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아름다운 소설, 파친코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편집자 주] '미국횡단 자동차 여행기', '피렌체에서 만난 르네상스; 등을 연재한 작가 김은성은 최근에 읽은 소설 '파친코'를 읽고 오랜만에 눈믈이 흐를 정도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감동을 우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포천좋은신문에 밝혔고, 편집부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번 칼럼에 올렸습니다. 김은성 작가는 2022년 초부터는 또 다른 여행기로 독자들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번 째 겨울을 지나면서도 사그라들 기미가 없는 팬데믹으로 암울한 요즘,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예술이 국가 브랜드 파워를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들을 접할 때 위로가 된다. 특히 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 한국드라마들이  인기 정상을 차지하니 열심히 챙겨서 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만든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인의 공감대를 끌어내고 찬사를 받고 있음이 뿌듯하지만, 작품에 늘 공감하거나 개인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만든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하며 보는 편이다. 그 작품들에 열광하는 시대의 흐름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 정상에 오른 많은 작품은 주제와 흐름이 어둡거나 냉소적이거나 자극적이고 선혈이 낭자한 경우가 많다. 사회의 낙오자들이나(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Shameless') 재소자들을(미국 드라마 'Orange is the new black') 그리는 블랙 코미디들도 인기 정상을 기록하고 지나갔다. 만드는 사람들도 작품에 공감하며, 열광하는 시청자들도 세계관이나 정서가 어둡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의 화제작 대열에 들어간 한국드라마 '킹덤'에 이어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등도 같은 느낌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많은 토론 거리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한다. 
 
어두운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요즈음,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계 작가의 이 영문소설이 애플 TV의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도 읽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책이라는 추천을 듣고도 선뜻 책을 주문하지 않은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파친코'라는 제목을 보고, 도박과 범죄 등 요즘 유행하는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미 과식하고 있는 듯 느껴지는 어두운 내용의 책을 굳이 찾아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지인의 집에서 한글 번역본을 발견하고 빌려와서 읽기 시작한 후 이 책을 쓴 이민진 작가에게 내내 고마워하며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엔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설을 읽으며 눈물 날 정도로 감동했던 기억이 최근에는 없었던 거 같다.


2017년에 발매되어 그해의 미국 최우수소설 최종후보작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엄청난 성공을 거둔 책이다. 1910년에서 1989년 사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 가족이 4세대를 지나며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낸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영어권 독자들이 읽고 감동했다는 사실이 우선 고무적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 없었던 시절,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의사가 쓴 소설 '연을 쫓는 아이'(Kite Runner, 2003년 출판)를 재미있게 읽고, 그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뿌듯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영어권의 독자들도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재일 한국인들의 현주소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되었을 거다. 


이민진 작가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날까 두려워 이민 온 부모를 따라와 뉴욕 퀸즈에서 자랐다. 예일 대학 재학 시절, 동급생들의 정서적 폭력으로 자살한 재일 한국인 소년의 얘기를 일본에 다녀온 선교사로부터 듣고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후 거의 30년간의 오랜 준비를 거쳐 2017년에야 출판되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어려움도 많았으나 노력한 만큼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며 자라난 이민진에게 차별 가운데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의 삶은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한다. 

 

'파친코'라는 제목을 보고, 도박과 범죄 등 요즘 유행하는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미 과식하고 있는 듯 느껴지는 어두운 내용의 책을 굳이 찾아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지인의 집에서 한글 번역본을 발견하고 빌려와서

읽기 시작한 후 이 책을 쓴 이민진 작가에게 내내 고마워하며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엔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고난의 역사인 우리 민족의 근대사와 재일 한국인들이 겪어온 차별의 이야기는, 나에게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소설은 한 가족의 역사를  연대를 따라 담담한 문체로 얘기하며, 손에 땀을 쥐고 조마조마할 이유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일제 치하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나에게 그리 새로울 건 없었다. 요즘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가난했지만 모두 미래를 향한 희망 속에 살았던 나의 어린 날의 시대상이 떠올라 아련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난과 고난으로 점철된 이 소설의 1권이 판타지나 동화처럼 나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선했다. 등장인물 중 첫 번 세대의 훈이는 입술이 갈라진 구개열과 발이 뒤틀린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며, 그의 아내 양진은 너무 가난해서 입 하나 덜고 싶은 부모에 의해서 그나마 먹고살 만한 집의 아들인 훈이와 결혼한다. 그러나 불행의 요소를 짊어진 듯한 그들의 삶의 서사는 마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읽힌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훈이는 영도에서 어부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며, 성실하고 반듯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양진은 그런 남편을 존경하며 어려운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꾸려간다. 그들의 외동딸 선자는 유부남인 줄 모르고 사랑한 재일 교포 한수의 아이를 임신해 미혼모가 된다. 그러나 한수의 현지처로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선택을 거부한다.

