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신읍동에서

4년 전 쓴 기자수첩을 다시 꺼내 읽으며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지금부터 꼭 만 4년 전인 2019년 7월 3일, 40년을 다니던 서울에 있는 신문사에서 정년퇴직하고 포천에 새 직장을 얻어 출근했다. 평생 배운 도둑질이라고 포천에 와서도 지역 신문사에 입사했다. 출근 첫날 하루 동안 포천 전역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포천에서의  첫날부터 일주일간의 소회를 적은 기자수첩을 당시 이렇게 적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포천의 한 신문사에 들어갔다. 첫 출근날인 7월 3일, 오전 10시부터 포천시 14개 읍면동을 하루종일 돌면서 포천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소흘읍에서 관인면까지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느낀 포천의 첫 인상은 한적한 여유로움이었다. 43번 국도를 달리며 보이는 산과 들과 그리고 듬성듬성 보이는 마을은 내가 평생을 살아왔던 도시와는 달리 바쁘지 않아서 좋았다."


"그날 찾은 면장실과 동장실은 축하 화환으로 잔치 분위기였다. 이틀 전 있었던 포천시 정기 인사로 자리를 옮긴 분도 있었고, 승진한 분도 있었다. 소흘읍장(조병식 현 포천시교육재단 사무국장이었다)은 정치학박사라고 적힌 명함을 주었다. 꽃 화(花) 자가 들어간 화현면은 아름다웠고 꽃처럼 고운 여자 분이 면장(정남 현 토지정보과장)이라고 해서 잠시 놀랐다. 가산면과 내촌면을 지나 일동과 이동, 그리고 영북면, 영중면, 그리고 포천의 맨 끝자락이라는 관인면까지 돌았다."


"이날 오후 시청에 들어가 포천시장과 첫 대면했다. 당시 박윤국 시장은 석탄발전소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달변이었고 눈은 살아있었다. 필자에게 대뜸 어디에 사느냐고 묻고 포천으로 이사를 오라고 권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출퇴근하는데 거처를 구하는대로 주민등록증을 옮기겠다고 말한 기억이 있고, 실제로 석 달 후인 2019년 10월 1일자로 소흘읍 주민이 됐다."

 

"포천시의회도 찾았다. 거기서 강준모 부의장, 연제창 의원, 송상국 의원, 임종훈 의원을 만났다. 바로 옆 건물에 들어가 작달막한 키에 사람 좋은 인상의 산림과장(박남중 전 산림과장)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매미나방 방제’로 바쁜 듯 보였는데, 그 와중에 산불까지 났다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도로과 팀장(현 김원현 도로과장)은 소흘읍 무봉리에 건설 중인 새 도로를 둘러싼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튿날 7월 4일, 포천경찰서 수사관들과 정보과 담당자와 홍보담당관을 만났다. 오후에는 포천·가평 김영우 국회의원이 사무국장(현 김재언 포천시체육회 사무국장)과 함께 신문사를 방문했다. 오전에 국회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목선과 관련해 진상조사단장을 맡아 대정부 질문을 하고 서둘러 포천으로 내려왔다는 김 의원은 3선 관록과는 달리 무척 젊어 보였다."


"다른 정치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더불어 민주당으로 총선 출마를 선언한 송우리의 유용환 서울정형외과 원장은 순박한 시골의사였다.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 움직임을 보이는 박종희 前의원(16대, 18대)은 고향 포천에서 뼈를 묻겠다며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7월 5일 석탄발전소 앞에서는 35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석탄발전소 반대 성명서가 발표됐다. 여기에서 포천시새마을회회장(현 이경묵 회장)을 비롯, 석탄발전소 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과 이원웅 경기도위원, 그리고 군내면과 영중면 이장 등 40여 분을 만났다. 또 건설사 임원으로 있다가 성남시를 거쳐 포천으로 왔다는 포천시도시공사 유한기 사장(유 사장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을 처음 보았는데, 그의 첫 인상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출근한지 1주일쯤 지나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오는 축석고개를 지나면 ‘저주받은 자일2통 폐기물 소각장 결사반대’, ‘소각장 건설 추진하는 의정부시장은 퇴진하라’는 등 시뻘건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시청 브리핑룸에서는 농민회 5개 단체가 농어촌공사의 부실공사로 제때 논에 물을 대지 못한 농민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규탄성명서를 발표했다."


"포천은 정중동(靜中動)이었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가운데 저마다 움직이고 있었다. 공무원들은 맡은 일에 저마다 바쁘고, 농민들은 논에 물을 못 대서 갈라진 논밭 마냥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자일2통 주민들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애가 탔다."

 

"정치인은 그들대로 소리 없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포천. 서울에서 매일 왕복 5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을 오가며 하루하루 가깝게 다가오는 포천과 포천 사람들"이라고 첫 기자수첩을 썼다.

 

당시 나는 포천과 포천사람들에 대한 글을 쓸 때, 포천시민들의 입장에서 보고 들으며 따뜻한 글을 쓰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만 4년이 지난 지금, 포천에 와서 첫 일주일간의 느낌을 적은 기자수첩을 다시 꺼내 읽으니 그 감회가 새롭다.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고 변했지만, 처음 내 자신과 한 약속대로 '포천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