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5천 년을 열흘에 본 이집트 여행 6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12월 21일
오늘 아침은 유람선에서 휴식한다. 우리를 태운 유람선은 나일강을 따라서 비교적 느린 속도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길고 긴 나일강 유역을 바라보며, 쾌적하고 따스한 12월의 햇볕을 만끽한다. 유람선이 빠르게 움직이면 ‘유람’(돌아다니며 구경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엄동설한이라는 소식을 들으면서, 4층 건물 같은 유람선의 옥상에서 눈부신 12월의 햇빛을 감사함으로 누린다.

 

 

핫셉수트 여왕이 모세를 건져내었다는 나일강 강가에는 갈대 같은 모습의 식물이 무성하다. 갈대가 없었다면 아기를 태운 광주리는 하염없이 강 가운데로 흘러가 버렸을 텐데, 갈대밭이라 천천히 떠다니다가 강가에 나와 있던 공주의 눈에 띌 수 있었을 것 같다.


나일강이 운송과 교통을 책임져줄 뿐 아니라 잦은 범람으로 온갖 퇴적물을 쌓아 비옥한 토지를 강가에 펼쳐준다. 경관을 바라보며 고대 왕국이 부를 누릴 수 있는 모든 이유가 나일강에 있었음을 시야로 확인한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데, 현지 가이드가 미리 얘기해 준 대로 조각배 수준의 작은 배들이 모터를 달고 빠르게 다가와서 해적선 이야기에서 들은 것처럼 우리 유람선에 갈고리를 걸고 바짝 붙는다. 그리고 4층 높이 유람선의 옥상으로 비닐봉지에 담긴 상품을 정확하게 던진다. 강으로 빠질 듯한데 너무 정확하게 옥상에 떨어진다. 주로 티셔츠나 테일블보 등의 섬유 제품이다.


소리 높여 가격을 부르는데 흥정해야 한다. 테이블보와 냅킨 세트에 100불을 부르니, 중국 말을 하는 승객들이 한참 흥정하여 15불에 산다. 우리 여행팀의 이란계 미국 승객이 함께 구경하던 나에게 저 거래는 너무 인색하다고 말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물건을 4층 높이로 정확하게 던져 올리고, 비닐봉지에 담겨 올라온 물건 중 안 살 물건 사이에 미국 달러로 물건값을 끼워 던지면 다시 정확하게 받는 그들의 ‘공연’을 본 대가로 나도 뭔가를 팔아주고 싶었다. 그들이 던져 올린 상품 중에 가장 그럴듯해 보이고 쓸모가 있을 듯한 작은 양탄자 같은 면 제품을 사기로 하고, 그 물건에 지불하고 싶은 금액을 마음속으로 정했다. 호기롭게 100불을 부르는데 25불이면 사겠다고 했다. 안 된다길래 그럼 안 산다고 했더니 25불에 주겠다고 해서 두 개를 샀다. 같은 여행팀의 미국 사람들도 너도나도 25불에 여러 개를 사고 나니, 다른 조각배에서 15불에 테이블보 산 중국 사람들이 와서 다시 흥정해 7불에 같은 물건을 산다. 25불에 산 나를 비롯한 많은 손님이 허탈할 수도 있겠으나, 미국 기준으로 25불이면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되니 나는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수공예품이나 커피 등 저개발 국가에서 사 오는 물건이나 자원에 국제 기준 공정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양심적인 공정 거래라는, 다국적 기업들이 추구하는 유통 개념에 동참한다는 느낌에 오히려 뿌듯했다. 무조건 낮은 가격만 지불하면 저개발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착취라고 생각하는 트렌드도 먹고 살 만해진 선진국들의 아량일 수 있겠다. 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하는 것과 같이 지구촌도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거시적인 경제관념이라고 생각된다.

 

 

한가로운 하루를 마감하며 해가 저무는 오후 늦게, 강가에서 걸으면 지척에 있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전, 콤 옴보를 방문한다.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부터 왕조가 바뀌면서 계속되어 오다가 기원전 332년 그리스인들이 왕조를 세우며 없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 대왕이 불과 10여 년 동안의 짧은 세월 동안 광활한 지역을 확보한 후 갑자기 사망하자, 그의 부하이던 프톨레미가 이집트로 들어와(기원전 332년) 헬레니즘 왕국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수천 년간 계속되어 온 이집트 왕조는 끝이 났다. 

