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중략>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시인 나태주 님의 <11월>에 유난히도 짧았던 10월 한 달을 보내고 11월을 맞는 감회가 진하게 묻어난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아온 한해도 이제 기억의 뒤안길로 멀어져간다. 11월은 기다리기도 전에 벌써 코앞에 다가와 버린 것이다.
달력을 뜻하는 영어 캘린더(Calender)는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따온 것으로 ‘회계 장부’라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네 달력에도 오만가지 메모를 채워가며 1년 열두 달을 보낸다. 달력에 나오는 11월(November)은 원래 아홉 번째 달이고, 섣달인 12월(December)은 열 번째 달이었다. 11월(November)은 라틴어 ‘노벰(Novem)’에서 유래한 것. 9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9월이 아닌가?
구태양력에 따르면 지금의 9월(September)은 일곱 번째 달이었고, 10월(October)은 여덟 번째 달이어서 1년은 10개월이었다. 그러던 것이 훗날 7월에 태어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8월생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Augustus Caesar) 등 로마 영웅들을 기려 그들 이름을 중간에 끼워 넣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합리적인 율리우스(카이사르)력이 채택되면서 8~9월(July~August)이 보태져 12달로 늘어난 것이다.
11월엔 누구도
절망감에 몸을
떨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임영 시인의 <11월의 기도>에는 지금 우리 모두의 염원이 담겨있다. 서양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같은 큰 명절이 들어있지만, 우리나라 달력엔 11월에 빨간 글씨가 안 보인다. 국경일이나 공휴일조차 없다. 다만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 데이’. 2003년부터 행정자치부가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빼빼로 데이’ 대신 가래떡을 먹는 가래떡 데이로 지정하여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후 이것이 확산되어 농림부에서도 농업인의 날이 주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詩句)처럼 낙엽이 지며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들어 있는 11월, 가을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수확이 끝나 느긋한 분위기의 농촌에서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철 이른 추위를 달래본다.
11월 이맘때쯤이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그래도 한줄기 밝은 빛은 '코로나19 백신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는 소식. 우리도 이르면 내년 3월께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거란다. 남은 11월을 더욱 사랑하고, 모쪼록 나눔과 베풂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