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이원용 시 '글밭에서' 외 3편

시인, 한맥문학으로 등단·포천문인협회장 역임

 

'포천 문학산책'은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포천 분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쓴 시와 산문, 수필 등을 자유룝게 발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포천 문학 산책'에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큰 호응을 부탁합니다. 이번 주는 우향 이원용 시인의 시 '글밭애서' 외 3편을 감상합니다. 

 

 

글밭에서 

 

시를 그린다

생각의 봉우리에서 반짝이는

글의 열매들을 골라 모아서

가슴이라는 멍석에 널어 놓으니

씨앗들이 여물어 간다

 

잘 여문 씨앗을 골라 종이 그릇에 담으니

생각의 감옥에 가두었던 낱알들이

눈을 뜬다

 

해방된 언어들은 향기를 나누며

읽는 이의 눈속으로 들어가

숙성되어 머물기에

시는 가슴으로 쓰고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눈은 생각의 교차로에서

손가락에 쥐어진 연필의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파란 신호등

 

 

 

예술가

 

푸른 벌판 초원을 그리다가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을 그렸다가

봄 들녘에 피어나는 꽃을 그렸다가

푸른 바다를 그렸다가

밀려오는 파도를 그렸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를 그리다가

높은 산과 아름다운 정원을 그렸다가

무너진 모래성을 그리기도 하지

 

인생은 평생 예술가

살며시 왔다 가는 첫사랑도 그리고

애달프게 울어대는 눈물도 그리고

환희의 박수도 그린다

 

푸른 수평선도 그리고 

산들바람과 비바람과 폭풍우도 그리고

즐겁고 슬픈 추억도 그린다

 

인생은

색깔 없는 그림을 그리는 그림쟁이

삶이라는 일기를 쓰는 글쟁이

 

 

 

고향의 안개

 

아침밥 먹고 십리길 학교 가던 길

사라호 태풍 맞으며 돌아오던 길

초가지붕 사랑방에서 할아버지 등에 업혀

귀여움 받으며 자랐지

 

정월 초하루 '추석 날. 시제 날에

종갓집 사랑방은 가득한 일가친척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상차림조차 힘겨우셨지

 

식솔들을 위하여 온종일 논밭에서 일 하시다 

저녁나절 해질 무렵 들어오셔서

저녁밥 지으시려고 아궁이에 불 지피시던  어머니

 

추운 겨울

할아버지와 사랑방에 누워 잠들려 할 때

찬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면

어머니는 이불자락을 곱게 펴서 덮어 주셨지

 

눈감으면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픈 아버지

일생에 단 한번 아버지 품에 안겨 보고픈 이 아들은

평생토록 슬픔을 사랑한 나의 인생길

 

고향에는 하얀 안개가 산다

 

 

 

고독의 여행길 

 

 

봄이 오는 길목에 외로이 피어있는 새싹처럼

무채색의 길을 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지만

낯 설은 순간을 만난다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의지와 망각의  조각을 새겨 놓았던 

심장과 두뇌에서 외로이 질주하는

환상의 소리를 들으며 운명이라는 길을 간다

떠내려가는 얼음조각을 강둑에서 내려다보는

눈길이다

 

저 멀리 보이는 서리봉 꼭대기에는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하얀 서리꽃이 피어 있겠지

내가 나를 만나 나를 화해시키지 못한

고통의 벌칙일까

시간의 소모는 우산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흘러간다 냉정과 열정이 교차한다

 

하늘로 가는 길은 성역도 신호등도 없다는데

누구나 하는 이별이거늘 비켜 갈 수 없기에

스스로 받아들이는 소망일까 비단길 꽃길일까

은혜도 배신도 모두 놓고 가는 길이

행복의 봇짐을 메고 가는 용서의 길일까

 

 

 

 

이원용

시인 아호 : 우향

한맥문학 등단

포천문인협회장 역임

윌더니스문학 운영위원장

한국문학신문문학상

스토리문학상

DMZ문학상 등 문화예술상 15회 수상

시집 『날지 않는 나비』 외 2권

문학지 기고 100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