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가 다가온다. 이번 한가위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게 욕심을 버리게 해달라고 빌고 싶다. 현재에 만족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하고 희생하는 마음이 생기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옛말이 있다. 지나친 욕심은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갖가지 일을 겪다 보면, 이처럼 딱 들어맞는 말도 없다. 평소에는 아무런 의미 없이 듣다가, 막상 일을 당하게 되면 뒤늦게 뼈저린 후회를 한다. 그러나 이미 떠나간 버스요, 바닥에 쏟아진 물이다. 더욱 큰 문제는 꼬여진 일을 결코 처음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어려운 것은 그 욕심을 자제할 줄 아는 힘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태도가 필요한데, 그걸 판단하는 게 정말 힘들다. 이와 관련된 사자성어로는 과욕초화(過慾招禍), 소탐대실(小貪大失), 과유불급(過猶不及), 과욕필망(過慾必亡) 등이 있다. 과욕초화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뜻이고, 소탐대실은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다는 의미다. 과유불급은 정도가 지나침은
큰일이네. 둑이 무너지려 하는데, 얼른 물살을 막아야 하는데. 그때 아랫집 일태 엄마가 달려온다. 그리고 삽으로 산에서 끌고 온 소나무, 참나무 나뭇가지 몇 개를 논둑에 가로 세로로 힘차게 꽂는다. 거세게 흘러 논둑을 치던 물살의 방향을 간신히 바꾸어 놓는다. 위기는 넘기었다. 놀라운 기억의 시작 민호 동네는 동남 방향으로는 하늘이 트여 있으나 다른 방향은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촌이다. 동에서 남으로는 낮은 산이 구릉처럼 펼쳐져 있어, 그나마 훤한 하늘이 보인다. 며칠 전 태풍 예보가 있었다. 오늘 아침, 하늘에 짙은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점심 무렵에는 초저녁 땅거미가 내린 것처럼 컴컴해지며 느닷없이 맹꽁이가 울고, ‘후두둑 후두둑’ 장대비가 내린다. 함께 놀던 민호와 일태는 어쩔 줄을 몰라 사랑방으로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나란히 방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방 문턱을 움켜쥔 채 폭우가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니 잔뜩 겁이 난다. 검둥이도 외양간 옆에 있는 짚 더미로 뛰어들어 몸을 잔뜩 웅크린다. 이윽고 마을을 집어삼킬 듯 물 폭탄이 쏟아진다. 앞마당 가의 작은 도랑이 순식간에 불어나 개울물과 합치는 곳에서 채 물이 빠지지 못한다. 거의
이재명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 9월 15일 열렸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한동훈 무소속 의원에 의해 과거 ‘신약 관련 로비 의혹’과 연루된 녹취록 및 검찰 기소 계획 문건이 공개되었다. 물론 이 사건은 검찰에 의해 기소 유예 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앙 정계가 여야의 정치 공방으로 활활 타올랐다. 이에 대해 여당 쪽에서는 검찰이 과거에 수사해 두고 쟁여놓았던 사건 파일을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검찰 캐비닛 정치’의 전형이자 불법 정보 유출이라고 맞서고 있다. 소위 말해서 '캐비닛이 열렸다'고 표현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캐비닛(Cabinet)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찾아보았다. '캐비닛'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학교 교무실 한편에 나열되어 있는 철제 서류 보관함이다. 칸막이를 모두 치우면 성인 두 명이 숨어 있을 수 있는 크기의 서류 보관용 가구인데, 보통 자주 사용하는 서류는 책상 위에 두고 사용한다. 하지만 보관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서류들은 캐비닛에 넣어 두고 보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캐비닛'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읍면동장 책상 위에는 결재 서류보다 주민의 삶이 먼저 보여야 한다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천시는 1,000여 명이 넘는 공무원이 일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7국 3담당관 34과 및 2직속기관(보건소, 농업기술센터) 7과와 14개 읍면동 복지센터를 두고 있다. 4급 서기관이 9명, 5급 사무관이 58명이 시정의 중요 관리 책임자 또는 읍면동장으로 시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흔히들 지방공무원에게 5급 사무관(과장 또는 읍면동장)은 '공무원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옛 시절보다는 덜하기는 해도 지방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리지만, 그만큼 오르기 치열한 자리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인이 되어서도 사무관 이상의 공직자이었다면 제사 지방에 사무관 등 최종 직함으로 표기하는 예우받는 명예스러운 직급이다. 이는 권한이 커지는 만큼 책임지는 자리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해냈다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5급 사무관인 시청 과장은 △6급 때는 팀과 자신의 업무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조직 전체의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시장 등 상급자의 지시를 단순히 전달하는 중간관리자가 아니라 현장의 문
정순이네 집에 도착하니 검둥이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정순이 아버지가 활쏘기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갓난쟁이 송아지가 반가운지 ‘음메’ 하며 울어댄다. 미순이가 부엌에서 버섯을 덜어서 갖고 나와 민호에게 슬며시 건네준다. 월요일 아침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아이들은 오리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에 등교해야 한다. 민호 동네에는 우산 있는 집이 거의 없다. 비가 오면, 아이들은 비닐 비료 포대 윗부분을 잘라 마치 고깔처럼 만들어 머리에 쓰고, 몸은 대충 반 정도 가리고 학교에 간다. 책보는 비닐로 둘둘 말아서 남자아이는 어깨에, 여자아이는 허리에, 둘러매거나 차고 충주 비료 비닐을 쓴 채 줄지어 포대처럼 뒤뚱뒤뚱 학교에 간다. 동네 강아지들은 비를 맞으며 우스운 모습으로 학교 가는 아이들이 뭐가 그리 이상한지 꼬리를 흔들며 뒤를 따른다. 학교 가는 소로를 따라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다. 개울 흐르는 방향과 학교 가는 방향은 같다. 하류로 가면 갈수록 개울 물이 엄청나게 불어난다. 개울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다른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만나 큰 하천을 만들며 한탄강 지류가 된다. 그 하천을 건너야만 학교에 갈 수 있다. 아이들 마음이 점점
