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은성 작가.

 

 

Day-8,  두오모 완전정복 
 
피렌체의 상징, 아름다운 이 도시의 꽃인 대성당 탐방은 햇살도 좋은 오늘 드디어 결행한다.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라는 긴 이름 대신 두오모(Duomo)라고 불리는 이유는, 라틴어로 두오모가 집이라는 뜻인데, 성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첫 번 피렌체 방문 당시엔 명동 성당 앞의 길보다 훨씬 좁고, 긴 골목을 걸어가서 만나는 광장에 거대한 성당이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근처에서 유숙하는 주민이 되어 매일 오가며 눈으로 어루만지고, 감동하며 상당히 친해진 대성당과 깊숙이 만나보기로 한다.

 

▲피렌체의 상징,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은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벽돌로 쌓은 동그란 dome이 얹어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부와 그들의 pride의 상징이다. 물론 지금의 피렌체 사람들도 자랑스럽기가 그 당시보다 덜하지 않겠지만... 

92m 붉은 dome 지붕 위의 전망대까지 500개 가까운 계단으로 올라가서 숨을 멈추게 하는 피렌체의 전경을 내려다본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내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댄 토스카나의 부드러운 구릉을 배경으로, 붉은 기와로 대동단결한 구도시. 

 

지금은 흘러가 버린 시간 속에 존재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경이라는 사실이 더 압도적인지, 엄청난 절대적 아름다움이 더 경이로운지 확실하지 않은 감동으로 벅차다. 감동은 확실히 꼭 집어서 표현하기 힘든, 신비로움을 동반하는 정서적인 깊은 울림이  아닐까?

벽돌로 쌓은 dome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대규모라는데, 그 과학과 기술의 비밀은 여전히 학자들이 다 풀지 못한 신비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정작 브루넬레스키는 완성을 못 보고 68세에 사망했다고 하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 

 

▲붉은 Dome에 올라가서 바라본 두오모의 종탑.
 
대성당 앞에 있는 세례당에서 본당 앞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은 Paradiso(낙원)라고 불리고 있다. 세례받고 천국 시민으로 성체 의식을 받으러 본당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상징하여 '파라다이스'라고 부른 거다. 

 

▲기베르티의 작품인 세례당의 '천국문'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dome으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좁은 계단은, 혹시 무리해서 올라가다 누군가 심장마비가 오면 구급대원이 오기 전에 사망할 구조라고 보인다. 미국이라면 그런 걸 대비할 수 없으면 아예 못 올라가게 할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건축물은 뾰족한 첨탑의 성당들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굳이 고대 로마 시대의 상징인 둥근 dome을 얹어 피렌체의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한다. 고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다시 불러냈다는 의미로,  후대가 그의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부르며 구분할지 브르넬레스키는 몰랐을 텐데…
 
점심 후에 400계단을 올라 82m 종탑을 향하는데, 두오모를 오르기보다 훨씬 힘들다. 동그랗게 오르던 두오모와 달리 직선으로 올라서 그런 것 같다. 다리가 좀 후들거리고 숨이 찼으나, 붉은 Dome(혹은 cupola)이 바로 눈높이로 보이는 전망을 펼쳐주니 모든 수고가 잊힌다. 
 
18유로 두오모 티켓에 포함된 부속 박물관까지 가봤다. 천재들의 손길이 설명되고 보존되고 있는 그곳에서 피렌체 대성당의 건축역사를 공부한다.  피렌체 곳곳에  흔하기도 한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여기도 잔뜩 있어서, 이미 배부른데도 계속 대접받는 진수성찬인듯한 호사를 누린다. 역사 속에 우뚝 서 있는 불멸 천재들의 흔적들이 가득한 박물관이다. 

 

▲미켈란젤로의 말년에 자신의 무덤을 위해 만들었는데, 맘에 안 든다고 부순 걸 복구한 작품. 뒤에 서 있는 성경 속의 인물 니고데모로 작가 자신을 표현했다고 한다. 피렌체의 동네 박물관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수준의 작품이 널려 있다.

 

어스름한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하교 시간, 언제나처럼 집 근처 골목 안의 작은 동네수퍼에 들른다. 생수나 아침거리를 사러 자주 오니 점원이 우릴 기억하고 반가워해 준다. 

 

Grazie Italia. (고마워요 이탈리아) 
오늘 두오모 앞에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르네상스 의상을 입고, 피렌체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조상들 덕에 수많은 유적과 예술품으로 거저 먹고(?) 들어간다고 은근히 깎아내렸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수많은 역사적 유물들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오고 있는지… 갑자기 아릿하게 느껴졌다.

