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피렌체에서 만난 르네상스 1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김은성 작가

 

 

현재 미국 워싱턴 디시에 거주하는 김은성 작가는 포천좋은신문 창간 1주년을 맞아 새롭게 유럽여행기를 연재합니다. 김 작가가 연재할 유럽여행기의 첫 번째 도시는 이탈리아 피렌체. 김 작가는 피렌체가 어떻게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되었으며, 그 르네상스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년 전 겨울 피렌체를 찾았습니다. '피렌체에서 만나는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김은성 작가의 유럽여행기에 많은 응원 바랍니다. -편집자 주-

 

첫째날, 르네상스를 만나러 피렌체로 향하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여행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영어로 Tuscany) 지방에서 한 달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2016년 여름, 초등학교 친구들과 환갑여행 삼아서 피렌체(영어로 Florence) 근교에서 한 달 묵으며 토스카나 지방을 여기저기 둘러본 후,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충분히 공감해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던 듯 생각되는 한 달간의 사연은 너무 길어서 다른 기회에 나눌 수 있길 바라며, 이번 연재에서는 피렌체 중심부 구도시에서만 2주를 지내고온 2019년 겨울 여행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 번 여행은 8월에서 9월에 걸쳐서라 관광 성수기였다. 피렌체 구 시가지로 들어오면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정작 피렌체의 볼거리들은 줄서기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토스카나의 한적한 시골 마을들만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겉으로 수박 핥기만 한 피렌체를 깊이 보기 위해 관광객이 드믈 때 다시 가려던 계획을 결행한 여행이다.

 

춥고 눈내리는 계절에 딱히 피한이라고까지 하기엔 어정쩡한 동네로 여행을 계획한 후 괜스레 불안하고 심란하여 밤잠을 설쳤다. 관광객들이 바글대지 않고, 미술관 기다리는 줄도 짧고, 연례 할인 기간이라 쇼핑하기도 좋은 1월이 피렌체 가기 딱 좋은 날이라는 여행 정보에 힘입어 용기를 냈다. 다시 가보는 동네는 비행깃값 쌀 때 가는게 좋을 듯하여, 남편에게 가자고 설레발쳐놓고는, 엄동설한에 집을 나서다니, 괜한 짓 했나 싶어서, 떠나기 전 내내 불안했다.
 


▲떠나기 전날 우리 동네에는 폭설이 내렸다.
 
워싱턴 디시에서 출발,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는데 그곳도 엄청 칼바람이라 잠시 실외에서 작은 비행기 활주로에 오르는 사이에도, 춥고 쓸쓸한 여행길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겨울에 유럽은 처음이었다.
 
아, 그러나 화란 국적기 KLM이 토스카나 상공을 날자,  푸르른 사이프러스와 부드러운 구릉과 은빛 올리브 나무와 함께, 토스카나의 눈 부신 햇살이 창밖에 주악 펼쳐져 나를 와락 반겨준다. 잘 온 거야! 라고 말해주는 듯.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풍경.
 
낯익은 피렌체 공항에 오니 그리운 친구들과 다시 뭉친 듯 괜스레 뭉클, 울컥하다가 택시운전수가 이탈리아 말로 '본조르노, 그라찌'(영어로 굿모닝 땡큐)라고 말하니, 갑자기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아~,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었다니... 건강과 여건과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데에 감사!
 
공항에서 불과 4km 떨어진 피렌체의 명동 한복판에 박혀있는, 아니 솟아있는 5층 건물 숙소로 택시가 데려다 준다. 기사가 태워다주니, 렌트카로 다닐 때와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스스로 운전하고 다녀서 좋았다던 남편이, 운전 안 하고 태워다주니 너무 좋단다.
 
숙소는 명동 성당 뒤의 뒷골목 정도라고 보면 될듯한 위치, 피렌체의 랜드마크인 두오모 대성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14세기에 지은 5층 건물의 4층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좁은 돌계단을 올라오면, 중세가 21세기를 만난 인테리어의, 침실 둘, 욕실 둘인 아파트가 우리 집이다. 잘생긴 이탈리아 집주인 아저씨가 와서 트렁크를 낑낑 올려놔 주고, 어눌한 영어로 아파트 사용설명을 해주고 간다.

 

 ▲숙소로 올라가는 문 앞에서 쥔 아저씨와.
 
고려말 조선 초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묵게 된 설레임과 기쁨을 접어두고, 동네 탐사를 나간다.  우선 2주간 살림 차릴 장도 보고, 대충 우리 위치도 파악하면서 500년 된 골목을 헤매보고, 숙소가 있는 4층을 오르내리면서 발품을 세게 팔았다. 엘리베이터 없이 불편하게(?) 내 다리품에만 의지해서 살면, 동맥이 막히거나 혈당이 오를 염려없이 아무거나 막 먹어도 아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14세기 오리지널이라는 숙소의 현관문과 거실.
 
어스름해지는 저녁, 8시나 돼야 슬슬 저녁 먹는 이 동네인지라 아직 한산한 식당에서 이탈리아에서의 첫 번째 식사를 하고 7시쯤 귀가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숙소 옆집에서 사 온, 말로 다 못 하게 맛있는 젤라또를 음미하면서 14세기 고택에서 푹 늘어진다.  내일 뭐 하고 놀까....열공 하면서 첫날을 접는다.

