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 대륙 횡단여행기-여덟 번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Day-16, 천국과 지옥 
 
누군가 옐로스톤을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 기억난다. 미국 국민들이 일 인당 10평 정도의 분깃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마무시하게 넓은 이 공원을 하루에 한구석씩만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오늘 만난 어떤 노부부는 매년 와서 한구석만 일주일간 보고 간다고 한다. 땅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유황 가스와 지열을 품어 올리고, 지각의 변동과 화산활동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에 자리 잡은 광활한 고원이 옐로스톤이다.
 


오늘은 시간 맞추어 10시에 있는 레인저 프로그램에 갔다. 해안 경비군에서 퇴역한 후 7년째 ranger로 일한다는 61세 아저씨의 깊이 있는 지학적, 역사적, 생물학적, 생태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부글거리며 스팀을 품어올리는 진흙 간헐천, 용의 입이라고 이름 붙은 사납게 생긴 연못들을 돌아본다. 이 진흙 가마솥들은, 온도도 뜨겁지만 pH 1.89 정도의 극한 강산성 독극물이라고 한다. 억수로 돈 써가며 전쟁 무기 만들지 말고 이 흙탕물을 물총에 장전해서 쭈악 쏴대면 전쟁 끝! 아냐? 이런 만화도 그려진다.
 
지열이 땅을 덥혀서 눈이 마구 오는 극한 겨울에도 푸른 초장인 온돌방 같은 작은 계곡은 들소들의 겨울 사랑방이라고 한다. 와이오밍의 자메이카다.
 
열심히 준비해온 ranger의 설명을 들으며, 미국 정부는 국민들을 엄청나게 똑똑한 인간들로 교육시키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연방정부의 공무원인 ranger들은 항상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설명으로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돈 내고 가는 관광버스 가이드들보다 훨씬 학구적이다. 거스름돈 계산도 계산기 없이는 못 하고, 몸무게에 맞는 투약 정량계산은 계산기 있어도 빨리 못하는 미국 간호사들에게서, 그런 건 암산으로도 휘리릭 계산해 버리는 나보다(한국 기준으로 보면 나는 산수 지진아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깊은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력을 보게 될 때,  문득문득 움찔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묵고 있는 canyon village는 공원의 중앙에 위치하여 바글대는데, 오늘 들러본 Lake village는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이 공원에 평화는 없다!'라고 외치던 나를 보기 좋게 입막음해 버린다. 고도 7,000피트 이상에 자리 잡은 호수 중엔 제일 크다는 Yellowstone lake를 바라보는 이 구석진 동네는, 이 공원을 상징하는 엄청난 볼거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조용하기 짝이 없다. Lake lodge 라운지는 우리가 매일 저녁 와서 노는 우리 동네 lodge lounge와 달리 한산해서 거의 적막하다.


1925년에 지어진 통나무 lodge( 별장) 건물이 이 지역과 멋스럽게 어우러지고, 통나무와 바위로 지은 이 동네 visitor center의 건축도 눈여겨보며 감탄한다. 나만 그렇게 감탄한 곳은 아니다. 이런 멋진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들의 공적을 건물 옆에 구구절절 잘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며 확인했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Yellowstone hotel이 호숫가에 운치 있게 서 있고, Yellowstone이라고 건물도 노란색이고 정문 앞엔 노란색 앤틱 자동차가 서 있다. 장식용이겠지? 

 
호숫가와 그 옆의 숲과 초원을, 젊고 이쁜 처자인 또 다른 ranger를 따라 걸으며, 이곳에 오며 기대하지 않았던 잔잔함과 평화를 맛보며, 어제 아침 공포체험으로 저녁까지 진정이 되지 않아서 와인 마시고 다독거려야 했던 심령이 치유됨을 느낀다. 여기도 저기도 만개한 루핀을 실컷 즐기고, 우리가 토끼풀이라고 부르던 클로버꽃이 이토록 아름답고 핑크로 피어 하얀색으로 저물어 가며, 하얀색의 정점일 때 그 꽃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하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루핀.


장대한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물에서 불쑥 솟아오른 티탄의 호수들과는 다르지만, 저 멀리 Absaroka  산맥 줄기가 보이고, 모래밭에서 물결이 찰랑이는 아름답고 조용한 호수는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Yellowstone의 풍경은 아닐듯하다. 
 

 
오늘은 날씨도 비교적 얌전하다. 그러나, 평균 해발 8,000피트에 솟아있는 고원인 이곳의 날씨는 매우 험악하여, 이곳의 특별한 생태환경의 형성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니, 이곳은 우리에게 자연 앞에서의 겸손을 계속 요구한다. 
 
