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프로방스, 바람과 햇살 5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필자 김은성 작가.

 

니스에서 이탈리아를 향하여

지중해 연안으로

 

니스의 호텔에서 숙박하고, 이탈리아 방향으로 지중해 연안 도로를 따라가니 모나코 왕국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운전하고 달리다가 사망한 가파른 절벽 위의 좁은 길이다. 유럽에는 아찔한 절벽 위의 좁은 길이 많은 편이라 고소 공포증이 있으면 운전하기 힘들 거 같은 길을 많이 만나는데, 현지인들은 익숙해서인지 우리 기준으론 마구 달린다고 느껴진다. 


이성계의 후손들은 500년 동안 조선을 다스렸는데,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문은 800년 동안 계속 다스리고 있다. 그리말디 가문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쪽빛 바다 위 천혜의 철옹성에서 800년을 이어온 이 작은 왕가에 그레이스 켈리를 데리고 온 건, 이 나라 인지도에 큰 공헌을 했음이 분명하다. 유럽의 홍콩 같은 모습의 모나코는 인구 3만여 명인데 인구밀도 세계 최고라니 초미니 국가다.

 

▲모나코 왕국을 지켜준 절벽과 푸른 바다.

 

12시에 운 좋게 궁전에 도착하여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했다. 그들은 군인이라기보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 중인 장난감 병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궁전 앞 근위병의 교대식.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결혼했고 묻혀있는 아름다운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국민들이 정성 가득 담아 이 성전을 지어 바친 하나님은, 이 나라가 카지노를 국가사업으로 삼는 건 어찌 생각하실까 생각해 본다.

 

▲결혼식 한 성당에 묻혀있는 그레이스 켈리.
 
생폴드방스와 비슷한 언덕마을 에즈(Eze)도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영화 세트장 같던 생폴드방스보다는 좀 더 현실감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의 카페에서 시원한 독일 맥주로 더위를 식히며 점심을 먹는다.

 

날씨가 더워서 남프랑스 사람들이 여름에 즐긴다는 핑크빛 와인, 로제보다는 독일제 맥주만 마신다. 와인은 여기서 흔하디흔하고 값도 저렴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갈증을 축이려고 벌컥 들이킬 수 없으니, 식사를 주문하면 거의 공짜로 포함되어 주는데도 주로 야외에서 식사하는 이곳에선 마시게 되지 않는다.

 

미국에선 커피 인심이 후하듯이 프랑스에선 와인 인심이 후하다고 느껴진다. 스타벅스가 미국에 에스프레소를 유행시킨 후엔, 식당에 있는 동안엔 빈 잔을 계속 채워주는 무한 리필 커피가 시들해지고 있기는 하다. 유럽이나 한국보다 소박하던 미국 사람들의 커피 입맛도 세계화의 흐름으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로 고급화되고 있다. 

 

▲뜨거운 날씨에도 야외에서 식사하는 에즈의 카페엔 좁은 골목에 테이블을 놓다 보니, 파라솔이 반쪽만 있다.

▲에즈의 골목.

 

니체가 언덕 위에 앉은 이 마을의 골목길인 층계를 오르내리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는데 그 어려운 책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 못 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선 행복한 글들이 쓰여야 했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림으로 그린 에즈.

 

모나코 옆집, 쌩장카페라(St Jean Cap Ferrat)는 부자들이 조용히 요트 정박하고 노는 작은 항구이고, 육지에서 바다로 쑥 튀어나온 곶이다. 동해의 영덕 같은 지형에, 오밀조밀 아무렇게나 지은 집들 대신 조화롭게 지어진 아름다운 돌집들과 여유와 낭만의 상징인 요트가 정박하고 있는 부자 동네다. 

 

▲쌩장카페라.

 

빌프랑쉬 쉬르메르(Villefranche-sur-mer )는 다른 엄청난 마을들에 비하여 보통 사람들이 사는듯한 모습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지중해를 바라보는 견고한 샤또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빌프랑쉬 쉬르메르의 16세기 고성으로 들어가며.

 

바다에 떠다니는 호텔, 쿠루즈 배가 정박하는 곳인데, 그 바로 옆 바위 해변에서 동네 사람들이 여유롭게 헤엄친다.

 

▲크루즈 배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노는 주민들.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답거나, 나와는 연결점이 전혀 없는 부자들만 모여있는 듯하여 낯설다고 느껴지던 프렌치 리비에라의 다른 마을들보다 제일 친근하게 느껴지는 마을이다. 


Marc Chagall 샤갈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식을 합시코드 뚜껑에 그려 넣은 샤갈의 이 작품이 내 마음에 제일 남는다. 

 

니스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고 난 아침이다. 역사 깊은 니스를 충분히 즐기기엔 여정도 촉박하고, 도시가 주는 번잡함이 부담스러워, 니스의 최고 볼거리로 선정된 샤갈의 뮤지엄으로 운전해가니 주차장은 아예 없다.

