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경제적으로 잘살게 된 우리의 행복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 · 아나운서

 

소득이 늘어나며 살림살이가 좋아져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고 넉넉해져서 사는 재미와 행복감도 증가할 듯싶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연구이다. 경제가 좋아지면 행복감이나 즐거움이 일정 수준까지 오르다가 멈추거나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 내내 계속된 장마, 열대야 등 엄혹한 날씨가 우리를 지독히 괴롭혔다. 기록적인 호우, 고온 다습한 장마가 끝나나 싶더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기상 관측 이래 최대 열대야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한편, 남북 간의 긴장 상태가 극에 달해 북한은 해괴한 오물 풍선을 남한의 수천 곳으로 날려 보내고, 남한은 모든 휴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에 나섰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 수위도 함께 고조되었다.

 

우리 22대 국회는 개원식도 치르지 못하고, 탄핵과 필리버스터 정국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연봉 1억 5700만 원, 지원금 1억 1276만 원 모두 합해 2억 6976만 원이 지급되고, 후원금까지 받는 국회의원 한 명이 10여 시간 넘게 밤을 새워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연단에서 뭔가를 열심히 연설하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는데, 그 넓은 회의장에서 듣는 이는 고작 몇 명뿐. 그나마 몇은 끄덕끄덕 졸고, 몇은 파리올림픽 중계를 보는지 유튜브를 보는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른바 필리버스터가 끝나자마자 몇 명의 국회의원도 기다렸다는 듯 모두 나가고, 이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자 2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회의장에 일제히 들어와 투표를 끝내고 나가버린다. 지독히도 불쾌지수가 높았던 올여름, 나랏일 열심히 하라고 휘황찬란한 조명등을 365개나 달아놓은 우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이 같은 진풍경이 여러 번 거듭되었으며, 대통령은 결국 연이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모 방송국 개콘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우리 정치 현실이다. 가히 해외 토픽감이다.

 

2024년 올여름, 그리 ‘즐겁지 못한, 아니 우울한’ 몇 가지 단상들을 스케치한 것이다.

 

파리올림픽 한 방으로 행복해진 국민, 그런데......

우리 사회, 나라의 전체 분위기를 쇄신시키며 즐겁게 전환한 이벤트가 있었으니 바로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이다. 48년 만에 최소의 선수단을 보내 고작 금메달 5개가 목표라던 파리올림픽! 개막하자마자 잇달아 계속되는 금메달 획득의 쾌거로 일찍이 목표를 달성하더니 금메달 13개 등 총 메달 32개로, 참가 206개 나라 가운데 메달 순위 8위란다. 국민 모두에게 신나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었다.

 

그리고 필자를 즐겁게 한 올여름의 몇 가지 유쾌한 모습. 대여섯 살 딸과 함께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힘차게 밀고 경쾌하게 워킹하는 젊은 엄마의 환한 미소, 방학을 맞은 남녀 중학생들의 상쾌한 웃음소리, 시끌벅적하게 뛰어노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올여름 필자를 즐겁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국민총소득 규모, 국내총생산(GDP) 규모, 무역 규모 등을 모두 합한 경제 측면의 지수로 본다면, 유엔 회원국 195개 중에서 10% 이내로 풍요로운 나라이다. 파리올림픽 메달 순위도 10위 이내이다. 그런데 가정과 나라의 살림살이가 이처럼 부유하고 풍요로워졌으니 정신적 행복감이나 즐거움도 예전보다 높아졌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나라와 사회의 일부 지도층과 정치가 국민에게 이렇게 우울함과 피로, 스트레스를 높여주고 있는데......

 

물질적 풍요에 따라 삶의 행복감과 즐거움은?

