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우리 사회 갈등 해소의 출발, ‘입장 바꿔 생각합시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은 너무 심각하다. 서로 역지사지의 이해와 배려로 포용과 소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집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

2010년 초반, 40%를 넘는 시청률을 올리던 모 방송 인기 홈드라마의 배경이 된 어느 단독 주택의 거실 중앙의 벽에는 투박한 붓글씨로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라고 쓴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늘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고, 모두 그 이유와 의미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드라마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식구 간의 가족 문제로 인한 갈등을 되짚어 보고 사랑과 배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유쾌한 홈드라마였다.

 

드라마 대가족의 어른 역할을 하는 탤런트 ‘장용, 김해숙, 나문희’는 식구 간 갈등과 문제가 생길라치면 ‘입장 바꿔 생각하자’ 가훈이 걸린 거실 앞 응접실에 관련 식구를 모두 불러 앉혀놓고, 가훈의 뜻과 배경을 설명하며 훈계와 설득으로 갈등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 드라마의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 자체가 언론의 피처 기사가 되곤 한 기억이 떠오른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의 한자 고사성어가 역지사지(易之思之)이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중국의 고전인 맹자에서 비롯된 말이다. 쉽게 말해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의 감정,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태도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뜻하는 교훈적 의미를 가진 말이다.

 

현재 우리 사회 갈등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상존하고 있어 간헐적으로 대규모로 분출되고 있는 그 상황이 ‘형태, 성격, 강도, 규모’로 보아 위중하고 위험한 정도가 너무나도 극한적 상황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계속 증폭되고 확대되는 국가, 사회적 갈등은 자칫 잘못 대응하면 매우 불행한 폭력과 파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사례를 인류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단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갈등의 당사자들을 모두 앉혀놓고 서로서로 입장 바꿔 생각하자고 역설하고 설득하고 끝장 토론까지 하여 민주적 소통과 협의로‘사회적 합의이건, 정치적 합의이건, 법적 합의이건’ 아무튼 좋은 결론을 끌어냈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국가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을 살펴보며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교훈적 말로 해법의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주된 갈등을 개관한다

한국 사회의 갈등에 관한 공공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은 우리 사회 갈등 수준을 매우 크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이념 갈등, 계층・계급 갈등을 다른 갈등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보수’와 ‘진보’ 등 정치 이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보수와 진보’ 갈등이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82.9%였다. 이 갈등은 2022년에 이어 연속으로 상승하고 있고, 국민의 체감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에 빈부, 남녀, 세대 갈등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와 같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것이어서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진원지로 해석할 수 있다.

 

‘거대 양당을 주축으로 하여 적대적 갈등을 동원하는 극단적 당파성의 정치’, ‘정당 내 파벌 양극화’, '정책 등이 아닌 권력 이슈로만 갈등하는 정치’,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수준 낮은 혐오의 정치’,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정당의 낮은 자율성’,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즉 팬덤 정치’ 등이 정치 양극화의 원인이자 이념 갈등의 출발점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갈등 해소의 첫걸음으로 제시하는 역지사지

갈등은 본래는 한자로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이라는 글자를 조합하여 이뤄진 글자이다. 칡은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고, 반대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 두 넝쿨나무가 얽힌 모습은 아주 풀기 어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아주 질겨 자르기가 굉장히 힘들고, 뿌리까지 뽑기는 더욱 어려운 나무이다. 그러니 개인 간, 집단이나 사회 구성원 간의 의견충돌 및 마찰을 비유하여 나온 이 ‘갈등’이 해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말의 형상과 뜻으로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역지사지의 마음과 태도는 이해 등이 상충하는 당사자 간에 이해와 공감을 촉진하며 갈등을 미리 예방하고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생각 등을 가진 사람 간의 이해와 협력은 다양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마음과 태도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큰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와 동일한 실천 사례는 서양에도 있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어보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를 평가하지 말라, 당신은 그들의 신발을 신지 않았으니까”라는 말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동서양 막론하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역지사지에서 생기는 이해심과 배려심

역지사지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여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런 마음과 태도는 자신의 감정과 상대방의 행동 사이의 공백을 선택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소통에 앞서 이해와 양보로 푸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해’라는 말에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이라는 뜻이 있지만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란 뜻도 있다. ‘이해심’은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비슷한 말로 배려심이 있다. 배려심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다.

 

한편, 성경에 나오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십시오.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는 문구는 간단히 말해 이해심을 보이고 공감해 주라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감정을 헤아려 보는 마음은 바로 ‘역지사지’의 마음을 의미한다.

 

바다와 같이 넓은 포용력의 힘

이해심에서 비롯되는 포용력은 열린 마음, 바다 같은 넓은 품으로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이는 마음과 태도를 말한다. 포용력을 발휘할 때, 세계관을 넓히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해와 공감의 폭과 깊이를 심화 또는 확대한다.

 

포용력이 있어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은 용서를 잘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여도 화를 오래 품지 않고, 용서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다. 용서가 곧 자신을 위한 행동임을 알고, 미움보다는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와 다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다양성을 존중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배척하지 않고, 그로부터 새롭게 배우려고 노력한다. 다양성을 집단, 사회, 국가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포용력이 있어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은 비난, 비판, 부정 대신 이해와 긍정을 선택한다. 이 같은 마음과 태도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함께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간다.

 

이것이 바로 ‘집단의 병’으로 받아들이는 ‘갈등’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변화와 발전, 성장이라는 긍정적 사고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더 넓은 포용력으로 갈등으로 뒤엉킨 사회 분위기를 ‘긍정적인 에너지를 서로 교환하고, 그 에너지가 조직 전체를 충만케 하는 분위기’로 바꾸어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소통, 협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소통(의사소통의 줄임말)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유의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소통이 역지사지의 마음과 태도, 양보와 배려가 부족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통이 오히려 말싸움이 되어 갈등을 더욱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통은‘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도록 함’이 목표이므로 상대의 말을 반드시 경청해야 한다. 서로 경청해야 당사자 간의 신뢰 형성, 갈등 완화, 문제 해결, 효율성 증대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효과적인 소통,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로 사회적 합의이건, 정치적 합의이건, 법적 합의이건 아무튼 좋은 합의가 이루어져 우리의 갈등이 축소되고, 다양성을 서로 존중하며 나아가 그것이 긍정적인 모티브 역할을 하기를 소원한다.

 

현재 국가 사회적 갈등이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요즘 ‘영화 하얼빈’이 극장가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민족의 원수(怨讐) ‘이토 히로부미’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존재는 대한제국의 백성이었다. 그가 암살당하기 전 영화에서 말한다.

 

“조선이란 나라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이 지배한 나라이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그는 지배 계급인 ‘왕과 부패한 관료, 유생’이 아닌‘ 대한제국의 애국지사 안중근’에 의해서 생이 마감된다. 과거나 현재나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백성 즉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역사가 말하고 있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