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카우보이들의 나라' 미합중국 들여다보기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김은성 작가

 

아름다운 자연과 넓은 영토가 주는 무한한 잠재력,  

총 차고 말 타고 가축을 몰고 다니는 단순함과 강인함,

야생성과 촌스러움까지….

그리고 넓은 자연 가운데 제멋대로 뛰놀며 자라는

가축들의 이미지가 요즘 와서 더욱이나 설명하기 힘든 

미국의 모습을 그나마 상징성 있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되었다.

 

 

▲미국의 카우보이.

 

카우보이는 소 떼들을 돌보는 목동이라는 직업군을 표현한 단어일 뿐이다. 구약의 유명 인사 다윗도 양을 돌보는 목동이었고, 요즘도 중동지방에선 고대처럼 양을 치며 살아가는 베드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럽의 알프스 근처 마을에서도, 커다란 종을 목에 달은 소나 양들을 계절에 따라 산 위로 아래로 몰고 다니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카우보이는 구대륙보다 스케일이 훨씬 넓은 신대륙 광활한 땅에서 말을 달리며 소 떼들을 몰고 다니는 목동을 일컬으며 생겨난 신조어인 거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미국의 정서와 문화의 상징성은 카우보이의 이미지가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는 생각이다.

 

 
▲스위스 목동.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호미'에 해방 후 개성에 들어온  미군들을 묘사한 대목이 기억난다. 질서정연하고 절도 있는 일본 군인들의 모습에 익숙해진 눈에, 해방 후 개성에 들어온 미군들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얼마나 새롭고 낯선 것이었는지… 비장한 각오로 자폭도 불사하던 일본군은 패잔병이고, 주둔하러 들어오면서 줄도 안 서고 웃으며 껌을 씹으며 어슬렁대며 들어오는 미군이 승리한 군대인 것은 우선 시각적으로 충격이었을 것 같다.


21세기 첨단 과학의 세상을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이 오자, 마스크 안 쓰겠다고 버티던 미국의 백성들은, 다른 국가에선 없어서 애타는 백신을, 공짜니까 제발 맞아달라고 대통령이 애걸복걸 하는데 (최근엔 백신 맞아주면 100불 드리겠다고 발표했다) 안 맞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런 부류가 대다수는 아니지만 무시할 만큼 소수도 아닌 숫자다. 밖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안되는, 선진국인 듯 선진국 아닌 듯한 미국의 모습들을, 미국 시민이지만 정서적으론 동화되지 않는 내부자로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미국은 영어로 melting pot이라고 하는데, 번역하면 잡탕이다. 더 우아하게 번역해볼 수도 있겠으나, 우아한 정서는 어차피 미국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본토와 친족을 떠나와 미지의 세계로 온 사람들이 세운 젊은 나라인데 오랜 역사로 쌓아온 우아함으로 상징될 수는 없다.

 

태생적으로 모범생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시대에 순응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은 물론, 가는 동안에 풍랑을 만나 죽을 수도 있고 풍토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는 이민 길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향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다가 핍박받았거나, 범죄를 저질러 도망가야 했거나,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었거나, 모험심으로 충만하여 더 큰 부를 추구하며 건너온 사람들이 미국 초기 이민자들의 주류라고 볼 수 있다.  조심성이나 차분함이 결여된 '주의력 결핍/과다행동장애(ADHD)'로 진단 받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선조들의 그런 DNA 떄문이 아닐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심상찮은, 개성 충만한 집단이 모여 세워진 나라가 오늘날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선진국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천연 자원이 풍부하고 영토가 넓어서 그렇다고 설명될 수는 없기 떄문이다. 현재 천연자원 많지만 기난한 나라들도 줄 세우면 아주 길다.


250여 년 전에 놓은 초석 위에서 지켜지고 있는 국가의 시스템이 아직도 건재하고 흔들림이 없는 것은, 해방 후 개헌을 몇 번이나 겪은 나라 자손이라서인지 더욱 신기하게 보인다. 그렇게 탄탄한 국가의 틀을 놓을 수 있었던 건국의 영웅들은, 역사의 주관자께서 오늘의 미국을 세우시려고 한곳에 모아놓은 천재들이었던 것 같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1960년대부터 우주선을 띄워 달나라에 도착하고, 독일에서 살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도 굳이 미국으로 건너와 첨단 과학의 역사를 쓰게 하는 선진국의 이미지보다, 이 나라는 농업국가이며 시골이다 싶은 이미지가 훨씬 강력하게 와닿는다. 대도시를 벗어나자 마자 광활한 땅에서 1차 산업인 농업, 목축업 등이 영토를 뒤덮은 풍경을 마주하게 되기 떄문이다.

 

그런 풍경 가운데서 단순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서울에서 낳고 자란 내 눈에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미국이 설명된다. 촌스러움은 소박하고 단순하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나, 바깥세상의 새로운 문물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함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자신이 낳고 자란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고, 바깥세상에 관심 없이 산다는 걸 접하게 될 때가 많다. 워낙 넓은 땅에 살다 보니 그런 듯도 하다. 넓고 넓은 미국 땅에도 살기 좋은 지역에 인구밀도가 높은 경향은 있으나, 우리가 보기엔 날씨나 교통이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열악한 환경의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자신들의 고향이 미국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한심하게 덥고 춥고 겨울바람도 너무나 쎈, 후미진 동네 네브라스카가 고향이라고 굳이 거기로 돌아가서 살고 있는 부자, 워렌버핏이 대표적인 예이다.