 

하숙생이던 당시 결핵으로 몸져누운 백이삭을 선자네 온 식구가 정성껏 병간호한다. 그 가족에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백이삭은 미혼모가 될 처지인 선자와 결혼하여 그녀와 아이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거두고 가정을 이룬다.

 

이삭의 형 요셉이 이미 정착해 있던 일본으로 이삭의 가족들을 불러들여 아무런 편견없이 극진히 사랑해준다. 요셉의 아내 경희는 평양의 귀한 집 출신이며 지성인이지만 가난한 하숙집 딸이며 문맹인 선자와 동서지간으로 평생 사이좋게 같이 살며 선자의 아들들도 자식처럼 사랑한다.


이렇게 선량하고 순수한 인격체들과 그들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들을 줄줄 써놓은 소설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미국이 열광한 책이 맞는가. 책의 어디쯤에서 그들의 인격이 마침내 망가지거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며 선한 가치관을 포기해버리게 되는 걸까. 조심스레 기대하며(?) 읽었다. 복선이 있거나, 지난함을 겪어내며 인간성이 파괴되는 이야기들에 나도 모르게 길들어 있었기 떄문이다.


책의 제목이 '파친코'인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닮아있기도 하고, 차별로 인하여 일본에서 공평한 직업의 기회를 갖기 힘든 재일 한국인들이 파친코 사업을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이민진 작가는 말한다.

 

파친코는 도박이 불법인 일본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여 합법으로 자리 잡은 게임 산업이다. 일본 경제 규모에 5.6%를 차지하며,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자동차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거대한 산업인데 80% 이상을 재일 한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엘리트 사회로 진출할 수 없는 선자의 아들들도 결국은 파친코 사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황이 2편의 주된 흐름이다. 


역사의 험곡을 걸어가지만, 주인공들은 그들의 선한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삭은 목사로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고, 선자는 이삭과 결혼하여 얻은 아들 모자수가 매춘부의 딸과 결혼해도 그녀를 존중해준다. 


야쿠자의 딸인 일본 여자와 결혼한 상태에서 선자를 임신시킨 한수는 야쿠자로 살아가지만, 끝까지 선자와 그의 아들 노아를 성실하게 보살피는 이야기만 그려져 있다. 작가는 위안부 문제, 종교탄압,  야쿠자의 세계 등 어두운 이야기들은 시사하지만,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는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선언했듯이, 역사가 아무리 고난을 몰고 와도 인간의 내면을 망가트릴 수 없다는 작가의 시선은 책의 끝까지 관통한다. 팬데믹을 제외하면 격랑의 세월도 아닌 요즈음, 인간의 내면과 시대의 어두움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듯한 문화 예술의 흐름 가운데, 이민진의 파친코에 미국이 열광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는지 모른다. 시대가 비교적 평온해도 사람들의 정서는 점점 더 어두운 나락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지던 우려에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에 비하면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를 배경으로, 재미 한국인들에 비하면 너무나 불공평한 차별 아래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대하소설처럼 쓰면서, 반듯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늘어놓은 작가가 대담하고(audacity라고 표현하고 싶다)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용감하다고 생각된다.

 

작가도 자신의 작품은 세련된(fashionable)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시류에 맞는 책을 쓰려고 하지 않았고, 그동안 영어권에서 별로 알려진 바 없었던 한민족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이 읽게 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정말 고맙다.

 
작가는 수년간 재미 일본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 거주하며 그곳의 재일 한국인들을 수없이 인터뷰했다고 한다. 작가가 그들을 바라보는 존경과 애정이 어린 눈길이 따스하기도 하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실제로 많이 만나봤다면 작가의 그런 행운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 우리는 미담보다는 열면 열수록 쏟아지는 부끄러운 사연들을 너무 많이 들으며 살고 있기 떄문이다. 


역사가 아무리 험난해도,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살아낼 수 있다는 시선이, 동화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들 복잡하고 심오하고 어두운 주제로 예술을 해야 되는듯한 시류 가운데 이토록 건전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책으로 우리 민족의 얘기를 써준 이민진 작가에게 박수갈채와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