을 쓰며 여행이 풍성해지고, 여기저기 아프려고 하던 몸도 그런대로 3주 가까이 잘 견뎌내고 있었다. 
           

19일째 되는 어제는 비가 오고 추운 날씨였다. 그 전날 Mammoth Hot Springs에서 85도였는데, 우리가 묵는 동네 비 오는 날의 날씨는 45도 정도.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널뛰는 험한 날씨다.  
           

서로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음과 서로에게 느껴지는 단점들을 참으며 24시간 같이 움직이는 여행에서의 피곤함이 추운 날씨와 맞물리며 섭섭하게 느껴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미국식 표현 melt down(멘붕?)이 왔다. 급성 우울증의 증상, 물도 마시고 싶지 않고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상태다. 

 

친구들이 얘기하던 '우울증 증상이 이런 거구나'라고 느끼며, 별의별 슬픈 생각들이 온몸에서 기운을 쫙 뽑아가 버린다. 그래도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너무 멀리 와있으니, 어떡하든 스스로 회복해 내려고 노력해본다. 남편도 비슷한 상태인지 내가 차에서 안 내리고 있어도 혼자 다니며 구경한다. 밖에 있기도 추운 날씨에 온천물도 아닌데 수영이 허락된 계곡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땅 밑으로 3마일만 파고 내려가도 마그마가 있어서 아무 데서나 김이 오르는 온천이 솟고 간헐천이 솟는 땅, thin crust(얇은 껍질)라는 여기 흙처럼 우리 둘 다 맘속에 마그마를 품고 thin crust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  

 

 

우리가 묵는 곳은 공원의 동쪽이고, 서쪽은 여기저기서 김이 오르고 온천이 부글거린다. 60만 년 전에 터진 거대한 화산으로 형성된 이곳의 지질학적인 현상은 이상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고, 또 두려운 모습이다.  60만 년 전의 규모로 다시 폭발한다면 그것이 인류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는 위력일 것이다. 혹여 발을 잘못 디뎌 빠지기라도 하면, 생명체가 견디지 못하는 열기를 품고 있는 웅덩이 옆에서 곱고 여린 야생화들이 자라고 산불이 난 자리에선 모내기한 듯 촘촘히 새로운 lodgepole pine이 자란다.
 

 

밟으면 어디서 부서져 터질지 모르는 땅이라, boardwalk(나무판자로 깐 보도)를 깔아놓았고 그 위로만 걸어 다니며 구경해야 하는 동네다. 그동안 내가 고생해서 번 돈, 빡빡한 세율로 허벌나게 떼어간 연방정부에서 여기다가 돈을 잘 깔아놓고 발라놓고 관리하고 있어서, 우리는 지금 편리하게 이 광활한 야생의 자연을 즐기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겨울 날씨, 35도(1.6C)로 시작한다. 어젯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어, 기운 없어 축 늘어져 기절한 듯 자고 일어나 물부터 마시고 나니, 조금 정신이 나고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여행은, 내 마음도 제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수 없이, 예정된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추스르고 훈련해야 하는 bootcamp(군화로 걷어차이며 감당하는 혹독한 훈련)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몬태나주에 있는 Glacier(빙하) 국립공원으로 떠난다. 그곳에 산불이 나서 우리가 예약한 숙소를 비롯해 그 일대가 임시로 닫게 되었다고 하여 일정을 변경하려다가, 내일부터 다시 개장한다고 하니 예정대로 그곳을 향하기로 했다. 산불도 생태계에 필요한 자연이 하는 일이라서 관찰은 하지만 진화는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곳은 아직도 산불이 진행 중에 있다고 했다. 
 
Day-21 & Day-22 가을의 전설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옐로스톤의 아침, 마지막 샤워를 마치고 9시쯤 캠프를 떠났다. 네 번의 미국 대통령의 임기를 역임하며 세계사의 굵직한 풍상을 겪어내느라 바빴을 FDR,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 세워져 옐로스톤의 상징적인 관문으로 서 있는 북문을 향해서 나가니 몬태나주 땅이다. 

