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의 현안 해결 방안으로 거론되는 정치체제, 정치환경의 변화 등을 포함한 모든 현안은 결국 국민 선택의 몫이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인,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
정치,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나
대학 등 동창 모임, 가족 모임 등에서 금기시되는 화제가 있다. 정치 얘기, 지역 얘기, 종교 얘기, 자식의 취업과 결혼 얘기 등이다. 모임의 분위기를 해치거나 참석한 이들에게 갈등과 스트레스를 주고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민감한 화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한 이슈 거리가 되어 갈등과 감정 유발 효과가 큰 것은 ‘정치 얘기, 지역색 얘기,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얘기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셋을 포괄적으로 묶어 소위 ‘정치 얘기’라고 말하곤 한다. 정치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며, 국민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갈등 요소를 제공하고 있길래 가까운 사람의 모임에서 금기시되는 화제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최근의 관련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2023년의 자료를 소개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6~8월의 19세 이상 미혼 남녀 3,950명 면접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8%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또 국민 셋 중 한 명은 술자리도 할 뜻이 없다고 한다.
사회 갈등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분야는 진보와 보수 간 갈등으로 92.5%가 매우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또 우리 갈등 수준이 더 심각해지거나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이 90%에 달한다고 한다.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74.1%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러다가 나라가 두 쪽이 날 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적 경제 환경이 날로 어려워져 국민은 민생고로 아우성, 남북 관계는 극단적 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회와 정당들은 이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뭐씨’와 ‘뭐씨’를 정점에 둔 엉뚱한 정치 놀음을 하며 정쟁만을 벌이고 있다. 정부 또한 고집불통이니 ’이게 나라냐‘ 하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계신지도 잘 모르지만 소위 나라의 어르신이나 원로분께서는 쓴소리 한 마디 없이 소위 묵언수행 중이시다.
우리 정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왜 이리 갈등을 야기하고 스트레스 등으로 피로감을 주는지 생각해 보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는 좋은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국민은 정치에 규범의 준수를 먼저 주문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 정치체제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고 비교적 투명하며 포용력이 있어 정책 조성과 공정한 경쟁, 신뢰와 법치주의, 선거와 정치 참여 보장 등을 통하여 국민의 욕구 충족에 효과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정치체제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공정성이 확보된 효과적인 정부 서비스의 제공, 질 높은 행정적 절차의 제공, 경제적인 성장과 발전의 도모, 민주적으로 제도와 원칙을 강화하고 잘 운용하는 소위‘국가의 좋은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 즉 학자들이 기술적, 민주적으로 질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고 말하는 것들을 보장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원인을 찾아보면 그 정점에 우리 정치체제가 대통령 중심의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 중심의 정부와 그것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정당과 국회’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국민으로 국민의 투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국민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서비스 중 특히‘좋은 서비스’가 요구되는 영역으로‘효과적인 국정 운영, 규제와 질의 좋은 관리, 법치주의 구현, 부패의 통제와 적확한 관리, 참여와 적확한 책임, 정치적 안정과 비폭력 등으로 세분되는 영역의 서비스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이 상당히 규범적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우선 규범의 준수를 먼저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정치
최근 대통령 당선자들의 지역별 최대 득표율과 최저 득표율을 비교해서 가장 큰 격차를 보인 지역을 살펴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시 경상북도 72.58%/광주광역시 9.04%, 박근혜 전 대통령 경상북도 80.82%/광주광역시 7.76%, 문재인 전 대통령 전라북도 64.84%/경상북도 21.73%, 윤석열 대통령 대구광역시 75.14%/전남 11.44%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지역에 따라 당선자 지지율 격차가 왜 이렇게 큰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투표자가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극단적인 정치 성향은 영남 지역과 호남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각 지역 출신 주민들이 수도권 지역 등 다른 지역에 이주, 거주하여도 정치 성향이 계속 유지 또는 자손에게 계승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면 우려되는 바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소위 특정 지역의 치우친 정치 성향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시급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빈부 격차, 청년 실업,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심화, 저성장 고물가, 가계 부채의 심화,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문제 등으로 활력을 잃고,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기 어두운 터널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상반되는 정치적 성향의 지역주의 확산,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논쟁,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 현상 등을 이용한 정파적 파당 주의와 팬덤 정치의 폐단에 매몰되어 사회 갈등을 더욱 증폭하거나 양산하고 있다. 갈등 축소와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디 기능을 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도덕적이고 현명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라는 저서에서 이상적인 국가는 통치자(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 수상, 국회의원 등으로 볼 수 있다) 계급이 우선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통치자 계급의 덕목으로 지혜의 덕을 갖추는 것을 꼽았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성을 갈고 닦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며, 그래야 절대적이고 보편적 진리인 이데아를 통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치체제와 현대의 정치체제를 단순 비교해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자, 즉 지도자 계층의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감할 점이 꽤 크다는 생각이다. 그 덕목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뽑아보면 ’지혜, 덕, 이성, 진리, 이데아, 통찰, 수양‘ 등이 아닌가 싶다.
