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프로방스, 바람과 햇살 4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필자 김은성 작가.

 

칸에서 니스까지

지중해 연안(Cote D'Azure ) 여행

 
아비뇽 숙소에서 3박 4일 짐만 챙겨 들고, 프렌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 riviera는 이탈리아어로 해안선)라고도 부르고 혹은 푸른 바다의 해안선이란 뜻의 꼬따쥬르(Cote D'Azure)라고 부르기도 하는 지중해 연안으로 떠난다.

 

▲매일 아침 눈뜨면 천천히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던 프로방스 시골 생활에서, 전 세계 부자들이 동경하는 바닷가 마을들을 구경나서는 길은 미리 짜놓은 여정에 맞추느라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시속 130킬로로 고속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려, 전도연 홍상수 박찬욱 등 한국 영화의 별들을 사랑해준 칸(Cannes)에 도착한다. 오전 9시 반인데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무비스타도 안 보이는데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바글대는 낯선 풍경을 만난다.


기차역에, 타고 온 자동차를 주차하고 역전 카페에서 아침 식사로 먹은 커피와 크로상은 최고였다. "이게 바로 크로상!"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스타들의 수준에 맞춘 동네라 그런가 싶다,


이곳은 프랑스 버전의 말리브(Malibu;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부자마을)이며 베벌리 힐이다.  세계에서 모여든 엄청난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쓰여 있는 가이드북과 달리, 눈앞에 보이는 바닷가의 모습은 그저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 정도로 보인다. 



▲러시아 귀족의 자금으로 러시아풍으로 지어진 칸의 특급호텔은 하룻밤 숙박비가 700~1,700유로 정도라고 하는데, 로비에 들어가 보니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별로 호사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휘황찬란함이 곧 품격은 아니라고 우기는 유럽인들의 자존심 같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미디어가 집중하며 기자들이 모여드는, 제일 요란한 이벤트 중 하나라는 영화제 레드카펫 장소도 실제로 보니 별로 화려하지 않다. 프로방스 시골 마을들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명품매장들도 좀 있으나 물건들은 몇 개 안 걸려있다.  영화제로 무비스타들이 모여들면 별들이 하늘 말고 땅에서 번쩍이는 마을로 변할 거라는 상상은 해본다. 



▲대한민국의 별들이 밟은 칸의 레드카펫은 실제로 보면 전혀 화려하지 않다. 이곳을 빛내는 건, 그 위를 걷는 세계의  별들이다.
 
다음에 들러본 곳은 앙티브(Antibes)이다. 유럽 최고의 요트 정박장에서 부자들의 장난감, 바다에 띄우고 노는 저택 같은 배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다. 배 타고 노는 부자들을 위해 배 청소, 수리 등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들도 많이 있다. 배마다 신발 벗고 올라가 청소하는 젊은이들이 서너 명씩 보인다.

▲앙티브는 세계의 부자들이 호화요트를 정박하는 아늑한 항구인데, 오래된 성벽이 둘러싸여 정취를 더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무늬 옷을 나도 입어본다.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작은 규모의 사또는 피카소 뮤지엄인데 월요일에 휴관이라 못 봤다. 피카소는 말년을 남프랑스에서 보내며 밝고, 아이들 같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중세의 성벽을 낀 지중해의 로맨틱한 항구인 아름다운 마을, 다시 이 지방에 오면 이곳에서 오래 묵고 싶다. 


▲앙티브의 피카소 뮤지엄.

 

생폴드방스(St Paul de Vence)는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지은 중세마을인데, 영화세트장 같은 좁은 골목길의 천년 된 집들에서 300여 명 주민이 사는 비현실적으로 예쁜 마을이다. 여기 사는 주민들이야말로 아름다움에 목숨을 걸고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마을의 압권은, 천년세월 반들반들 닳아서 반짝이는, 여러 색의 자갈들로 멋 낸 골목길이다.



▲샤갈의 작품, 생폴드방스의 연인.

 

생폴드방스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꼽히는 마크 샤갈이 말년 20년을 이곳에서 살았고, 묻힌 마을이다. 샤갈이 사랑하는 여인과 여기서 살던 말년에 그린 몽환적이고 따스하고 로맨틱한 작품들에는 생폴드방스의 풍경이 많이 보인다.


샤갈은 19세기 말(1887년) 벨라루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볼셰비키 혁명, 세계 1, 2차 대전 등 20세기 질곡의 역사를 겪어내며 프랑스, 미국을 거쳐 다시 남프랑스로 돌아와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인 이곳에 정착하여 1966년부터 1985년까지 살다가 갔다.

 

남프랑스에서 살며 작품 활동하던 피카소와도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인 샤갈과 스페인 사람인 피카소는, 피카소가 샤갈에게 언제 러시아로 돌아갈 거냐고 물으며 시작된 대화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후, 친구 관계는 끝났다고 전해진다. 샤갈이 유대인이라는 점과 피카소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예민한 문제에서 부닥친 것 같다. 


▲이곳은 좁은 골목과 언덕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버전의 삼청동 같다. 천 년 전에 깔아놓은 아름다운 자갈길이 반들거린다. 

 

그 옛날에 이렇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건축해놓은 이들의 번영과 가치관이 경이롭다.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산꼭대기에서 돌로 성을 쌓고 산 모습을 보며, '산이 많은 우리나라도 산 위에 돌집 짓고 살았더라면 왜구나 오랑캐를 다 무찔렀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언덕 위에 높이 앉은 마을, 생폴드방스.

 

지중해 연안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정한 니스는 인구 백만의 프랑스 5번째 도시다. 인구 10만 명이 못 되는 아비뇽 시골에서 오니 이 정도의 도시도 어지럽다. 급격하게 시골화된 것 같다. 날씨가 음습하기로 유명한 나라 영국의 귀족들이 겨울 휴양지로 삼아 발전되기 시작했다는 니스의 긴 해안가 올드타운은 번화하고 화려하다. 



▲니스의 해변.

 

겨울이 훨씬 따스하고 햇살도 종일 쨍해서 캘리포니아보다 휴양지로 한 수 위의 자연환경이다. 프로방스 넓은 농토에 알프스도 있고 지중해도 있는 프랑스, 나폴레옹 시절 제퍼슨에게 얼른 설득되어 미대륙 중서부 땅은 미국에 싹 다 팔아치울 만하다. 상당히 넓은 영토가 실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는 그 먼 곳 신대륙의 황무지 같은 땅은 관리도 귀찮았을 것 같다.



▲니스의 밤거리. 먹거리로 유명한 동네다.

 

아침에 아비뇽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칸으로 와서, 해안선을 따라서 오며 만나는 아름다운 마을들을 지나 니스에 안착한다. 이곳에서 2박 머물며, 지중해 연안(꼬따쥬르 혹은 프렌치 리비에라)을 구경하고 내륙으로 들어가 산길로 운전해 가다가 1박하고 아비뇽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