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 그의 작품 세계와 우리 땅의 폭력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그의 작품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한 우리 땅, 우리 역사에 존재하는 폭력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에 의해 남겨진 트라우마와 극복의 실마리는 무엇일까.

 

 

소설가 한강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 큰 울림

소설가 한강은 지난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및 작품 세계는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 근원적 주제’와 그에 대한 치열하고 끊임없는 고뇌의 과정이다. 지난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스웨덴 한림원의 한 소설가는“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한강의 작품 세계를 평했다.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으로서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작품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한 우리 땅, 우리 역사에 존재하는 폭력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에 의해 남겨진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공존했던 우리의 시공간 모습을 유추하며 그것을 극복할 단서를 찾아본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작품이 표현하고 지향하는 일반적 가치는 생명, 사랑, 자유 등 휴머니즘에 기반한 고귀한 가치들이다. 작가는 작품과 작품의 과정에서 그것을 훼손하거나 압제하는 일체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도 그렇다.

 

인간의 잔혹함에서 연유하는 폭력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 고대 중국에서 주장되었던 도덕 사상의 기초가 되는 인간성에 대한 이론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는데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 것인데, 이 선한 본성에 악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 외물(外物)에 유혹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에 반해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다. 순자는 ”사람의 성(性)은 악(惡)한 것이고, 선(善)은 인위적인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천적 노력을 통해 예(禮 : 이상적인 규율, 나라의 제도ㆍ법률)를 따르도록 힘써 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며 필자는 한강의 작품 세계를 통해서 우리 땅에 존재하는 폭력의 잔혹한 모습 및 그것에 의해 희생되는 삶의 연약한 모습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죽지 않고 저항하는 생명력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본다.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들으려는 소설가 한강의 진실 어린 노력과 고뇌, 고통은 노벨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인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전편에서 오롯이 글로 승화되어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생명의 존엄, 사랑과 자유’로 나아가는‘고통의 노력’

먼저 우리 땅은 물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전쟁과 같은 너무도 처참한 대규모의 국가적 폭력, 뿌리 깊게 고착된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 가정과 사회 등에서 일어나는 생활 속의 폭력, 그리고 개인 간에 벌어지는 린치 등 물리적 폭력과 잘못된 규범 등에 치열하게 저항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을 비롯한 세계인 모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소설가 한강의 고통과 노력을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해진다.

 

소설가 한강이 가고 있는 길은 우리 땅에서 있었던 모든 폭력에 짓눌린 생명들을 향한 생과 사의 고요한 투쟁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장 장편소설 ‘채식주의자’의 ‘3부, 나무 불꽃’의 파일 이름을 ‘고통 3부작’이라 붙였다고 말하며 그 과정의 고통과 고뇌를 고백하였다. 폭력과 잘못된 규범 등에 저항하여 육식을 거부하며 ‘채식주의자’가 된 주인공은 마지막에는 음식마저 거부하고 물과 공기와 빛만을 받아들이는 덩굴 식물이 되려고 한다.

 

주인공이 정신 병원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검은 눈동자로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어떤 공포, 어떤 분노. 어떤 고통, 어떤 지옥’이다. ‘폭력의 트라우마와 폭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약한 여인으로 가부장적인 가정폭력, 동물에 대한 잔혹한 학대와 죽임, 성폭력, 잘못된 규범과 인식에 죽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

 

작가는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본 광주민주화운동은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이렇게 외친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극복하려 노력한다.

 

한강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자신이 여덟 살 때 썼던 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를 읊으며 작품 세계를 회고하였다. 한강은 그렇게 ‘우리에게 존재했고, 존재하는 폭력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전쟁과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인의 노력

폭력 없는 세상은 이상향이다. 인간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본성에 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평화는 전쟁을 위한 준비’라고 말했고, 전쟁을 ‘국가의 자기 의지 실현’으로 본 학자도 있다.

 

존 바에즈는 세계적인 포크송 가수로 인권 운동가이자 반전 평화 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리버 인더 파인스(The River In The Pines)>, <도나도나(Donna, Donna>라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졌다. <도나도나>는 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의 나치에 끌려가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대인 이웃을 지켜본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슬픈 이 노래는 유대인 작곡자와 작사자가 따로 있고 곡에 얽힌 사연이 있다. 그녀가 처음 부른 건 아니지만, 너무 감동적이어서 가사를 모두 소개한다.

 

”장터 가는 마차 위에 슬픈 눈의 송아지야/머리 위로 제비 한 마리 날쌔게 하늘을 나르네/시장으로 가는 마차 위에, 슬픈 눈을 가진 송아지가 있어/그의 높은 위에선 하늘을 부드럽게 비행하는 제비가 있고/바람은 얼마나 웃는지, 그들은 마음을 다해 웃어/하루 종일 그리고 여름밤이 어느 정도 지날 때까지 웃고 또 웃어/도나도나 도나도나(반복)/농부는 말했어. 불평 좀 그만 해, 누가 너더러 송아지로 태어나래?/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제비처럼 왜 날개를 갖지 못한 거야?/바람은 얼마나 웃는지, 그들은 마음을 다해 웃어/하루 종일 그리고 여름밤이 어느 정도 지날 때까지 웃고 또 웃어/송아지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쉽사리 도살당했어/하지만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자는 제비처럼 나는 법을 배웠지/도나도나 도나도나(반복)“

 

당시 전 유럽에 존재했던 약 8백만 유대인 중 약 6백만 명이 가스실 등에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래 속의 ‘슬픈 눈의 송아지가 마차에 실려 어딘가의 도살장으로 맥없이 끌려가는 모습’은 나치의 비밀경찰에 잡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존 바에즈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살아온 인물도 드물다. 80세를 훌쩍 뛰어넘는 나이에도 그의 활동은 여전히 세계인의 이목과 뉴스의 중심에 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은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한 때는 가수 존 바에즈의 연인이었다. 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인 그는 ‘노래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낸 점’ 등이 크게 평가된다. 그는 대표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 등을 발표해 세계인에게 반전, 자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밥 딜런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봐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라고 노래하며 전쟁을 반대하며 자유와 평화를 갈구한다.

 

우리는 폭력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

폭력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을 말하며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포함한다. 다른 사람 또는 국가나 세력을 제압하는 힘도 일반적으로 폭력에 해당한다. 폭력은 신체적인 손상을 주고, 정신적·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 강제력이다. 폭력 중 가장 대량이며 잔혹하고,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폭력은 전쟁이다. 그리고 언어폭력, 성희롱도 폭력에 해당한다. 요한 갈퉁은 1996년 출간한 그의 저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직접적 폭력을 줄이는 소극적 평화와 함께 갈등을 비폭력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를 통해 폭력을 해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 폭력, 성폭력, 구조적 폭력은 우리 주위에서 부지불식간에 끊임없이 발생한다. 인식 전환과 관심, 용기, 사랑을 통한 평화적 노력이 답이라는 생각이다. 관심 있는 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청각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저지른 끔찍한 아동학대, 성폭행 사건이 영화‘도가니’라는 영화에 의해서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실제 배경이 된 광주인화학교는 폐교를 맞았으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소위 '도가니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