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행복을 생각합니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 프로듀서/아나운서

 

서재원 교수님은 포천좋은신문 지면 창간과 함께 '살며 생각하며'라는 칼럼을 작년 7개월 동안 14회에 걸쳐 연재하다가 바쁜 강의 스케줄로 글쓰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런 서 교수님께서 올해 5월 말부터 다시 칼럼을 연재하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포천의 석학 서재원 교수님의 주옥같은 글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대가 큽니다. [편집자 주] 

 

 

“할아버지, 행복해? 행복한 게 최고라고 유치원 쌤이 말하는데....”

다섯 살짜리 손자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행복을 말합니다. 순간 퍼뜩, 지인이 얼마 전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와 문자가 생각이 납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세미노 로시(Semino Rossi)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영상을 입히고 문자를 넣어 보내주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잘 조화를 이루고 감동적이어서 다시 한번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 소개합니다.

 

유럽에서는 별로라고 하지만 한국에선 꽤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아르헨티나 출신 세미노 로시의 ‘나만을 위해 있어 주오’라는 곡의 노래가 흐른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정열의 노래에 영상이 흐르고 자막이 눈에 들어온다. 김옥춘 시인의 축약된 시구이다.

 

걸을 수만 있다면∼,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 중략 ∼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중략 ∼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행복은 열심히 노력하여 멀리 달려가 얻을 수도 있지만, 내 손안에 이미 있는 경우가 많다. 손에 그것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작게 보여 잘 모르지만, 놓치고 나면 얼마나 크고 귀중한지 알고서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보통 가지고 있는 행복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잃고 나서야 알아챈다. 가진 행복을 잘 인식하여 만족해하고 기뻐해야 한다.

 

일상의 행복이란 보다 소박하고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생활 속에서 만족과 기쁨을 충분하게 느끼어 흐뭇한 상태가 행복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누리는 마음의 평안 또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동양사상이나 불교, 유교, 서양 철학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 사회생활 속에서는 보통 ‘생활 만족, 웰빙(wellbeing), 흡족한 삶의 질’에서 행복을 찾는다.

 

욕심 특히 소유욕을 잘 다스려야 행복한 마음이 생깁니다

만족은 욕심을 채움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이다. 욕심은 불교 등의 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으로 나뉜다. 욕심을 소유와 연계하자면, 재물에 대한 소유욕과 명예에 대한 소유욕, 사람에 대한 소유욕으로 나뉜다. 인간의 끝없은 욕심은 더욱 탐욕스러워져서 물건 등 재물로도 성에 차질 않아 사람은 물론 자리까지 가지려 한다. 소유욕은 한정도 없고 영역도 없고 멈춤도 없다. 일 년 365일, 아니 인간의 역사 내내 지속한다. 인류의 역사는 소유로 인한 다툼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소유에 대한 포기가 없으면 만족도 없고 행복도 없고 자유도 없다.

 

한편 평안을 가지려면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감정은 기쁨, 노여움(분노), 슬픔, 즐거움(육체적인), 사랑, 미움, 욕망 등으로 나눈다.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몸과 마음을 휘감아 돌면 평안치 못하다. 특히 다른 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감정은 특히 잘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여움, 미움, 욕망 등이 그렇다.

 

법정 스님의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의 말씀을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소유욕의 멈춤이 만족하는 마음, 행복으로 가는 바른길이요, 평안은 행복의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절제하며 사는 것도 행복과 자유로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은 기쁨에서 행복은 비롯합니다

우리는 항상 경사로운 일을 소원하며 살고 있다. 출생, 혼사, 입학, 고시 등 어려운 시험 합격, 입신양명, 부의 취득은 대체로 큰 기쁨을 주는 일에 해당한다. 홍복을 주는 경사로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큰 행운이나 대박 같은 경사를 기쁨으로 아는 경향이 있다. ‘요행수를 바라는 심리’, ‘한탕주의에 대한 기대’ 등 사행 심리가 저변에 있지 않나 생각되어 적이 걱정된다. 현실적으로는 그것보다 ‘정당한 노력’에 의한‘작은 행운’이나 ‘일상 속의 기쁨’을 찾고 ‘행복과 만족’을 느껴보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생각해 본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일상생활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생활의 활력소를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만들고 하며 그것을 동력으로 하여 큰 기쁨, 큰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사랑’은 청춘남녀들이 이성 간에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나 성적으로 좋아하는 것, 즉 애정 행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단히 폭이 넓은‘ 인간의 가치’가 사랑이다. 인간에게 있어 우선하고, 소중하고, 본능적인 정서로 ‘가장 높은 가치의 감정’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이나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나 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나 일,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이나 일’이 사랑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에로스, 아가페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그 의미를 한두 줄로 구획·정리하는 데에 익숙하다. 에로스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충동을 포함하는 것, 아가페의 사랑은 기독교의 사랑과 같은 종교적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무조건적 이웃 사랑과 같은 것으로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자기희생 등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어떻게 정의하든 사랑은 아무튼 인간에게 값진 보석과 같은 감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기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 가운데 절대적인 사랑이 더 많은 사람에게 큰 행복을 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줍니다.

 

행복은 단순하고 밋밋하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은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아주 오랫동안 그와 같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에 잘못이 있음을 최근에 깨달았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현존하는 삶의 목적이다. 그것은 쟁취하고, 성취하는 게 아니라 현재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 소유한 것, 가까이 있는 사람’을 잘 수용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가식 없이 단순하고 평범하게 찾아옵니다. 마치 조미료를 전혀 치지 않은 심심하고 감칠맛 없는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처럼 밋밋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의 스며 있는 행복에 익숙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느낌과 정서에 대하여 불안하게 느끼고, 그 귀중한 행복을 무료하게 생각하고, 바장이며 불행한 음모(?)를 모색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그리고 이 글의 사족 같은 한 마디 – 나쁜 기억은 빨리 잊고 좋은 기억은 오래 간직하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이상의 제 생각이 글을 시작할 때의 행복에 대한 손자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재원 교수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