어제 같은 현기증 없이 하루를 무사히 막 내리고 있음을 감사했다.

 

PS, 우리가 이곳을 떠난 일주일 후, 바로 이 호숫가에서 회색곰이 레인저를 잡아먹은 사건이 발생했다. 조용하고 호젓한 곳에서 하이킹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여겨져서 여기 머무는 동안에 줄곧 레인저만 따라다닌 걸 잘했다고 생각된다.


Day-17, University of Yellowstone 
 
어릴 때 부모 돈으로 학교 다닐 땐 공부가 하기 싫어서 언제나 공부 안 해도 되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여행이라고 이 멀리까지 와서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지는 않았어도, 먼 길 운전해 다니면서 레인저들의 강의 듣기 바쁘다. 워낙 광대한 공원이라서 구역별로 나누어 딴살림 차려서 동네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곳엔 800여 명에 이르는 ranger들이 근무한다. 포드 대통령도 백악관 입성하기 40년 전에 이곳에서 ranger로 일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나는 레인저들도 생물학, 역사학, 환경생태학 등의 학사학위 한두 개씩은 가진 인재들인데, 학교 선생님과 교수들이 은퇴 후에 second career로 많이 오고, 심지어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사람도 줄 서 있다. 이렇게 지성과 열정으로 무장된 레인저들이 강의하며 트레일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되도록 많이 참여하려면 거리와 시간 등을 고려하여 하루의 일정을 짜는데 골머리를 써야 한다.


Yellowstone에 와서는 관광객이 바글대고 날씨도 변덕스럽고 땅도 꿈틀거리고, 스케줄 짜느라고 머리도 굴려야 하고, 이 모든 일은 남편이 담당하지만, 강의도 열심히 들어야 하는 번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인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 
 

 
아침부터 9시 30분 첫 강의에 맞추어서 집에서 한 시간 운전해 가야 하는 West thumb으로 달린다. 얼굴에 찍어 바를 비비크림도 차 속에서 두들기며, 느긋함과 거리가 아주 먼, Yellowstone 대학의 하루가 시작된다.


젊은 남자 Ranger가 기다리는 곳에 이르니, 대학 동창이라는 두 할머니가(64세라니 할머닌데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없다) "우린 Ranger들의 명강의를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높은데, 너도 잘할 수 있니?"라며 젊은 남자 주눅이 들게 당당한 태도로 물어본다. 유타대학 교수라는 한 할머닌 2년 후 은퇴하면 ranger 비슷한 camp host를 하려고 준비 중이란다. 동물관리법, 공원 규칙 등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그중 제일 어려운 게 사람 관리라고 한다. 캠핑온 사람들이 규율 잘 지키도록 관리해야 하니까. 그 어려운 사람 관리로 십수 년 일해본 나에게는 절절하게 피부에 와닿는 얘기다.  
 
생물학 전공이라는 레인저의 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Yellowstone lake를 조망하는 언덕을 향해 하이킹한다. 가는 길에 엘크가 길을 막고 새끼들과 풀을 뜯고 있으니 멀리서 기다렸다. 그래도 마냥 자기 볼일에 열중하는 걸 보고, 우리가 가던 길을 돌아서 훨씬 멀고 험한 길로 언덕을 오른다. 걔네들 집이니 우리가 양보하는 게 당연하다. 또 새끼랑 함께 있는 엘크는 위협을 느끼면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르는 길에도 군데군데 연기가 폴폴 나는 지혈들이 산재하고 있지만, 초원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여기서는 산불이 자주 나는데, 자연적인 화재라면 지켜볼뿐 진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토양에는 양분이라고는 거의 없는데, 타서 쓰러진 나무들이 썩어서 땅에 양분을 주고 새로운 숲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나무 중 80%를 차지하는, lodgepole pine은 그늘을 싫어해서 빼곡한 숲에선 옆 가지를 다 떨구며 하늘만 향해서 자란다. 길고 쭉 뻗은 나무는 인디언들의 티피(삼각형 장막)를 짓는데 완벽한 재료라고 한다. 이곳 여름이 워낙 짧아서 나무의 성장은 매우 더딘지라, 우리 동네 10년생이 여기선 100년생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불이 나야 터지고 씨가 튀어나오는, 딱딱한 솔방울을 맺는다. 산불이 나도 자손을 퍼뜨릴 준비를 하는 식물 세계의 신비와 경이로움이다. 이런 엄청난 비밀들이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박봉이라도 레인저가 되고 싶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산 정상에서 레인저가 강단에서 내려와서 퇴장하고 우리끼리 하산하면서부터는, 교수 할머니가 레인저를 자청하며 대학교 수준의 역사와 문화와 생태를 아우르는 강의를 타고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곰이 못 오게 시끄럽게 해야 한다며 한참을 열변을 토하더니 나에게 한국노래 한 곡을 청한다. 노래 못 한다며 쪼금 빼다가, 최근에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된 곡이라고 자랑질하며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고개 같은 구릉을 넘어가면서. 