 

이번 여행길엔 피렌체는 왜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되었으며, 그동안 너무 많이 들어왔지만 막상 뚜렷하게 이해되지 않는 그 르네상스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왔다. '르네상스=피렌체'로 상징되는 이유는, 시대적으로 오스만 터키에 동로마가 멸망하자, 그곳에서 많은 학자들이 경제적으로 유복한 도시국가 피렌체로 모여들었으며, 문화와 예술을 전력을 다하여 지원해준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떄문이라고 한다 .

 

둘째날, 우피치(Uffizi)에서 르네상스를 만나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어 눈뜨니 11시다. 오는 길에 하늘에서, 공항에서 하룻밤을 날렸으니 피곤하고 시차로 인해 몸이 혼돈상태이다. 단체관광이면 무조건 8~9시 집합이니 이렇게 아침을 늦잠으로 몽땅 말아먹지 않겠으나, 우린 여기서 느긋한 여행을 추구한다고 다시 맘먹으며 아깝다고 여기지 않기로 한다.
 
늦게 일어나서도 느긋하게 아침도 먹고, 피렌체를 대표하는 미술관 우피치에 오후2시에 도착하여 줄 서서 30분 후 입장하고, 1월에 피렌체에 와야 할 이유 중 하나를 확인했다. 보통 4불 정도 웃돈 주고 인터넷으로 예약한 후, 와서도 많이 기다려야 겨우 입장하는 그 유명한 우피치를 400미터 떨어진 숙소에서 느지막이 걸어 나와 30분만에 입장하다니! 


우피치는 영어로 office(사무실)인데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의 부호이던 메디치 가문이 집무실로 쓰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이름이 우피치다. 역사상 첫 미술사학자라고 인정되는 바사리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바사리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르네상스의 주인공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과장과 양념을 섞어 방대한 저서로 남겨놓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다. 예술가로서는 기라성 급에 못 미치지만, 미술사학자로 자리매김을 확실하게 찍은 사람이다.


우피치는 르네상스 미술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내 여행의 첫 번 방문지는 당연히 우피치여야 한다는 생각에, 늦은 하루의 시작이지만 문닫는 시간까지 4시간을 열공했는데, 미처 못 본 게 많아서 다시 가야할 것 같다.

 


▲로마시대 만들어진 시저의 흉상. 우피치에서 2천 년 전 역사적 인물들이 어떤 모습인지 만나며, 우린 20세기 인물인 명성황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책에서나 보던 유명한 르네상스 작품들이 가득한 우피치를 둘러보다가, 나의 르네상스 산책이 결국 마주치게 될 결론은,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에 있다는 진한 감동이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세 사람으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예술이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한 그림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은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시각예술(visual art, 미술)이라는 나의 지론은, 보티첼리의 명화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우피치 최고의 인기작품을 폐관 시간 가까이에 독대하는 영광을 누렸다.

 

르네상스는 유럽이 중세 암흑기 동안 잊고 있던 고대 유럽의 찬란했던 문화, 그리스 로마의 문화에 대한 재발견이며 재조명이고, 재탐구라고 볼 수 있다. 중세를 지나며 그동안 잊고 있던  그리스 신화를 다시 불러와, '비너스의 탄생'을 새로운 미학으로 그린 작품으로 마치 르네상스가 탄생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중세 그림에는 원근법이  없었고, 대부분의 회화는 종교적인 스토리로 그려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림의 주제와 기법은 파격 그 이상이다. 새로운 시대가 탄생한다는 팡파르나 폭죽 같다는 느낌이다.


그의 다양한 그림에 그려진 여주인공들은, 자세히 보면 같은 얼굴이다. 그가 평생 짝사랑했다는 여인, 22세에 요절한 그 시대에 유명했던 아름다운 유부녀, 시모네타 베스푸치라고 한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니고 신대륙이라고 말한 아메리고 베스푸치 가문의 며느리로, 제노바에서 피렌체로 시집온 여인이다. 

 

신문도 인터넷도 없는 옛날에도, 남의 집 유부녀가 미녀라는 사실을 온 동네가 다 알고 있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발이 없어도 천 리를 간다는 소문의 위력이다. 얘깃거리에 목마른 인간들의 본성을 타고 광케이블처럼 빠르게 멀리 퍼져간다.

 

지금 기준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 보티첼리의 손끝에서 그려져, 인문학적인 새로운 탐구를 시각화했다고 느껴졌다. 중세 동안 종교 이외의 인문학적 사고들을 봉인해 두었다가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가 열어젖혀 버린 사건(?)이 이 작품 하나로 설명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서울에도 입점해 있는 프랑스 현지인들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Sandro가 보티첼리의 first name인 것도 알게 되었다.
 


▲우피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4시간도 부족한 우피치 열공은 폐관 시간이 되어, 어두워진 거리로 밀려 나와야 했다. 우리 숙소의 쥔장이 경영한다는 베키오 다리 옆 식당으로 가니, 저녁 식사 시간으로 문을 여는 7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키안티 와인과 계절 메뉴라고 하는 멧돼지 요리(옛날 토스카나 사람들 먹던 스타일로 만든), 봉골레 파스타, 아티초크 튀김, 샐러드 등으로 포식했다. 디저트는 어제처럼 우리 숙소 앞 가게에서 어제보다 더 큰 젤라또를 사가지고 와서 포근한 집에서 먹었다.
 
반나절만 공부(?)하고 하루를 접으며, 평생 들어왔지만 아련했던 르네상스가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