통일된 연방 독일은 우리와 유사한 근현대사의 정치적 이력과 아픔, 갈등이 있었다. 통일 과정에서 야기된 수많은 갈등과 혼란, 경제적 위기 등을 현명하게 잘 극복하여 이제는 안정된 세계의 강국이 되었다. 그런데 독일의 이 위기 극복 과정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걸출한 정치지도자 역할이 있었다. 소개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통일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수상
통일 독일은 2005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물리학자 출신 앙겔라 메르켈이라는 여성 총리를 선택했다. 그녀는 윤리의 나침판을 절대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통일정치의 상징으로 누구보다 강하고 유연하게 현명한 실용주의 정치를 하였다. 정치에 입문한 24년 동안 단 한 차례의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었기에 뉴욕타임스는 서방 세계에서 신뢰할 만한 마지막 정치지도자로 평했다.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고, 늘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말하며 절대 사치하지 않았고 옷은 항상 검소하였다.
그녀는 병자나 다름없던 통일 독일의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며 또 한 번의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세계의 강국으로 우뚝 세웠다. 아울러 국내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갈등과 동서독 간의 지역갈등, 통일 독일 직후의 극단적 사회 혼란을 지혜롭게 수습했다. 그녀는 임기를 막 시작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독일 국민이 간절히 원해 총리 4선을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4선을 마친 후에도 독일 국민의 63%가 다시 연임을 원했지만,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2021년 12월 퇴임하였다.
그녀가 퇴임하는 날, 시내의 대부분 독일 국민은 집 발코니에 나가서 총리 16년을 포함한 정치 인생 24년을 마감하며 떠나가는 여성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의 퇴장에 6분 동안 따뜻하고 긴 박수를 보냈다 한다. 동원된 사람이나 단체들은 없었고 기념식, 공연, 억지 찬사, 음악도 없었고, 아무도 위대한 메르켈의 이름을 연호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는 총리가 되기 전에 살던 서민 아파트로 다시 돌아가 도우미도 없이 남편은 세탁기를 돌리고 메르켈은 다리미질과 옷 손질을 하며 가능한 외부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세계는 그녀를 세계의 여성이라 칭하고 있다.
결국은 국민이 선택이 결정한다
선거로 정부와 지도자가 선출 견제 대체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매우 유념할 필요가 있는 어느 정치학자의 견해를 소개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선동과 열정을 갖추고 있는 후보가 선거를 통해 대표자로 당선된 이후, 자신을 선출했던 시민을 통치하는 일종의 대중정서에 기댄 독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는 애당초 있을 수 없다는 견해다. 무서운 말이다.
그는 또한 국민 투표 식 민주주의 체제의 국민은 저항이 가장 적고 쉬운 ’기정사실‘을 선택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투표로 선택되는 지도자의 중요성,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선거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우리 정치의 현안 해결 방안으로 거론되는 정치체제, 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포함한 모든 현안은 결국 국민 선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인,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