 

 
첫 번째 강의를 마치고 남북전쟁의 북군 사령관이었다가 대통령이 되어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정한 Grant 장군의 이름을 딴 Grant village도 구경하고, Yellowstone 하면 떠오르는 Old Faithful 간헐천이 있는 동네로 향했다.  8년 전 관광버스에 실려 왔을 때도 여기서 내렸듯이 오늘도 한국 관광버스 두어 대가 서 있고, 관광객들이 진짜 바글거리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90여 분만에 한 번씩 품어나오는 물줄기 한번 보고, 이곳에 있는 여러 호텔의 흥미로운 건축과 인테리어를 둘러보고, 이 동네는 오늘의 짧은 방문으로 끝내기로 했다. 붐벼도 너~무 붐비기 때문이었다. 여기 전시된 사진 중 19세기 부자들이 여기서 놀던 모습을 보니 요즘 유행하는 글램핑이 떠오른다. 캠핑이  Glamorous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3시엔 다시 West thumb으로 와서 호숫가에 있는 간헐천과 온천을 돌아보며 레인저의 강의를 들었다. 호수 안에서도 부글대고 있는 곳이 많이 보였다. 호수 옆에는 너무 아름다운 색으로 당장 뛰어들고 싶은 뜨거운 물웅덩이들이 즐비했다.

 

이곳에 관광객들이 많으니 곰이나 맹수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한 엘크가 새끼를 낳았는데, 새끼가 이 뜨거운 물로 걸어가서 빠져 죽고, 레인저는 종일 울부짖는 어미의 소리를 들으며 여기에서 근무해야 했던 얘기를 들려준다.

 

이 호숫가에서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온천 사고는, 7살짜리 소년이 이 호수에 뛰어들어 사망한 일이라고 한다. 뜨거운 물에 빠져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순간 뜨거운 물이 식도와 폐로 들어가고, 금방도 못 죽고 한참을 고생하다 죽은 처참한 사고가 여러 건 기록되어 있다. 
 


호수 물속에  솟아있는 동그란 cone shape는, 예전에는 거기에서 물고기를 낚시해 그 분화구에 고인 뜨거운 물에 넣어 생선을 익혀 먹던 장소인데, 사람들이 하도 밟아서 무너지고 부서져 더는 온천물이 못 올라오는 장소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열심히 풀을 뜯으며 입가에 풀이 묻은 지도 모르고 열중하고 있는 buffalo, 혹은 bison을 보고 "열심히 먹으며 입가에 묻는 줄 모르곤 하는 당신을 닮은 거 같다"며 남편이 사진 찍으라고 차를 멈춰 세운다.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며 헐레벌떡 강의 들으려고 여행 온 거 아니고, 게으름 떨며 빈둥거려 보려고 1주일씩 잡았는데, 볼 것 배울 것이 너무도 무궁무진한 이곳에서의 일정은 마치 미국 정부의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대학에 와있는 느낌이다


Day-18 Once in my life 이런 날도 있다니
 
아침에 눈을 뜨니 맑은 하늘을 본다. 이곳에서도 국립공원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예배에 10시 30분에 참석하니, 뜬금없이 비가 온다. 김 기사님이 부지런히 우산 가지러 뛰어갔는데, 모두 지붕이 있는 무대로 모셔 올린다. 어린 자녀들 데리고 온 부부 두 가정과 우리, 그리고 아기 없는 부부, 기타 몇 명이 조촐히 찬양하고 예배드린다. 대학생같이 보이는 처자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얘기로 노트에 적어온 대로 수줍게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한다. 가장 사랑하기 힘든 모습의 바로 그 사람이, 사랑을 제일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다
 


예배를 마치고도 비가 계속 내린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니 비록 오늘이 안식일이지만, 이 넓은 공원 어느 한구석이라도 진도를 나가야 할 것 같다. 하이킹으로 몸을 많이 굴린 티탄과 달리, 관광객 내지 청강생의 생활이라 몸이 고달플 일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Yellowstone의 북쪽 문으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동네, Mammoth hot spring을 향한다. 여기 날씨는, 비가 온다고 멈출 일도 아니고 해가 난다고 안심할 날씨가 아니라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도로 공사 중이라서 안 그래도 먼 길로 두 시간 정도 걸렸지만, 숨이 멈출듯한(breathtaking) 경치가 어디를 가나 펼쳐지고 있었다. 
 

