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김순희 작가의 수필, '조국에의 향수 속에서' 그 후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포천문협회 이사

 

'조국에의 향수 속에서' 그 후

 

내가 철학자이신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교수님의 저서 '조국에의 향수 속에서'라는 에세이를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새파란 청춘이었던 나는 그저 교수님이 처음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겪은 생소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겼는데, 하와이에 도착해서 배가 고파 음식을 시키려고 음식점에 들어가셨단다. 메뉴판을 봐도 아는 것이 없어서 그냥 파인애플 망고 레이를 시켰더니 밥이 아니고 온통 과일만 나왔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 가난한 대한민국에서는 파인애플이나 망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벌써 50년도 넘은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교수직에서 물러나신 노철학자님은 아직도 103세라는 연세에도 글을 쓰시고, 가끔 후세들에게 본받을 만한 말씀을 해주시니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른다. 1920년에 태어나셔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지나 신생 대한민국이 70년 동안 성장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겪어오신 산 역사의 증인이시자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김형석 철학자님!

 

17세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직접 들었고, 광복 후 학교 선배인 김일성과 아침을 같이 한 적도 있으며, 윤동주 시인과는 같은 반 친구였고,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은 2, 3년 선배였다니 살아있는 역사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1)

 

요즘 우리 포천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철학, 문학,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나라를 되찾고 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경제발전에 매진하느라고 미처 정신적인 문화를 계승하거나 삶의 철학을 뒤돌아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문화와 교양, 철학에 대한 관심을 깊이 기울여야 할 때다.

 

다행히도 그 시대에 대학 강단에 서서 젊은이들을 깨우쳐주신 몇 분의 철학 교수님들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에 책을 껴안고 심호흡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요즘 생각해 보면 그 깊은 뜻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가슴에 와닿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지금은 100세 시대! Why to live? How to live? 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김형석 노철학자님은 인생을 3단계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선견지명을 말씀해 주신다.

 

‘젊어서 30세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는 단계요, 60세까지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단계, 60세 이후에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한 그루 사과나무에 인생을 비유하자면, 열매 없는 나무는 의미가 없으니, 60세 이후가 인생의 열매를 맺는 보람 있는 시기이다.

 

"60세에서 75세가 가장 성숙하고, 나를 믿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황금기"라고, 말씀하시며 "60세가 넘으면 공부하고, 봉사활동이나 취미활동을 시작하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2) 라고 조언하신다.

 

인문학의 바로미터는 관련 독서와 현장 체험을 통해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젊었을 때 나의 경험으로는 해외에서 한창 유행하던 독일의 실존주의 사르트르, 하이데거의 사상과 셰익스피어 문학의 가치관들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알 수 없는 서양의 사상들을 접하면서 철학을 한층 무겁게 받아들였다. 우리 형편에 맞는 것도 맞지 않는 것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읽으며 나폴레옹은 꿈과 도전 정신을 길렀듯이, 나폴레옹도 넬슨도 내 마음속에 애국심과 밝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를 쓴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은 몇 번이고 뒤돌아가서 다시 읽어보았다. '세상살이가 참 힘들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피상적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고뇌의 시간이었다.

 

나는 알베르 카뮈가 남긴 한 마디가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주었다고 믿는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또 다른 봄이다!’

 

가을엔 모든 잎이 꽃처럼 아름답게 물든다. 봄처럼 말이다.....! 나는 앞뒤 문맥은 거두절미하고 이 구절을 내 인생의 지표로 삼으려 한다. 내 인생의 가을이 저무는데 곱디고운 단풍으로 피어 가을꽃이 되어 볼까나?

 

가끔은 내 인생에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존경하는 김형석 전 교수님이 생존하셔서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시니 송구할 정도로 감사한 일이다. 옛날에 교수님의 저서를 사서 가슴에 안고 든든함을 느꼈듯이, 인생의 가을에도 노스승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우며 실천해야겠다. 

 

1) 2) 참고 : 저서 '김형석의 인생 문답' 중에서'.

 

 

 

혜송 김순희(金順熙)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포천문협정회원 (이사)

한국작가 정회원, 사화동인

 

∙경기도 포천 출생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

∙초등교사 35년 재직

∙녹조근정훈장 수훈 (2015)

 

∙한국작가 시 부문 등단 (2022 겨울호)

∙한국작가 수필 부문 등단 (2023 가을호)

∙한국작가 신인상 시 부문 수상 (2023)

∙한국작가 신인상 수필 부문 수상 (2023)

∙제19회 포천사랑백일장(시 부문) 차상

 

-경기문학, 포천문학(24집, 25집), 포천소식에 시작품 수록

-포천문예대학 작품집 (2022~2023) 시, 수필 수록

-포천좋은신문 수필 2회 게재

-2023 삼색어울림 시화전 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