 


▲네브라스카의 겨울.

 

가난한 우범 지역의 고등학교는 미혼모나 학업 중퇴자, 각종 미성년 범죄자들로 넘쳐나고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하고 공항 같은 검색을 지나 등교하는 한심한 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은 이제 더 이상 굉장한 뉴스거리도 아니게 많이 받아왔고, 시리아  사람의 혈통으로 태어난 스티브 잡스가 키워졌고, 덴마크 후손인 제프 베이조스도 키워져서 세계의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규모 있는 목장이 아니라, 광활한 땅에서 방목되는 소 떼나 고삐없이 키워지는 말들 같은 백성이라고....


잘 만들어진 울타리 안에서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들이며 키우는 목장이 아니고, 넓은 초원에서 방목하면서 총을 차고 말을 탄 카우보이가 멀리서 몰고 다니는 목축. 기름지고 넓은 땅에서 방목하니 편차가 아주 넓은 종류의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손바닥만 한 텃밭 농사를 짓는 나는 이파리 갯수도 셀 듯이 현미경 들고 키우지만, 비행기로 씨뿌리는 농사는 그 수확의 스케일이 천문학적이긴 해도 한 개 한 개 쓰다듬듯 키울 수는 없다.  


지구를 덮친 바이러스 재난으로부터 유일한 돌파구인 백신 개발이 단기간에 가능했던 것도 미국의 광활함과 자유방임 같은 환경에서 더 솟구치는 혁신(innovation)으로 인한 열매라고 본다. 


50프로 확률로 총 맞는데, 걸핏하면 '결투'를 한다며 총 들고 나서는 서부영화 속의 겁 없는 인류는 고대적 이야기가 아니다. 또 무법자들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건국 초기 미국 경제 시스템에 초석을 놓은 천재이며 요즘 미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뮤지컬, '해밀턴'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도 1804년에 정적과 결투하다 총 맞고 사망했다.

 

다행히 19세기 중반부터 결투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근래엔 없으나, 국민이 총을 들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 밖에서 보기에 정말 이상한 나라이기도 하다. 영토가 워낙 광활하다 보니 개인의 안전을 공권력에 의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된 법이, 무수한 총기사고를 유발하고 있어서 총기 규제를 강화하자고는 하지만 아무도 헌법을 고치자고 하진 않는다.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세워진 나라, 노예제도로 쌓은 부라는 흑역사로 인하여 비판의 여지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명분상으로나마 보상하려는 노력은, 사람들의 속마음까지야 몰라도, 불의를 부끄러워 하는 나라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574개의 인디언 부족이 모여 살며, 연방정부에 의해 자치권이 인정된 'Indian nation'으로 존재한다. 위협적인 힘을 가질 수 없는 집단에게 허락한, 명분뿐인 자치권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귀찮으니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던 사람에겐 이웃 동네 같은 거리에,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와 정서를 보유하는 나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유럽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보다 더 좁은 땅 대한민국에도 제각기 다른 방언과 사뭇 다른 정서의 지방 문화가 있다.  

 

자동차로 대한민국 국토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평지가 별로 없는 산악지형인 것에 놀랐다. 지방의 서로 다른 문화는 그런 자연조건으로 형성되어 왔다고 생각했다. 거미줄처럼 도로가 깔려있는 요즘과 달리, 지역 간의 직선 거리는 가깝지만 서로 왕래하고 지내기 힘들었을 테니까.

 

지구상에는 수많은 국가가 존재한다. 나라 이름은 물론 수도가 어딘지, 언어가 무언지 조금은 알 듯한 나라들도 많지만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 더 많다.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라들도, 현지에 가서 보고 배우면서 그 나라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음에 놀라곤 한다.

 

미국은 워낙 인지도가 높다 보니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듯 생각하다가 뜻밖의 모습들에 당황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각 나라의 정서와 문화는 그들이 살아온 자연환경과 역사로 인해 형성되어 오고 있다. 미국의 독특한 정서와 문화도 이 땅의 자연환경과 역사로 인하여 형성되어 왔을 것이고, 이 복잡한 나라의 상징으로 카우보이들과 그들이 몰고 다니는 소 떼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자연과 넓은 영토가 주는 무한한 잠재력,  총 차고 말 타고 가축을 몰고 다니는 단순함과 강인함, 야생성과 촌스러움까지…. 그리고 넓은 자연 가운데 제멋대로 뛰놀며 자라는 가축들의 이미지가 요즘 와서 더욱이나 설명하기 힘든 미국의 모습을 그나마 상징성 있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되었다.


미국에서 40여 년 살아온 나도 이제야 허둥지둥 미국을 들여다보며, 내부자로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나누는 것은, 이 복잡하고 자유분방한 나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