 

한참을 비경 속을 달려오니 고도가 2,000피트 낮아지고 기온이 쑥 올라가서, 화씨 80도 이상인 여름 날씨다. 이곳이 국립공원이 되고 나서, 교통이 워낙 불편해 부자들만 여기 올 수 있었고, 그들이 북문으로 들어와 첫 저녁을 여기 호텔에서 맞았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동원한 무도회로 멋지게 맞아주고 다음 날부터 먼지 나는 길을 포장마차로 다녔는데, 그나마 언덕은 말이 못 올라가서 손님들이 내려서 마차를 밀며 올라가서 다음 목적지로 간 다음 숙박하는 여행이었다고 한다.

 

멀쩡한 집 놔두고 구경 다니느라 생고생하는 것은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탐구 본능인 것 같다. 그 유서 깊은 호텔에서 남편은 bison 고기로 점심을 먹는다. Yellowstone에 도착하자마자 들판에 널린 들소들을 보며 식욕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숭어와 시금치 샐러드로 점심을 먹었다. 이 동네에서는 싱싱한 야채가 그리운 탓이었다. 
 
Yellowstone의 상징, 물감 팔레트 같은 온천 퍼레이드를 둘러본다. 8년 전에도 왔었지만, 모두 처음 보는 듯 새롭고 아름답다. 사진에서 본, 터키의 파묵칼레의 작은 버전 같기도 하다. 1년에 1,900번 정도의 지진이 관측되는 곳인지라 이 지역의 온천 풍경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살아서 꿈틀대는 땅이다.
 

 
국립공원 레인저가 생기기 전엔 기마부대가  주둔한 지역이기도 하여, 군인들의 막사로 지어진 돌집들이 아직도 직원 숙소, Visitor center를 비롯한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Yellowstone에서 제일 주목받는 색은 당연히 노란색이다. 야생화도 노란색 야생의 해바라기 등을 대표 주자로 내세운다.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진 아름답고 기기묘묘한 Hot springs terrace에는, 티탄에서 내가 사랑에 빠진 노란 야생화, butter and eggs가 지천이다. 오오, 내 사랑. 야생화 찍느라 하이킹 시간 많이 잡아먹는다고 구박하던 김 기사가 그 꽃을 알아보고, 자진해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준다.  
 

 
북문을 나가면  바로 만나는 동네에는, 사진이 변변치 않던 시대에 이곳 풍경을 그려 국회에 가서 국립공원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한 Thomas Moran의 작품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그 동네로 가는 길 근처에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가고 싶었던 노천 온천을 발견하고는 먼저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온천물이 지천인 이곳에 온천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는데, 미국의 국립공원 곳곳에는 자연을 훼손하지 못하게 인공적인 온천욕 장소가 없다고 쓰여 있었다. 그 대신 딱 한 군데, 차가운 강물과 뜨거운 온천이 만나는 강물 한 곳에서만 멱감는 걸 허용하고 있었다.


그림을 보러 가던 길은 당장 멈추고, 내 일생 처음 해보는 천연 노천 온천탕으로 향했다. 50여 명의 관광객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몸을 담그고 있는 Boiling river. 사람이 20분을 견디기 힘들다는 차가운 강물과, 그냥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온천물이 만나서 섞이는 지점, 인공 pool에서 노천 온천은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흐르는 강물에서, sagebrush 가득한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서 온천욕을 해보다니. 여태까지 가본 어떤 공중목욕탕보다 깨끗한, 흐르는 물에서 목욕해보았다. 내가 발견한 거라고 오만 생색을 내면서 집 떠난 지 오래 되어오는 노숙자의 육신을 따스하게 데운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넘쳐나는 이곳 온천물에 내 몸을 담가본 감동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것 같았다. 
 
Mammoth hot spring은 기온이 높고 건조해서 피서 목적이라면 숙소로 정하라고 추천하고 싶지 않았는데, 노천탕에 다녀온 후엔 마음이 바뀌었다. 더 나이 들어 캠핑이 시들하거나 힘들어진 후, 다시 여기 와서 호텔에 묵게 될 때 "지금까지 둘러본 여러 village 중에 어디에 묵을래?"라고 묻는다면, 다 좋다고, 아무 데나 방 있다는데 묵을 거라고  말할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