 

포기하긴 너무 억울해서 동네를 헤매다가 동네 주민들처럼 인도에 바퀴 하나 걸쳐 올리고 주차한 후 5분 걸어서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주차위반 딱지 뗄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이 시대 위대한 예술가를 열공하며 뿌듯하고 벅찬 니스에서의 아침을 보냈다.


1887년,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에 나오는 모습 같은 러시아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나, 격동기 서양의 근세사를 굽이굽이 살아남은 샤갈이 86세 되던 1973년,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이던 프랑스 정부가 샤갈에게 뮤지엄을 헌정했다. 살아있는 작가에게 뮤지엄이 헌정된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뮤지엄의 디자인과 조경, 정원에 심은 꽃과 전시될 그림까지 샤갈이 결정했다고 한다.
 

▲불의 병거로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를 표현한 샤갈의 모자이크.

▲샤갈의 도예 작품들.

 

유대인인 샤갈의 예술엔 구약이 바탕을 이루며, 그가 직접 선택하여 전시한 뮤지엄의 작품들도 거의 구약의 내용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뮤지엄을 구약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채운 것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해주는 것 같다.  

 

▲아담의 창조.

 

신약의 주인공인 예수그리스도를 그린 작품도 있으나 예수그리스도는 작가의 구세주가 아니고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샤갈의 흰색 십자가 처형(시카고 뮤지엄), 예수는 인류를 대신하여 고통받는 유대인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그동안 보아온 샤갈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매우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들, 오일로 그렸으나 파스텔화 같은 느낌의 몽환적인 작품들이 위대한 예술의 카리스마로 압도해온다. 주차 걱정이 아니었다면 샤갈의 예술이 다음 일정도 다 잊게 만들었을 텐데, 정신 차려서 자동차로 돌아와 꼬따쥬르(Cote D'Azure)를 떠나 내륙으로 이동한다. 

 
향수 산업의 본향, 그라스(Grasse)


지중해 연안을 떠나 아비뇽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륙으로 들어가며 고도가 올라간다. 동해에서 바로 설악산 쪽으로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하다. 첫 번째 만난 마을은 향수 산업의 본향, 그라스이다.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오감의 사치 중 하나인 향수의 유래도 고대부터 내려온다. 예로부터 비싼 향수를 만들어 온 동네지만, 꾸밈없고 소박한 시골 동네다. 화려한 지중해 연안 마을들과 달리 매우 현실적인 이 마을에는 향수박물관들이 있어서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온다. 

 

▲화가로도 유명한 프레고나르(Fragonard) 향수 매장.

 

난 향수는 안 사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가, 직접 만들어 파는 동네 아줌마의 수제 모자를 집어 들고 말았다. 많이 갖고 있어도 늘 집어 드는 품목은 같다. 스카프와 모자, 그리고 테이블 린넨…


동네 성당에 들어서니 돌로만 장식된 비교적 담백 소박한 건축이, 천 년 동안 그곳에 남아있는 위엄으로 빛나고 있어서 감동적이다. 

 

▲유명세에 비하여 소박한 시골 동네 같은 마을 그라스.
 
그라스(Grasse)에서 산길로 가는 신작로, 나폴레옹이 유배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며 걸었다는 나폴레옹 로를 따라서 드라이브해 가다가 숙소로 정한 조용한 시골 마을로 온다.

 

베르동 협곡에 가려고 지도 보고 이곳을 찍었는데, 니스에서 너무 가깝고 베르동 협곡에 가려면 1시간 반이나 더 가야 하니, 잘못 정한 장소이지만 실수 안했으면 올 일이 없을 한적한 이곳이 매우 맘에 든다.

 

▲생화로 마구 장식된 예쁜 레스토랑 위층이 부틱호텔이다. 내일 아침에는 그 이쁜 식당에서 새벽밥 먹고 베르동으로 간다.

 

Hue of nature,

자연이 펼치는 색의 향연
 
긴 하루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숙소를 떠난다. 3박 4일 짐이라도 아침에 다시 봇짐 꾸리는 건 항상 버겁다.

 

▲우리가 하룻밤 유숙한 호텔. 나폴레옹이 유배 후 파리로 돌아올 때 지나던 길에 있다.

 

나폴레옹의 길(Route de Napoleon)을 따라서 알프스의 산자락 내륙으로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달린다. 미국 기준으로 이런 길은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려도 빠른데, 여기선 시속 90킬로로 달리라고 표지판에 쓰여 있다. 다른 차들에게 민폐이거나 말거나 우린 달팽이처럼 기면서 풍광을 유람하는 셈 치고 천천히 운전해 간다.

 

1시간 반이라고 하는 데 거의 두어 시간 걸려서, 유럽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치 중 하나로 꼽힌다는 베르동(Verdon) 협곡에 도착한다.