르네상스 시절 미켈란젤로, 다빈치가 바라보던 그 도시의 풍경을 지금 우리가 거의 그대로 볼 수 있고, 심지어 그 시절의 고택을 숙소로 사용해 볼 수도 있게 해준 이탈리아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너무나도 고맙다. 이 모든 것이 인류 전체를 위한 공헌이라는 생각이 그동안 남의 나라에는 인색하던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르네상스 의상을 입고, 피렌체 깃발을 휘날리며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Day-9, Uffizi Once Again!    
  
예약하고 가도 여름엔 땡볕, 겨울엔 추위 속에 30분을 기다리는 건 기본인 우피치. 오늘은 개관 시간에 가니 줄도 안 서고 입장한다. 그동안 피렌체 곳곳에서 보고 다녀서 더 익숙해진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을 복습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보티첼리가 말년에 그린 '수태고지'에는 실패한 개혁으로 화형당한 사보나롤라(Savonarola) 수도사의 영향을 받은 그의 영적인 고뇌가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미학의 정점을 찍어버린 후, 더는 잘 그릴 수 없었던 후배 화가들이 고민해 가며 새로운 탐구와 시도를 통해 현대미술로 발전해간 과정을 잘 설명한 전시도 우피치의 탁월함이라고 생각된다.

 

르네상스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조화를 뒤틀며 그려낸 매너리즘이라는 기법을 지나, 빛을 이용한 명암의 대비와 강렬한 메시지의 카라바조가 바로크를 열게 되고, 본격적으로 빛을 가지고 놀았던 루벤스, 렘브란트로 이어지며 현대미술로 흘러온  르네상스 전후 미술사의 흐름에 눈이 조금 열리는 것 같다.

 

르네상스가 주인공이지만, 고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미술사 총정리를 족집게 과외처럼 정리해놓은 듯한 우피치는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대단한 미술관이라고 생각된다.

 

▲이리저리 치받으며 살다가 범죄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로 37세에 요절한 천재 카라바조의 작품, 젊은 박카스. 우피치의 인기작품 중 하나다. 

 
18유로 우피치 입장료에 포함된 피티 궁전은, 우피치에서 20분쯤 걸어가서 아르노강 건너편에 있다. 단테가 베아트리스를 만났다는 베키오 다리를 건넌다. 메디치의 아름다운 여인이 주거공간으로 사들여 지은 궁전이다. 사랑하는 남편 코지모 1세와 행복하게 살려고 이사 와서 어마어마하게 멋진 정원도 꾸몄는데, 자녀 11명을 낳고 40세에 죽고 말았다. 우린 모두 영원히 살듯한 착각 가운데 산다. 

▲피티 궁전에서.

 

토스카나의 언덕을 깎고 평평하게 골라서 꾸민 정원의 꼭대기에 오르니, 지난번에 와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사랑한 토스카나의 낯익은 풍경이 보인다. 은빛 올리브 나무, 하늘 향해 치솟은 사이프러스, 낮은 구릉들과 구릉 위에 앉아있는 집들. 이번 여행처럼 피렌체 구도시 안에 와서 넘쳐나는 문화를 열공하지 않아도, 저 풍경만으로도 그냥 차고 넘치던 지난번 여행의 감동이 다시 느껴진다. 

 

▲피티 궁전 정원에서 바라본 피렌체 주변 토스카나의 풍경.
 

피티 궁전에서는 여러 동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요즘 top designer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Fashion이 예술의 한 분야임을 깊숙이 느끼게 된다. 

 

▲나비를 motif로 한 디오르, 발렌티노의 옷.

18~19세기 신고전주의 작품들이 전시된 궁전의 갤러리에서는 체력 방전으로 인해서 앉을 자리만 찾다가 아쉬워하는 남편을 졸라서 조퇴한다. 폐관 시간도 안 되었건만 퇴장이라니, 이번 여행의 관행을 깬 것은 어제 1천 계단을 오르내린 후폭풍이다.  근처 카페로 가서 카푸치노, 티라미슈, 스포릴아텔라(Sfogliatella) 등 보드랍고 달달한 이탈리아 디저트를 먹어주니 정신이 난다. 

 

▲스포릴아텔라Sfogliatella. 슈크림이 들어간 크로상과 비슷하다.

 

황혼이 내리는 베키오 다리에서 보이는 아르노를 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경이로운 이 도시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하루를 접는다.

 

▲황혼이 내리는 아르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