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사회지도층이 공정해야 우리 사회가 공정해진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 · 아나운서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노력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외치며 편법과 불법을 쓰며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 조작이나 반칙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혈연을 바탕으로 한 대가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사촌은 부모 형제보다는 한 다리 건너의 친척입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았을 터인데 사촌이 땅을 사니 시기와 질투로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생긴 게 아닐까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자신의 가난이나 배고픔보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못 참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배 아픔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불공정한 경쟁으로 이룬 성공, 성과를 용인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가나 사회 구성원이 재산 명예 출세 업적 보람과 가치 등을 상대 비교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나아가 경쟁하려는 공중 심리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와 같은 심리가 국가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발전, 성장, 성과에 대하여 진정으로 축하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하였으면 합니다. 나아가 그런 마음을 승화시켜 좋은 점을 본받고, 규범이나 룰을 지켜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공연한 시기 질투 대중적 분노는 줄어들고, 발전하는 역동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지도층과 소위 금수저 신분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달리 해석하자면 불공정 경쟁이 일반화하여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경쟁의 공정성이 의제가 될라치면 그것을 저해하는 다시 말해 불공정을 주도하는 계층이 도마 위에 오른다. 세습화된 사회지도층, 그리고 이른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하는 수저 계급의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금수저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부의 정도를 계층으로 나누어 수저에 빗대 비유하는, 일종의 황당한 신분제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른바 ‘수저계급론(?)’이다.

 

수저 계급의 최상에 해당하는 ‘금수저’는 부모가 부유해서 후대가 살아가는 데에도 금전적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집안의 자식들을 일컫는 신조어로, 언론 매체에서 오래전부터 자주 쓰던 용어이다. 사회계급론에서는 이를 현대적인 의미의 생산시설과 부를 독점하고 소위 프롤레타리아의 착취를 일삼는 부르주아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금수저라는 말은 본래 은수저(Silver spoon)에서 왔다고 하는데‘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영미권의 오래된 관용구가 기원이라고 한다. 이 단어가 1960년대를 전후로 대한민국에 넘어와 쓰이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은수저는 황족과 왕족 등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물건인데 이는 한국에서 왕족, 양반가 등 상위 계층에서 은수저를 사용한 바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돌잔치에 조그마한 금수저, 반지 등을 선물하는 관행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한편, 은수저를 금수저로 격상(?)하여 부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올림픽 등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금메달을 주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미권 지역에서 서민 계층을 ‘나무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한국에 들어와 부의 정도에 따라 계층을 구분하는 용어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와 같은 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무엇이 공정성을 해치는가

일반적으로 세습된 사회지도층이나 금수저 집안의 경우 직업부터가 전문직, 고위직 공무원, 대기업 임직원 등 소득이 높은 직종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안은 일반적으로 풍성한 재력을 바탕으로 학연, 지연, 혈연의 네트워크를 가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우월적 조건의 파워(?)는 집안의 신분을 상속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세, 삼세들의 교육과 취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된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이들에게는 소위 사회적으로 경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치밀한‘ 불평등한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사립 유치원 입학, 특목고 입시 등 고교 입학, 대학 입학, 법률·의학 전문대학원 등 대학원 입학, 유학 등에서 일부 사회지도층과 금수저 신분을 가진 집안에서는 온갖 방법을 활용해 불평등한 기회를 누리려는 치밀한 준비와 노력을 한다. 거짓, 허위, 불법을 감행(?)하는 경우까지 있어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세 삼세는 입시를 위해 초중고 과정에서 최고 실력의 과외 선생 여럿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입시 전문가 컨설팅을 받으며 각종 입시 준비를 한다. 대학 재학 중에도 유학, 유망 대학원 진학, 국가시험, 취업을 위한 불평등한 교육이 계속된다.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불평등한 기회를 위한 치밀한 준비와 노력’의 내막을 서민들이 잘 알 리가 없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설 같은 이야기나 그 와중에 불법이나 부정이 있어 국가 사회적으로 불거지는 대형 사건 등을 통해서 짐작하거나 알 따름이다.

 

둘째로 들 수 있는 문제로는 국방의 의무마저 특혜를 누리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K-POP 그룹, 방탄소년단(BTS) 솔로들이 속속 군에 입대하고 그 동정이 세계적 뉴스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된 엄청난 수의 글로벌 팬덤 아미(BTS ARMY)들은 그룹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세습 사회지도층이나 금수저 집안의 자식이 징집 대상이 되어 허위의 신체검사 서류를 제출하여 군 면제를 받으려 노력하다 적발되고, 그것이 정치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있다. 또 몇 년 전에 입대한 그러한 집안의 사병이 소위 근무 여건이 좋은 부대에서 최고의 보직을 받고, 편히 군 생활을 하는 것도 부족해 규정을 무시하며 수시로 휴가를 나와 집에 있다, 들통난 사례가 있다. 국방의 의무에서의 특혜 사례를 들었는데, 이 외에도 시험, 취업, 승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이들의 특혜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 사례를 들어보면, 불평등한 정보의 혜택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가지는 각종 정보는 서민들과 비교하면 양과 질에 있어 격차가 매우 크다. 서로 주고받는 각종 고급 정보, 기업 금융 정부 등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얻는 정보, 부모의 기업이나 사업을 계승하며 손쉽게 얻는 정보나 노하우의 힘은 엄청나다.

 

예를 들면 서민들의 노력에 비해 훨씬 적은 노력으로 재산을 크게 늘릴 수도 있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경영, 투자, 입찰 등에 있어 이와 같은 특혜는 단거리 육상 경기에서 1-2초 먼저 출발한 선수가 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로 가나 기어가나 서울 남대문만 가면 그만이다’라는 비슷한 뜻의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서 ‘모로’는 비껴서, 옆쪽으로, 가장자리로, 대각선으로 등을 뜻하는 부사다. 이 속담은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쓰든지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뜻이다. 거의 같은 뜻의 속담이 둘씩이나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아주 넓고 깊이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속담이 담고 있는 의미를 곰곰 생각하면 어느 일을 할 때 공정한 방법이나 수단은 물론 불공정한 방법이나 수단을 써도 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험에서 수험생의 목적이 문제를 푸는 것이므로 시험 보는 과정에서 커닝이나 기타 불법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 시험을 치르더라도 좋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 과거시험에서도 그런 방법으로 세도가의 자제가 시험에 급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그와 같은 전통적인 사례나 정서, 사회 심리가 있었다고 해도 이제는 절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노력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외치며 편법과 불법을 쓰며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 조작이나 반칙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부정적 의미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되는 행위는 사회지도층이나 소위 금수저들에게 더욱이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양에서 소위 귀족이라고 칭하는 신분과 우리의 사회지도층 및 금수저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필자는 두 신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의 측면과 여론 형성의 측면에서 최상위에 해당하므로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과 의무를 짐 지워도 괜찮지 않나 생각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