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에 만발한 가을꽃의 향연

염전에서 꽃밭으로 바뀐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초가을 풍경 이야기

 

필자 석인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4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TBC 방송기자, 중앙일보 싱가포르 특파원, 중앙일보 사회부 전국부장 등을 거쳤다.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팀 위원과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2014년 '좋은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하얀 소금꽃 대신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물결

 

하얀 소금으로 뒤덮였을 염전이었지만 지금은 꽃밭이다. 눈이 모자랄 만큼 넓게 펼쳐진 벌판이 온통 분홍과 노랑, 붉은 색깔의 물결이 치고 있었다. 서해 바다가 가까운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초가을 풍경이다. 쾌청한 가을날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갯벌엔 꽃들과 각종 이름 모를 풀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코스모스의 분홍 물결, 해를 향한 해바라기들의 노랑 군무, 군락을 이룬 채 동그스름한 자태를 뽐내는 댑싸리들의 분홍빛 머금은 연두색 대열이 장관이었다. 늦가을엔 붉은색으로 물드는 댑싸리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대열을 이루어 광장에서 집단체조 하듯 펼쳐져 있다.

 

먼 남쪽에서 북상 중인 태풍 영향인지 바람은 시원했고 하늘은 쾌청했던 9월 15일 이 공원을 찾았다. 안내표지판은 이곳이 1934년부터 2년에 걸쳐 조성된 염전이었다고 한다. 넓이 4.9㎢의 염전에서 생산되던 소금양은 전국 생산량의 30%나 되는 대규모였단다. 일조량과 다른 여건이 좋아 소금의 질이 우수해 거의 전량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한다. 전성기에는 40개의 소금창고가 있었는데 1996년 7월 폐염된 후 단 두 동만 기념으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평일이어서 넓은 주차장에 쉽게 주차했다. 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엔 내 키보다 더 높게 자란 억새들이 가을바람에 흔들흔들 춤추고 있었다. 좌우로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에는 소금 대신 각종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 그 사이로 뱀이 기어가는 모습으로 구불구불 파고들어 온 갯골엔 바닷물이 파도치고 물가엔 이름 풀들이 무성하다. 이렇게 내륙 깊숙하게 파고들어 온 바닷물 골짜기를 내만(內灣)갯골이라 부른다. 이 생태공원엔 각종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철새들이 즐겨 찾는 도래지로 변했단다.

 

드넓은 면적에 만개한 코스모스밭은 산책 나온 연인들이나 사람들의 사진 촬영 명소였다. 분홍 꽃이 주류이지만 흰 꽃들도 섞여 가을 햇살에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다른 쪽엔 어른 키 높이로 자란 개량종 해바라기의 노란빛 향연이 장관이었다.

 

또 다른 곳에는 댑싸리들의 넓은 밭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댑싸리는 높이 자라는 단년생 식물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적당한 높이로 동글동글 손질돼 연두색 공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는 듯했다. 단풍이 들면 분홍색으로 변해 장관을 연출한단다.

 

 

 

 

넓은 생태공원의 가장자리는 벚나무들이 무성해 봄철엔 벚꽃 명소가 된다고 한다. 꽃밭을 지나면 경지 정리가 잘 된 들판처럼 사각형의 구획들이 염전을 연상 시켜 주고, 그 너머로 옛 시절의 소금창고 둘과 원두막들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파고들어 온 내만갯골에 찰랑거리는 바닷물이 파란 하늘을 반사하고 있다. 지금도 하루 두 차례씩 물이 나고 드는 살아있는 바다란다.

 

갯벌 중앙에 있는 시원한 그늘막 옆엔 해당화꽃 몇 송이가 가을빛에 졸고 대형 게 모형이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나오니 소금기 많은 갯벌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붉은 풀들이 손짓해주었다. 그 뒤편에서는 해바라기들의 군무가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