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사람들

양문 마을에 예술의 옷을 입히다

포천좋은신문이 만난 사람 | ‘양문을 여는 사람들’ 이끄는 장수경 한국화 작가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가 예술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길거리 쓰레기가 사라지고 오래된 회색 벽은 화사한 그림으로 채워졌다. 국내 유명작가들의 작품으로 개인·그룹 전시회가 열리고, 문화예술교육 모임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로드마켓으로 지역상권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침체해 있던 작은 마을에 생겨난 생생한 변화, 그 시작에는 한국화 작가 장수경 씨(54)가 있다.

 

글·사진 | 홍보전산과 공보팀 추영화 주무관

 

내가 있는 곳을 가고 싶은 곳으로

장수경 작가는 지난 2017년, 중학 시절을 보낸 양문리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 작업에 몰두할 장소를 찾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마을을 둘러본 후 생각이 많아졌다. 전체적으로 생기를 잃은 거리가 추억 속의 고향과는 많이 달랐다. 변화가 필요했다.

 

장 작가는 “양문리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장수경 작가의 ‘작은 날갯짓’

마을을 바꾸는 일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관건이다. 장 작가는 전용 작업실 대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카페’를 열었다. 카페 이름은 ‘갤러리카페801’, 간판 그대로 갤러리이면서 카페다. 카페 벽면에 직접 그린 작품을 걸고 누구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주민들은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을 접하며 장 작가의 ‘가고 싶은 마을 만들기’에 하나둘 동참하게 되었다.

 

카페 건물 2층은 작업실 겸 전시공간인 ‘양문 아트스퀘어’로 꾸몄다. 그리고 주민주도 마을 재생 경험이 풍부한 서양화 작가 김야천씨를 비롯한 지인 작가들을 양문리에 초빙했다. 작가들과 주민들은 같이 교류하며 마을 발전에 대해 고민했고 ‘마을에 예술의 옷을 입히자’는데 뜻을 모았다. 작가·주민공동체 ‘양문을 여는 사람들(이하, 양여사)’의 시작이었다.

 

 

‘양문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양여사 회원들은 환경을 가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마을 분위기를 저해하는 어두침침한 컨테이너를 밝고 산뜻한 색으로 칠하고, 학교 주변 길거리 벽에 그림을 그렸다. 변화가 생기자 마을 재생에 큰 관심이 없던 주민들도 하나 둘씩 흥미를 갖고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전문작가들의 기획전시회도 진행했다. 카페에 전시 월을 설치해 한 달 간격으로 13회의 개인 및 그룹전시회를 열었다. 작가에게는 작품을 소개할 기회가, 주민들에게는 가까이서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가 되며 마을 문화 활동에 활력을 더했다.

 

아트스퀘어 옆에는 미술아카데미도 생겼다. 예술에 직접 참여해 보기를 원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술아카데미를 통해 양문리 주민들은 회화, 판화, 데생, 도예 등 수준 높은 미술작품을 직접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양문리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까지 서서히 예술이 스며들었다.

 

양리단길 '로드마켓'

마을에 예술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장수경 작가는 예술과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접목할 방법을 고민했다.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일본 오이타현의 유후인(湯布院), 예술가 마을로 유명한 파주 헤이리 등 국내외 여러 지역을 벤치마킹하며 양문리에 적합한 모델과 방법을 연구했다.

 

장수경 작가가 떠올린 것은 ‘로드마켓’. 메인도로에 로드마켓을 열어 작가들이 제작한 수공예품부터 주민들이 직접 심고 기른 텃밭 채소까지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도록 했다. 다양한 물건을 파는 자유로운 로드마켓의 모습이 서울 경리단길의 그것과 같다 해서 주민들은 양문리 로드마켓이 열리는 메인 거리를 ‘양리단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개최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내년 봄부터는 매주 토요일에 로드마켓을 열어 양문리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로드마켓을 꾸며갈 예정이다.

 

‘양문을 여는 사람들’의 꿈

장수경 작가는 양문리를 ‘예술적 잠재성이 살아있는 마을’이라 말한다. 예로부터 풍류인사들의 시심을 자아냈던 것으로 유명한 영평8경 등 뛰어난 자연요소 뿐아니라, 흥인군 묘소나 분단의 아픔의 상징인 3.8선 등 역사적으로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양문리만의 가치와 정체성을 높게 평가한다. 장 작가는 양여사 회원들과 함께 양문리의 이러한 예술적 잠재성을 살려 누구나 오고 싶은 문화·예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4일에는 경기도 도시재생지원센터와 도시재생지원센터 협의회에서 주최한 경기도 도시재생 주민참여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22일에는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는 ‘2020년 제3차 도시재생뉴딜사업 인정사업’ 공모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인정사업 공모선정으로 내년부터 3년간 총99억 규모의 ‘영중 옴파로스 38하우스건립사업’이 추진된다.

 

장수경 작가는 “마을을 같이 만들어나가면서 주변의 오해를 받기도 하고 힘이 빠지는 일도 있었지만, 함께 하는 양사모 회원들과 같이 이겨내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면서 “쉬운 길이 아님을 이미 각오했다. 어려움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 마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집중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