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프로방스, 바람과 햇살 3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필자 김은성 작가.

 

Sous le ciel d'Arles

아를의 하늘 아래서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하고 싶었던 곳, 아를(Arles)로 간다. 아비뇽의 숙소에서 3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미국 기준으로는 옆집이다. '아를의 여인'이란 제목의 희곡(알퐁스 도데), 음악(비제) 그리고 그림(반 고흐)으로 유명해진 이유로 오랫동안 많이 들어온 지명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여인'.

 

 

소박하고 조용한 시골길로 아를을 향해가는 도로변에서는 고흐가 사랑한 해바라기밭들을 만난다. 어디서나 보는 해바라기밭이지만, 인류가 사랑하는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본 그 해바라기라는 감동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시골길의 해바라기.

 

 

아를에 도착하니 오늘은 시골장이 서는 날이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농촌인지라, 재래시장이 관광객용이 아니고 일상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선, 그 동네 버전으로 샹젤리제에 속하는 미라보 광장, 도시 한복판에 이런 장이 서던데 이곳 시장은 시골 마을이지만 규모가 더 크다. 

 

 


▲마구 사 가고 싶은 테이블 린넨.

 

 

상점보다 아주 싼 값에 현지인들처럼 장을 보았다. 라벤더꿀과 아몬드 가루로 반죽한 이곳 전통 과자 칼리송(calisson), 계란흰자, 꿀, 견과류를 버무린 '누가'(Nugat)는 프로방스 특산물이다. 상점에서 100g에 12유로 이상인데 여긴 반값에 덤도 준다.

 

허름한 프로방스 시골 사람들, 영어 한마디도 못 하지만 모두 순박하고 친절하다. 어릴 때 시골에 가면 느껴지던, 도시 사람들에겐 없는 순박함을 여기서 느낀다. 오랜 세월 동안 선진국에 속해있는 나라의 시골에서 아직도 이런 순박한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여행의 진수는 현지인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 같다. 

 

 


▲누가 파는 아줌마, 영어 한마디도 못 하지만 누가 써는 칼과 함께 포즈를 취해준다.

 

 
오후 5시까지는 로마 유적들과 박물관을 보는데, 2000년 유적들을 보수해서 야외극장,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프랑스인들은 이곳이 로마제국의 일부였다고 광고하고 싶지 않다고 느껴진다.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유적에 들어가니, 예수님이 우리의 시공간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시대가 손에 닿는 듯 가깝게 느껴져, 2000년이 그다지 길지도 않다는 걸 실감한다. 
 
5시 이후부턴 '아를 음악 축제'라고 온 동네 주민들이 나와서 즐긴다. 뜨겁던 햇살이 기우니 청량하고 쾌적한 저녁 공기에 평일 저녁인데도 온 가족이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긴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의 교복 같은 줄무늬 의상을 입고 경쾌한 곡을 연주한다.

 

 

아름다운 유적 가운데 설치된 무대에서 연주되는 음악, 특히 고대 유적을 무대배경으로 하고 3명이 플라멩코 곡을 기타 연주하는 것은 압권이다. 이런 음악을 듣다니, 내가 이 여행에서 발품 팔아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해가 진 어둑한 거리에서 자동차 통행을 막아놓고 dance floor 깔아놓고 탱고를 추는 주민들 보니 너무 부럽다. 이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의 모습이...

 

 

 

▲탱고의 본향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신 '부에노스 아를'이라고 쓰고 여름밤에 탱고 추며 즐기는 주민들.

 
아직 이 도시가 밀고 있는 고흐는 못 만났어도 난 이곳이 아주 맘에 든다. 출근부에 도장 찍듯 매일이라도 올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고흐가 그린 노란 카페 앞에서 바라본 아를의 저잣거리.

 

 

퐁뒤가르(Pont du Gard ) 물은 로마의 힘! 
 
아비뇽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로마 유적이라는 퐁뒤가르. 2000년 전 다리나 보러 간다니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패키지 상품에 꼭 포함되길래 방문해보기로 한다. 입장료도 좀 되는데,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기대에 훨씬 뛰어넘는 아름다운 곳이다.

 

 


▲시골길을 지나다가 점심을 먹은 작은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너무 세련되어서 가슴이 뭉클하다.

 

 

며칠 전에 가본 도시 님으로 공급하는 물을 이웃 도시 우제(Uzes)에서 상수도로 끌어오는 길에, 수로가 강을 건너도록 지은 건축물이다. 기능성으로 지어졌으나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운 문화와 자연과 역사의 보물로 남게 되었다.

 

 


▲물속이 비치도록 깨끗한 강물에서 노는 주민들.

 

 

자세한 설명이 제공되는 박물관에서 열공하면서 로마제국의 엄청난 파워를 다시 복습한다. 님은 우물도 샘물도 많아서 식수가 부족하지 않았다는데, 로마제국에 속하면 굳이 수로를 만들어, 물로 호사하며 살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삶의 필요를 넘어 물로 인하여 삶의 질과 도시의 품격이 격상되고 나면, 사람들은 그 생활 수준에 익숙해져 버리고 물은 곧 로마 제국의 힘이 되는 거다.