소득이 늘어나며 살림살이가 좋아져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고 넉넉해져서 사는 재미와 행복감도 증가할 듯싶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연구이다. 가계 소득이나 국민 소득 등 경제가 좋아지면 행복감이나 즐거움이 일정 수준까지 오르다가 멈추거나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안정적이지 못한 국가 사회 구조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한다. 특히 여러 긍정적 가치가 감소하는 경우가 있다. 물질적 풍요가 물질 만능주의 및 개인주의 확산, 이혼 등의 증가, 인간관계의 붕괴로 인한 가족 및 지역 사회 등 결속력 저하를 가져오고, 알코올 중독과 퇴폐 등 사회적 병리 현상을 증가시키는 것이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정치 사회적 불안이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극도로 긴장이 높아가는 남북 관계, 갈등을 해소 또는 축소하기는커녕 양산하고 부추기는 정당 및 의회정치, 신뢰를 주지 못하고 불통으로 치닫는 지도층, 상대 비교로 열등감, 열패감이 확대되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 연구 결과는 없지만, 심증이 그렇다는 생각이다.

 

돈은 바닷물과 같아 마실수록 목마르게 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물질, 욕망, 만족, 쾌락도 마찬가지라는 게 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그것들은 채워도 채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적응하니 더 큰 행복과 즐거움을 열망하고 욕심낸다는 것이다. 증가한 재산과 부, 만족과 쾌락으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에 대한 적응과 열망을 반복하는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원인이다.

 

197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 연구팀이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도가 크게 높아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복권에 당첨되기 전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명명했다. 아무리 열심히 쳇바퀴를 굴려도 결국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사람들도 사고 당시에는 몹시 불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인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전통적 대가족 중심의 우리 사회의 일반적 경향인 출세주의를 지향하는 생각과 태도, 결과만으로 상대 비교, 평가하는 현상 등이 이 현상을 더 키우고 있는 듯싶다. 즉 가계나 사회 모두 물질적 풍요가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보다 욕망을 증가시켜 오히려 불행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발생하는 ‘긍정적 가치의 상대 효과의 영향’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중산층이 사는 단독주택촌에 10년간 단란하게 살던 어느 가정이 재개발 등에 의하여 주위의 주택, 상가가 모두 아파트 촌으로 변화한 다음에 느끼는 집, 주거 등과 관련한 행복감과 즐거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풍요로움, 즐거움, 행복을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그것이 높아지면 자신의 욕망도 더욱 높아져 채워지지 않으면 더욱 불만족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니 지위도 높아져야 한다고요

가계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내 집 마련이라는 최대 현안의 욕구가 채워지니 더불어 옷, 음식, 가재도구 등과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물질적 욕망이 한결 질 높게 채워지게 된다. 가계 구성원 모두의 자존감, 행복감, 즐거움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듯싶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 교통 환경도 함께 좋아지니 집안의 걱정거리가 없다. 이럴 때 가정의 현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가장의 승진 등 자리와 위상 문제, 아이들의 성적과 학교에서의 지위, 예를 들면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자리를 차지하느냐 여부, 엄마가 학교 운영위원회, 지역사회, 모임 등에서 어떤 자리를 맡느냐 등이다.

 

가정경제나 사회경제가 어려울 경우는 소득, 집 등 물질적인 부분이 중요하게 여겨지나 일정 수준으로 잘살게 될수록 지위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진다. 돈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것이 지위에 대한 욕망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전국의 지역 사회에 수없이 걸려 있는‘지위가 높아진 것을 널리 광고하고 홍보하는, 신분 상승 등 사람들의 이미지 향상과 관련되는 플래카드’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행복감과 즐거움을 높이는 사회생활

가정이나 일정 공리 단체, 사회생활에서 자존감, 자긍심,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맺고 그 일원으로서 함께 행복감과 즐거움을 공유하면 긍정적 가치가 일반적으로 높아진다고 한다. 공인된 봉사 단체, 종교 단체, 교육 단체, 문화 단체의 활동이 그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관계 맺기가 중요하고, 동기는 관계 형성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고, 평등한 호혜적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가 그렇더라도 애당초 목적하지 않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부대 이익(?)이 가능함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관계 맺기와 활동은 대가가 따르지 않은 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관계 맺기 자체가 동기가 되어야 하는 ‘순수함’에 만족하고, 이기심에 기반해 있지 않아야 그 관계가 선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여러 조사에 따르면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사람들과 스포츠 활동을 하면 행복감과 즐거움을 상당히 높여준다고 한다. 특히 자원봉사, 이웃돕기 활동 등은 행복감과 즐거움을 10퍼센트 이상 높여준다고 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