가이드북에서 가르쳐 준 대로 첫 번째 전망지점으로 가니, 으리으리한 전망을 내려다보며 소박한 시골 카페가 있다. 최고의 전망에서 커피 한잔 음미하는 호사를 누린 후 전망대로 걸어가니, 우와~ 이제까지 다녀본 여행에서 보아온 풍경들은 다 잊게 하는 아름답고 화려한 장관이 펼쳐진다. 규모가 너무 커서 아찔하던 그랜드 캐니언과 비교하면 미니어처 같으나, 규모가 아담해서 한눈에 담기는 감동과 화려함이 압도한다. 

 

▲베르동의 세계적인 인지도와 동떨어진 소박한 시골 구멍가게 같은 카페지만, 전망은 최고다.

 

미국의 자연이 장엄하고 멋있다면 유럽의 자연은, 너무 화려하고 예쁘다. 유럽의 문화 예술의 화려함과 디테일의 모습과 닮아있다. 아찔하게 깊은 협곡과 그곳을 흐르는 에메랄드빛의 물. 마치 아담한(미국과 비교하니 아담하게 느껴진다) 캔버스에 협곡을 섬세하게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강물을 천상의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보니 푸르른 호수가 보이고, 건너편 언덕에 발랑솔(Valensol) 고원의 보랏빛 라벤더밭이 보인다. 너무나도 격하게 아름다운 자연의 색이다. 

 

그 협곡을 끼고 무지막지하게 험한 길을 자동차로 돌며, 군데군데 차를 세우고 사진 찍어가며 감동을 이어간다. 자전거 타는 유럽사람들이, 내리막길에서  달팽이 속도로 기어가는 우리 차 따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추월한다. 저들은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체력적으로 우월하게 훈련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발랑솔 고원의 라벤더밭.

 

베르동에서 내려와 발랑솔 고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여러 시골 마을 중, 최고의 압권은 무스티에생트마리(Moustiers-ste-Marie)다. 

 

▲무스티에셍트마리의 특산물인 섬세한 도자기.


산비탈에 올라앉은 오래된 마을인데, 산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동네 곳곳에 폭포를 이루고, 가파른 산비탈에 아름다운 돌집들이 모여있는 산동네이다. 이곳을 지금껏 본 여러 마을 중 가장 예쁘다고 느끼게 하는 건 단연코 마을이 앉아 있는 바위 언덕과 흐르는 물이 만들어 내는 경관이다. 사람들이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심술마저 나게 한다. 


경작지가 있는 산 아래의 경관을 내려다보며 굳이 이렇게 험한 바위산에 올라와서 살게 된 것을 보면, 이웃 동네끼리도 엄청나게 싸우며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산 아래 경작지로 오르내리는 출퇴근길이 등산이었으니, 체력 관리는 보장되었을 것 같고,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이렇게 아름다우니 미학적인 감각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유추해본다. 
 

▲바위산에 올라 앉아있는 무스티에생트마리.
 
발랑솔 (Valensol) 고원의 보랏빛 바다같이 넓은 라벤더밭을, 원도 한도 없이 보고, 냄새 맡으며 루브롱(Lubron) 산골 마을들을 돌아 아비뇽에 도착하기 전, 리슬쉬르라소르지(L'Isle-sur-la-Sorgue)에 들러본다. 

 

▲리슬쉬르 라소르지의 물가에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온 마을 주민들이 다 나와서 외식하는 것처럼 붐빈다. 

 

이곳엔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거울 같은 강물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데, 새로 꾸며놓은 서울의 청계천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마을이 워낙 작다 보니 강 자체가 온 마을을 정원화 시켜서 아름다운 그림을 이룬다.

 

저녁 식사하러 강가에 죽 늘어선 식당으로 모여드는 주민들을 보며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서 요새 다시 프랑스혁명이 필요하다는 둥, 뭐가 그리 문제라는 거야?'라며 다시 내 입이 쑥 나온다. 
 

▲루브롱 산골 시골 마을의 기념품 가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마을이지만, 모두 옛 모습 그대로 시골 풍경으로 남아있어 주어서 고맙다.

 
오전 8시 못 되어 숙소를 출발해서 종일 자동차로 산길을 기어 다니다가, 오후 9시 가까이 다시 아비뇽 호텔로 돌아오니 집에 온 듯 기쁘다. 오자마자 가져온 누룽지를 끓여 밑반찬과 먹으니 3박 4일 동안 프랑스 음식에 쩔은 내 몸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아무리 여행길에서 벅찬 감동이 계속되어도 집이 제일 좋은데, 집 떠나 헤매고 다니는 여행이 은퇴한 사람들의 로망이기도 하니 아이러니이다. 긴 듯 짧은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여행 속의 여행을 마치고, 여행지의 내 집에 돌아오니 너무 안락하다.

 

다음 편이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