로마제국에 속하면 잘 먹고 잘살고 극장에서 자극적인 볼거리로 온 백성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민족주의자들이 설 땅이 있었겠는가... 그 방대한 영토에서 수백 년 평화와 번영을 누린 팍스 로마나는 원형극장과 함께 수로에서도 그 배경을 더듬어 볼 수 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에 건설한 수로에,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를 18세기에 덧붙여지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멀리 아비뇽의 고성이 보이고 고대의 유적이 병풍으로 둘러선 맑은 강물에서 동네 젊은이들은 헤엄치고 소리 지르고 카약 타고 놀고 있다. 조상 잘 만나서 얘들은 이러고 논다.
 
수로를 흐르던 물이 발원한 샘이 있는 이웃 도시, 우제(Uzes)도 들러본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옛 도시가 이 구석 저 구석에 빼곡한 프로방스, 이 도시는 행정구역상 프로방스는 아니라고 한다. 오늘은 호텔에서 쉬려다가 12시 넘어 출근. 오후 반만 뛰고 퇴근이다. 날씨가 덥다.

 

 

 


▲우제(Uzes)의 꽃길.

 

 

Vincent in Arles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
 
매일 아침 눈뜨면, 우리 시간으로 오밤중인 내 몸이 오늘은 쉬고 싶다고 외친다. 더구나 오늘 아비뇽의 기온은 무려 100도. 이런 날은 밖에 안 나가야 하는데, 출근하고 싶은 이웃 동네 아를은 90도라고 한다. 그럼 슬슬 그리로 출근해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고 올까? 

 

아를 여행 정보 센터에서 공짜로 퍼주는 다른 팸플릿과 달리 1유로씩이나 받는 고흐 발자취 지도는 영어판이 없다. 미국 사람들이 달러를 뿌리거나 말거나 무시한다 치고, 영국 사람들도 싫어한다는 메시지 같다. 


50년간 담쌓은 나의 프랑스어는 거의 문맹이라, 남편께서 일본어 좀 읽는다며 일어판으로 샀는데, 더 문맹인 듯, 무더위에 도시 속 숨은그림찾기로 고행길이다. 외로웠던 천재 화가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친다. 무거운 화구를 이고 지고 뜨거운 햇살 아래서 걸어 다니고 장시간 서서 그림 그리던 고흐도 있었구먼.


여러 가지 미디어로 접할 수 있지만 굳이 콘서트에 가고 미술관을 찾아서 예술을 느끼고 싶어 하는 애호가들의 열망처럼, 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고흐의 그림들이 탄생한 곳의 햇살과 바람과 풍경을 느껴보려고 아를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날씨가 음침하고 변덕스러워 교민들이 너덜란드라 부른다는 화란에서 온 고흐에게 이곳의 눈 부신 햇살과 아비뇽에 도착한 첫날 그 뚜렷한 존재감으로 나와도 진하게 만난 '미스트랄'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프로방스에서의 3년간 300여 점이나 쏟아낸 그림의 영감이었으리라.


37년 이 세상에서 살고, 10년간 작가로 2,000여 점을 그렸으니 남들이 370년 살아도 못할 창작의 삶을 살고 간 그의 발자취는, 그의 그림들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이다. 하나도 안 팔리는데 그만큼 그릴 수밖에 없었던 폭포수 같은 예술혼!

 

16세부터 미술상에서 일하다가 23세에 잠시 광산촌에서 설교자로 일한 고흐는, 친지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면 문학적 표현력도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설교자로 일할 때는 너무나 긴 설교로 듣는 사람들의 진을 빼앗았다고 하니, 그의 열정은 어디에도 담길 수 없이 넘쳤던 듯하다. 


양극성 장애(bipolar), 예전에 조울증으로 불리던 병을 앓고 있어서 한 해 평균 200점 그릴 에너지가 분출되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1888년쯤에 고흐가 그림 그릴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카페와 주변의 모습으로 인해 아를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하염없다.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과 잠시 같이 살던 노란 집은 2차대전 때 폭격으로 없어졌으나, 그림에 보이는 주위 풍경은 그대로 남아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오는 나그네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19세기의 모습과 똑같이 남아있어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는 아를이다.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없어진 노란 집이 있던 자리. 집만 빼고 그림 속 풍경과 똑같다.

 

 

고갱과 다투고 버림받은 후 귀를 잘라서 동네 매춘부에게 이 보물 잘 간직하라고 주고 갔다니, 동네 사람들이 기함했었을 것 같다. 고흐가 좋아하던 투우 경기에서 승리의 상징으로 소의 귀를 자른 것을 상징화했으리란 추측도 있다.


아를에도 잘 보존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있고, 그곳에서 고흐가 그린 그림도 남아있다. 귀를 자르고  출혈과다로 입원했을 때 위험한 인물이니  병원에 가둬 두라고 주민들이 아우성쳤다는데, 젊은 인턴이던 의사(Dr. Felix Rey)가 낮엔 돌아다니며 그림 그리고 밤에만 입원실에 있으라고 허락했다고 한다. 