 

듣던 대로 옐로스톤의 한 귀퉁이는 몬태나주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북문 바로 앞에서 몬태나의 첫 번째 마을, Gardiner를 만난다. 국립공원 안에 숙소를 못 잡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작은 마을을 통해서 몬태나로 진입했다. 카지노가 보이는 걸 보니 인디언들이 사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백만여 명에 불과한 몬태나엔 인디언들이 전체 주 인구의 6% 정도 남아있는데, 86%를 차지하는 백인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몬태나의 남단에서 출발해 GPS가 8시간 걸린다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북단의 Glacier 국립공원까지 놀며 쉬며 12시간 가까이 운전했다. 스페인어로 산이라는 뜻에서 시작된 주의 명칭 몬태나처럼, 오래된 영화지만 몇 년 전 서울 가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영화 '가을의 전설'. 브래드 피트 주연의 그 영화에서 보았던 가슴이 먹먹해 오던 몬태나의 아름답고 광활한 풍광이 12시간 내내 차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Big sky라는 별명을 가진 몬태나의 하늘은 평평한 지평선의 중부 평원과 달리 천체 관측소의 동그란 하늘처럼 멀리엔 항상 산들이 둘러선 거대하고 동그란 하늘이 아름답고 시원하게 열려서 가슴을 벅차게 한다. 영화에서도 브래드 피트의 동생이 1차대전에서 전사하는데, 실제로 1차대전 중 몬태나 주민들이 거의 과열된 애국심에 불타서 전쟁에 제일 많이 몰려나가서, 전사자 수가 인구대비 제일 많았다고 한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몬태나도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이곳에 뿌리박고 살면 애국심에 불타오를 것 같다.  
 
두 번째 만난 마을 Livingstone에서,  집 떠난 지 벌써 3주나 되어 남편이 이발소 찾아서 머리를 깎는다. 혼자 하품하던 백인 아저씨가 이쁘게 깎아주어 여행 중 이발도 해보는 경험을 한다. 팁 두둑하게 주니 깜짝 놀란다. 오랫동안 휴대폰 불통 지역에서 살다가 속세로 나오니 전화가 팡팡 터진다. 남편 이발하는 사이 우리 동네 친구와 오래 안부 전화를 했다.  
 
영화에서 본 장면들을 떠올리며 Gallatin 산맥을 지나 몬태나에서 4번째 크다는, 인구 4만의 도시 Bozeman에, 점심을 먹으러 들렸다. 생각보다 부동산 가격이 비싼 도시다. 부자들이 몬태나에 별장을 갖고 있다더니, 공항이 위치하고 Gallatin mountain이 가깝게 있어서 이곳을 선호하는가 보다. 미국이 이렇게나 넓어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은 부동산값이 엄청 비싼 게 신기하다.  
 
오면서 천지 사방에서 풀을 뜯던 소들을 보고 몬태나의 스테이크를 먹어보기로 했다. 다운타운에 들러 차를 댈 주차장을 찾다가 우연히 한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이런 데서 한식이 맛있을 리 없겠지만, 신기해서 스테이크를 먹으려던 예정을 바꾸어 그리로 들어갔다.

 

한국말을 못 하는 2세 젊은 아줌마와 백인 청년들이 카페식으로 꾸며진 주방에서 비빔밥과 잡채와 만두 정도를 만들어 파는데, 손님이 꽉 차서 30분이나 기다려 엉터리 같은 비빔밥을 얻어먹었다. 보스턴에서 자란 여주인이 이곳에서 대학 나온 신랑을 만나 결혼식 하러 왔다가,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아예 정착하게 되었단다. 우리 기준으론 장난 같은 한식이지만 장사 잘하고 있으니 대견하고 기쁘다.  
 