 

그리스에서 온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도 프톨레미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사람인 걸 모른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아직도 고대 이집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인도까지 퍼져나간 헬레니즘 문화는 현지의 문화와 섞이며 서구의 문화를 전했고 다양한 문화의 소통과 융합을 만들어 내었다. 이집트로 들어온 헬레니즘 또한 토착 신앙과 문화를 존중하고 따르며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이집트의 전통 신앙에 따라 짓고 그리스 왕조가 제사를 지낸 신전 중의 하나가 콤 옴보 신전이다.

 

그레코로만 스타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그리스 코린트 양식의 신전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이집트의 토착 신앙이 헬레니즘을 입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며, 고대 이집트 문명이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로마 문명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융화되고 있는 것을 본다.

 

 

 

기원전 180년경부터 지어진 이 신전은 나일강 전망이 아름다운 곳에 있다. 강하고 두려운 존재이던 악어의 얼굴을 한 신(소벡)과 멀리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매의 얼굴을 한 신(호로스)을 위하여 지어진 신전인데, 벽면에는 빼곡하게 그 당시의 제사·축제 의식에 대한 기록과 왕의 치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나일강을 상징하는 동물인 악어는 그 강인함으로 두려움의 대상이며 또한 나일강이 가져다주는 풍요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었다. 신전 옆에는 미라로 보관된 악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다. 인류는 두려움의 대상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한 예로 보인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상과 자연 현상을 주관하는 존재가 있을 거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개념을 때로는 동물의 모습으로 형상화해보고 경배하는 신앙심은 인류가 항상 공통으로 가져온 본능임을 확인한다.

 

12월 22일

 

유람선은 콤 옴보에서 밤새 나일강의 상류로 50㎞ 정도 이동해 아스완에 정박해 있다. 오늘은 다시 새벽 4시 기상하여 6시부터 버스로 아스완에서 280㎞ 떨어진 아부심벨 신전으로 간다. 3시간 이상 버스로 이동하는데 황량한 사막 가운데 관개 시설이 있는 농경지도 보인다.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에서 멀고 접근성이 떨어져 여행 상품에서 옵션으로 들어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집트 여행의 클라이맥스같이 느껴진다.

 

아부심벨 신전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의 가장 강력했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30여 년간 건축한 신전으로 대신전은 자신을 위하여, 소신전은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하여 지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람세스 2세는 무려 90세까지 살았으며 60년 이상을 통치한 강력한 군주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룩소르, 카르나크,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축물을 남겼으며 자녀도 100명 정도 있었다고 하니 3천여 년 전에 살았던 슈퍼 인류 같다.

 

이집트 남쪽 국경을 위협하던 수단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스스로 신이라 천명하며 이곳에 자신에게 헌정하는 거대한 신전을 짓고 신전 앞에 자신의 거대한 석상을 4개나 세운 그의 호기로운 스케일에 압도된다. 이집트인들에게 4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거대한 자신의 석상은 남쪽의 국경을 위협하던 수단인들을 겁주고 다시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심리적인 확인 사살이 목적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거대한 건축을 해내는 실력을 과시하며……. 신전의 벽에는 적군의 포로들을 묶어서 앉혀놓은 그림도 음각되어 있다. 

 

대부분 파라오는 자신의 석상 아래에 무릎 이하의 높이로 왕비나 자녀들의 모습을 조각해서 첨가하는데, 람세스 2세는 그의 왕비를 위하여 따로 신전을 짓고 그 앞에 자신과 같은 크기로 그녀의 석상을 세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왕비도 신격화하여 자신의 왕조가 신들의 왕권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왕국이 쇠퇴해가자 이 거대한 신전은 수천 년간 모래 속에 거의 묻혀 있다가 1800년대에 호기심 많은 유럽인들에 의하여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모래 속에 묻혀 있던 덕분에 신전은 옛 모습이 많이 남았으나, 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인류의 유산은 1964년부터 4년에 걸쳐 유네스코의 주관으로 해체되어 200m 정도, 댐에서 멀리 이동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기막히고 신비로운 이곳에서 3천여 년 전에 이곳을 통치하고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간 람세스 2세라는 한 인간을 만난 엄청난 느낌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고 깊고 둔탁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