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시인 하은의 시 '그날' 외 2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그날

 

늙은 어미 소처럼 울먹울먹

금방이라도 눈물 쏟을 것 같은 들판

멀리 바라보는 저 새 가벼운 날개로는

무거운 공기 사이 비집기 어렵겠다

대숲을 빼박은 맞은편 서슬

걸어 들기 어려운 묵직한 허공 사이로

바닥을 쓸며 기어 오는 바람

춥다

 

 

연분홍 마시멜로는 영영 떠났을까

손가락 끝에서 노닐던

산꼭대기 구름 오늘은 멀기만 멀다

팔랑팔랑 날고 싶은데

가볍게 바라보고만 싶은데

홍수 지난 들판 검불 거둬내듯

개운하게 치우고 밝게 웃고 싶은데

어렵다

 

 

언덕에서 한가로이 볕 쬐는

오두막이나 되었으면

전구 색 웃음 흘러나오는 집을 데리고

바다 마을로 이사하고 싶은 날

기차는 기적소리를 다시 데려왔으면

어머니 자장가도 살아왔으면

눈앞 선명하게 밝아 왔으면

좋겠다

 

 

정다운 이와 무릎 맞대고 싶어

생각나는 이름 적어보는 날.

 

 

 

내 안의 그믐

 

 

아직 진하디진해

그림이 무겁다

안개에 몸을 헹궈보지만

근거리 나무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평생의 염원은

은회색 풍경 한 자락 되는 일

저만큼 물러선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 하늘 떠받드는

여린 나를 만나고 싶다

 

 

생의 어둠 조금 덜고

달빛을 입으면 희붐하려나

어느 세월에 말갛게 물 머금은

수묵화 한 점이 될 거나.

 

 

 

산정호수

 

 

울적할 때 주변을 둘러봐

야윈 몸 어디에 두면 좋은가

꿈의 요람 산정호수가 딱이지

심지 깊은 호수를 건너는 바람 앞에서

찌그러진 마음 건져 올려

내가 나를 정성껏 쓰다듬는 거야

잠시의 어둠을 영원이라 생각하지 마

태양은 구름에 잠깐 치였을 뿐

떠난 것 아니네

호숫가 낮은 의자에 나를 앉히고

겸손한 세월 두둔하는 시간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해

저물녘 노을에 들어앉은 물을 재우고

달그림자 따라 유연하게 휘다보면

가난한 초승달처럼 일어설 용기가 생기지

다리에 힘을 주면

만월처럼 꿈이 넉넉하게 부풀게 돼

물수제비 뜨는 순간에

깨진 관계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거야

아픈 이름 다시는 건지지 마.

 

 

 

하은

시인, 수필가

월간 <문학세계> 시 등단

월간 <스토리문학> 수필 등단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회원

시섬문인협회 회원

문학공원 동인

종합문예지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시집 『달맞이꽃』, 『다시 꽃이다』

메일: haeun57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