 
영화에도 나오는 도시, 몬태나의 주 행정수도 Helena도 지난다.  주유하고 장도 본 후 마지막 4시간은 쉬지 않고 달리며 인구 천여 명의 작은 마을들을 지난다. 그중 Choteàu라는 마을, 토크쇼 호스트 David Letterman이 여기 출신이라고 한다. 이런 외진 곳에서 자라서 그런 유명인이 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백야는 위도 48.6도 이상인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곳이 북극이 가까워서인지 캠프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9시 무렵인데도 백야 현상처럼 주위가 환하다. 여기에 우리가 1주일 동안 살아갈 장막을 쳤다. 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열매인 huckleberry가 가득 열리고, 진분홍 야생화 fireweed가 둘러싼 Aspen 자작나무 숲속이었다.

 

쾌적한 날씨의 아늑한 캠프에 안착하니, 여태 이곳저곳에서 멀쩡히 잘 놀다 오고는, 괜히 울컥하다. 야단맞고 고생하다가 따스한 품에 안겨서 위로받는듯한 이 느낌은 뭘까? 험악한 날씨와 너무나도 어마무시한 옐로스톤의 자연에 주눅 들고, 여행이 힘들어지는 듯한 느낌으로부터 위로받고 쓰다듬을 받는 느낌이다.

 

이곳 숲은 아직도 일부 불타고 있어서 우리가 묵는 캠프는 일시 문 닫았다가, 우리가 도착하는 날 다시 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용하고 빈자리가 많다. 오랜만에 캠프에서 모닥불도 피우고 보름달이 훤한 밤하늘도 즐긴다.  
 

 

 

잘 때 좀 추웠던 지난 일주일과 달리 쾌적하고 아늑한 밤을 보내고, 아침엔 지천으로 널린 huckleberry를 따서 계란과 기름진 미국 소시지가 곁들인 풍성한 미국식 아침을 준비해 먹으니 여유로운 캠프의 아침이 빛난다.
 

서울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이 늘 인용하시는 톰 소여의 허클베리 핀과 같은 이름의 열매는 신맛이 없고 고유의 향기가 달콤한 독특하고 맛있는 berry 종류다. 이 동네 요리는 뭐든지 허클베리로 만드는데, 허클베리 파이, 아이스크림, 칵테일, 쉐이크 등등 모두가 허클베리 잔치다.  들소고기도 허클베리 소스와 서브한다니 먹어보려고 한다.

 

부모가 없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야단맞지 않는 허클베리 핀을 톰 소여가 늘 부러워하는 예를 들며, 우리도 하나님 없이 멋대로 살고 싶어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 책을 쓴 마크 트웨인은 남부 출신인데 나는 갑자기 그가 허클베리를 먹어봤을까 궁금해졌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로 산 정상에서 공원을 동서를 가로지르는 Going to the sun drive가 산불로 인해 이쪽에선 막혀있으니, 우리도 이번 한 주는 천천히 놀며 쉬며 지내기로 했다. 관광객으로 와서 한 곳만 보라면 간다는 곳 Many Glacier로 가서 유서 깊은 스위스 샬레식 hotel도 구경하고, 야생버섯 파스타도 사 먹고, 허클베리 마가리타도 마시고, 내일 프로그램도 예약하고, 호수도 바라보다가 캠프로 돌아온다.
 

 

몬태나, 와이오밍. 티탄이나 옐로스톤에서 스타벅스를 보지 못해 라떼 한 잔 마시지 못했는데, 그래도 여긴 자체 브랜드 에스프레소 바는 있어서 간만에 라떼 한 잔을 시켜 마셨다. 그런데 와이파이가 영 신통치 않다. 있다 해도 너무 미약해서 되는 듯 안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캠핑을 즐기는데 첫째 조건은 쾌적한  날씨라는 것을, 겨울이 아직도 널뛰는 옐로스톤에서 일주일 보내고 여기에 와서 새삼스레  절감했다. 