 

 

 

▲고흐가 입원해서 치료받던 병원의 모습도 그 당시와 똑같다. 지금은 병원은 아니고 박물관이다. 

 

고흐는 답례로 이 친절한 의사의 초상을 그려 선물로 주었다. 의사는 고마워했으나 그 당시로는 낯선 기법의 그림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자신의 농장 닭장 문에 뚫어진 구멍을 막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을 고흐의 족적을 추적하던 화가가 1900년에 발견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샀다고 한다.  5천만달라 이상을 호가하는 이 초상화는 현재 모스크바의 푸시킨 박물관에 걸려 있다. 

 

 


▲고흐를 만났을 때 23세이던 의사 Felix Rey의 초상.

 

 

그의 그림을 한 점 안 사주고, 위험인물이라며 눈총 주던 아를은, 여기서 15개월 거주했다는 빈센트를 오늘날 격하게 관광 테마로 삼고 있다.

 

저녁이 되니 그의 그림 아를의 여인 속 복장과 머리를 한 동네 주민들이 임시 민속촌을 차리고 농촌인 듯 피크닉도 하고 춤추며 하지 축제를  펼친다. 온 가족이 나와서 강강술래와 라인댄스를 합친듯한 춤을 추며 즐긴다.

 

 


▲하지 축제에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춤추는 여인들.

 

 

눈 부신 햇살 아래 밝은 원색으로 빛나는 이 지방의 자연의 색을 표현한듯한 프로방스 옷감들로 만든 옷들이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의 세트장처럼 눈앞에 쫙 펼쳐진다. 이들이 자연과 전통을 버무려 즐기고 사는 듯 보여주는 이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기라면 질색하는 남편도 모기가 막 물어뜯는데도 꾹 참고 앉아서 구경 삼매경이다. 

 

 


▲엄마와 딸의 애증을 표현한다는 전통춤을 추는 주민들.
 
프로방스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 대학 친구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아를을 꼽았고, 내가 탐독 중인 여행가이드북에서도 제일 첫 번째로 꼽은 동네란 걸 온 동네 주민이 합세해서 확인시켜준다.

 

 

라벤더

어제는 그 전날 무더위에 아를에서 너무 걸어 다닌 듯 피곤해서 온종일 호텔에서 지냈다. 내일 떠날 3박 4일 지중해 연안( Cote d'Azure ) 여행 계획도 짜고, 인터넷으로 한국 TV도 보면서 휴식했다. 앞으로 남은 여정에 영양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아비뇽은 덥다. 근처 어딜 가야 좀 시원할까 하고 찾아보니 고도가 좀 높은 산동네 루브롱(Lubron) 지역으로 가면 기온이 여기보다 시원할 듯하여 라벤다 루트라는 길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이곳을 먼저 여행한 친구가 추천한 마을 라코스트(Lacoste)에 가보니, 고르드(Gordes)와 비슷한 모습인데, 고르드처럼 부자들의 돈이 묻어 있지 않은 소박한 중세 마을로 절벽 위에 돌로 지은 집들과 전망이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상주인구 400명인 라코스트 마을의 입구.

 

 

정상에 있는 11세기 성은 유명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고성에 어우러진 현대 미술 작품들이 예술가의 감각답다. 

 

 


▲피에르가르뎅의 샤토.
 
라벤더 보러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은 라벤더 수업이다. 먼저 입장료를 받는 예쁜 박물관에도 들러본다.  라벤더의 캐피탈(capital)로 불리는 소(Sault)에선 라벤더 농장에 지어놓은, 예쁘진 않으나 내용 충실한 공짜 박물관에도 들러서 라벤더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증류 방법 등을 공부했다.

 

 

 


▲라벤더의 캐피탈이라 불리는 마을, 소( Sault).

 

 

흔히 라벤더는 편두통 완화, 근육 이완, 살균 효과 등의 만병통치 약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발 600m 이상에서만 자란다. 에센스 수확량이 라벤더보다 2배나 많고 냄새도 더 강한 '하이브리드 라벤딘'(hybrid Lavendine)은 해발이 낮은 지역에서도 자라는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라벤더가 여기 속한다.

 

라벤더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목욕하는 데 쓰고, 이집트에서는 미라 만드는 데도 사용해왔다. 주로 야생에서 채취해왔는데, 경작은 1920년쯤부터 해왔다고 한다. 척박하고 석회질이 많은 토양을 좋아한단다. 

 

 

 


▲프로방스 샐러드를 시키면 당도가 높은 이 지역 멜론과 얇게 썬 햄(prosciutto),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가 나온다. 
 
루브롱 산꼭대기 마을인 소( Sault)에 가니, 라벤더 제품들이 미국보다 값이 엄청 저렴하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라벤더 주머니들을 호텔 방에 잔뜩 늘어놓아 집에 갈 때 짐보따리가 걱정되지만, 살 땐 행복하다. 아직도 산속 마을엔 라벤더가 덜 피어서 떠나기 전에 다시 올 수 있길 바라며 숙소로 퇴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