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면암 최익현 선생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만나선 안 돼

 

포천시와 포천시의회가 후원하는 '제5회 면암 문화재'가 지난 10월 12일에 숭모제, 상소문 백일장, 시가지 행렬, 무대 공연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진행해 면암 최익현 선생의 고귀한 뜻을 기렸다. 행사를 지켜본 시민들은 한결같이 면암 선생의 민족적 주체 의식을 다시 한번 가다듬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십시일반의 회원 후원금으로 행사를 치렀다. 올해부터 포천시, 의회, 숭모 사업회, 경주 최씨 종중, 포천 유림 등이 뜻을 모아 우리 고장이 낳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걸맞은 행사로 펼쳐 그 의미를 더했다. 호국의 정신이 깃든 포천의 우국충정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이다.

 

면암 선생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등 실정 상소 △민씨 일족의 옹폐(甕蔽 : 윗사람의 총명을 막아서 가림) 비난 상소 △조일(朝日)수호조규(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이라고도 함) 체결 반대 상소 등으로 제주도,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이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74세의 고령으로 전북 정읍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순창과 곡성을 취하고 남원으로 향했으나 방비 군이 같은 민족의 군사로 싸움을 포기했다. 회군 지역에서 재차 대한 군인과 맞선 상황에서 동포끼리 싸울 수 없다고 하여 의병을 해산하고 체포됐다. 

 

유림과 일반 민중의 큰 신망을 받는 인물에 대해 조선과 멀리 격리하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지침으로 선생은 일본 대마도로 유배돼 옥사했다. 원래 면암 선생의 묘는 논산시 노성면 국도변에 마련됐으나, 많은 참배객으로 두려워 한 일제의 명령으로 오지인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로 이장됐다. 선생의 묘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돼 일 년에 두 번의 제사를 모신다.

 

 

또한 의병 활동 전까지 6년 동안 거주한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의 고택,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선생의 위폐와 영정이 봉안된 사당 모덕사가 청양군 목면에 자리 잡고 있다. 청양군은 모덕사에 2025년 준공 목표로 150억여 원을 투입해 면암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등 '선비충의 문화관 조성 사업'를 진행하고 있다.  

 

 

의병 활동을 한 지역, 일시적으로 살았던 지역, 영면하고 있는 지역 등 전국의 많은 곳에서 선생의 덕을 사모하고, 의로운 뜻을 간직하며 추모하고 있다. 사는 곳도 활동하는 곳도 여러 곳일 수는 있지만 태어난 곳은 한 곳이다. 이에 비해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난 '을사늑약에 저항한 대표적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고귀한 뜻을 이어야 하는 포천은 정작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생각과 현실은 다르지 않다. 먼저 동상의 위치만 봐도 그렇다. 넓은 광장에 위치한 다른 지역과 달리 포천의 동상은 '청성 역사공원' 모퉁이의 협소한 곳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거나, 약수를 뜨는 기다림의 시간에 살펴봐야 눈에 띈다. 역사공원 안내도에도 없는 동상을 어떤 이가 찾겠는가? 이런 예우를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 볼 때이다.

 

 

가칭) 면암광장 건립위원회 한 관계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진 장소에 두는 것은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포천동사무소가 이전하면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광장으로 전환과 이 공간에 면암 선생의 동상을 이전하는 것으로 시민들과 뜻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백영현 시장이 지난 면암 숭모회장 이·취임식에서 △면암 생가터 복원을 최우선 진행 △중앙도서관 명칭을 면암도서관으로 변경 △'면암문화제'를 포천 대표적 문화제로의 위상 제고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등을 밝힌 점은 늦게나마 박수받을 일이다.

 

이어 다른 도서관 명칭도 포천의 역사인물로 명칭 변경 등 조그마한 것부터 실질적인 변화 추구를 언급했다. 면암 선생 동상의 광장 이전도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면암 선생은 소중한 역사 관광자원이다.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포천은 관광과 역사, 문화는 뗄 수 없다는 인식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때다. 

 

류왕현 면암숭모회 회장이 취임사에서 "우리는 왜 면암 숭모회를 해야 할까요?"라는 화두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에서 표현은 달라도 나아갈 길은 하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