 

Day-23 와이파이 아지트를 발견하다 
 
이곳은 상당히 오지임이 확실하다. 와이파이 있다 해도 열악한데, 여행 중 만난 젊은 애들이 귀띔해준 동네 카페에 오니 와이파이가 비교적 양호하다. 가져온 식량이 아직도 가득하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이곳에서 외식했다.


한적한 길가에 재미있는 데코로 서 있는 two sisters café에도 와이파이 터져주면 거기 매일 갈 텐데... '외계인 환영'이라고 지붕에 쓰여 있는 이 식당엔 자니 카슨 등 유명인사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러서 밥 먹고 간다는 곳이다. 인디언 혈통의 두 자매가 여름 3개월만 여는데, 여기서 맛본 허클베리 파이는 단연 최고였다. 들소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시 가보려고 했는데, 와이파이 때문에 지금 와있는 집으로 출근할듯하다. 
 

 
이곳은 Blackfeet를 비롯한 세 부족의 인디언들이 살던 곳이고, 아직도 그 후손들이 많이 남아있다. 황량한 길가에 미국에선 본 적 없는 남루하고 낙후된 마을이 보이면, 인디언 종족의 상징인 깃발이 걸린 그들의 마을이다. 폐허처럼 보이는 그 마을을 만날 때마다 왠지 가슴이 시리다. 이곳에 도착하던 날 저녁에 Visitor center에서 본 인디언들의 공연에서 들은 북소리와 노랫소리에서 우리나라 토속신앙과 흡사한 샤머니즘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에도 있는 대로 늦장부리고  어제보다 좀 더 많이 딴 허클베리랑 아침을 실컷 먹고는 어제 답사간 Many glacier로 향한다. 2시에 호수에서 보트도 타고 레인저와 하이킹하는 프로그램에 예약이 되어 점심에 도착해서, 100주년 맞는 호텔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점심부터 즐긴다. 현지에서 나는 식자재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이 레스토랑의 음식은 맛있지만, 디져트로 먹은 허클베리 파이는, two sisters에서 먹은 것만 못했다.  
 

 
에메랄드빛 호수를 건너 숲속을 걸어, 빙하가 녹은 호수로 가벼운 하이킹을 하러 갔다. 차가운 물 속에 발도 담가보고 물가에 나와 있는 무스 가족들도 만났다. 
 

이곳은 고도와 위도가 다 높은데 낮 기온이 85도로 더운 편이다. 밤엔 45도다. 그런데도 9월엔 호텔이며 식당 등 모두 문을 닫아걸고 겨울로 들어선다고 하니, 인구가 왜 희박한지 알 것 같다. 날씨 좋은 데서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산다. 
 
저녁 9시엔 호텔 100주년 기념으로 지난날 여기서 일한 직원들을 모두 초청해서 음악회를 한다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냥 떠났다. 이 호텔은 예전엔 청소부도 음대생만 고용해서 뮤지컬 공연도 하고 청소도 시켰다고 한다. 음악도들에게 무대를 제공해주고 열정페이를 한 셈이다.


1936년에 큰 산불이 나서 호텔로 번질뻔한 걸 직원들이 목조건물에 물 뿌려가며 겨우 건졌는데, 주인이 '왜 그랬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경제 대공황 중이라 호텔이 텅텅 비어서 차라리 불에 타서 보험금을 타면 좋았겠다고 계산한 주인의 심정을 알 만도 하다. 
 

 
이곳은 캐나다 밴프의 예고편이라고 볼 수 있는 경관이다. 그러나 미국의 야생적 자연과 몬태나의 big sky가 있고, 에메랄드빛 호수가 보이는 호텔 라운지에서 아무리 앉아 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고, 호숫가 호텔에 묵고 싶으면 200여 불이면 가능하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넘치고, 500불은 줘야 호숫가에서 잘 수 있고, 너무 많은 관광객들로 호수가 바라보이는 호텔 라운지에서 몇 시간 동안을 앉아있을 구석은 절대로 없을 밴프보다는 이곳이 훨씬 만만하고 정겹기만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