광복절 연휴 동안 경남 거제에 약 90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그 인근 지역인 사천 약 300mm, 통영 약 600mm 등의 폭우가 내렸다. 200년만에 한 번 내리는 폭우라는데 비가 그치고 몇시간 동안 거제는 거의 모든 도로가 침수되어 차도 사람도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불행인지 운이 좋은 건지 몰라도 기자는 그 폭우가 내리던 남해안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광복절 연휴 동안 기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쓰고보니 간단한 한 문장이지만 2박 3일 간 1,000km를 넘게 운전하였고 엄청나게 많은 비를 맞았다. 사전에 어머니와 의논하기를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하동군 진교면까지 갈때는 부산집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갔다가, 올때는 바로 옆인 남해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사천, 고성, 통영, 거제를 거쳐 거가대교로 사하구 부산집으로 돌아오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일주하는 여정으로 계획했었다. 광복절 당일 저녁 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되는 행사 취재를 한 후 어머니 댁으로 출발했다. 가면서 고속도로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부산집에 도착했을 때는 쏟아지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영택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제법
불법이 아니라며 현 문화원장 자리를 고수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 박찬억 포천문화원장, 도덕성 없는 문화원장이 있는 한 문화대 수업을 받지 않겠다는 문화대 제4기 재학생들. 서로를 향해 마주 보고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아슬아슬하다. 포천문화원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번에는 문화대 4기생들이 2학기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문화대 4기생들은 최근 취임한 박찬억 문화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규정하고, 문화원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대학장으로 있는 문화대의 수업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19일 시작 예정이었던 문화대 2학기 첫 수업은 진행할 수 없었다. 신건배 문화대 제4기 회장은 지난 12일 '문화대 제4기 재학생 등교 거부' 성명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문화대 4기 총재학생 40명 중 36명이 참여해 의사 표시를 한 결과였다. 제4기 재학생 중 등교 거부는 찬성 34명, 서명 거부 2명이었다. 결석은 4명이었다. 신 회장은 이와 같은 회원의 총의를 바탕으로 "8월 19일 수업부터 별도의 통보가 있을 때까지 등교하지 말 것"을 문화대 4기 재학생 전체에 통보했다. 24일에는 문화대 임원과 여성인권위원회 등 시민 대표 몇 사람이
시민, 시장을 위한 공직자라면 자기 진영의 이익을 놓고 상대 진영에 대해 험담, 비방하는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 조직 내 갈등의 피해자는 시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는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렵고, 가족·지역·사회 등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협력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면서 결정권, 공동체 자원 분배, 이해관계 조정, 개인과 공동의 이익 조화 등을 고민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활동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성과 정치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직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계로 정치적 행동 과정이 발생하며 협력과 경쟁, 연대와 갈등, 타협과 설득도 함께 나타난다. 인간의 정치적 행위가 본질과 본능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경쟁인가, 개인과 진영의 이익을 위한 권력 투쟁인가이다. 조직 내부의 건강한 정치는 정책과 성과
늦여름에서 초가을이면, 방아깨비 시집보내기 놀이를 했다. 방아깨비 잡고 몸통을 위아래로 흔들어 제일 오래 계속하는 방아깨비를 골라서 시집보내는 놀이다.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아침 방아 찧어라, 저녁 방아 찧어라, 콩콩 찧어라” 노래했다. 어린 시절 행한 일들 가운데, 평생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괴롭히거나 자책하게 하는 등, 아무튼 후회막급(後悔莫及)으로 여겨지는 일이 있다. 사람은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며 ‘수없는 작은(?) 허물’, ‘모르고 저질렀다고 해도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매우 큰(?) 허물’, ‘용렬하고 비겁한 행동’ 등으로 인한 자책감, ‘잘못된 인간관계’로 인한 후회, 그로 인한 감정 등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어릴 적, 별 의식 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 어찌 보면 운명처럼 다가온, 생각 없이 맺은 나쁜 인연 등은 가만 생각하여 보면, 꽤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데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미욱해서 행한 작은(?) 허물 동네에 신명 나는 가위 소리와 함께 “고물 삽니다. 탄피, 신주, 구리 비싸게 삽니다”, “머리카락도 삽니다”를 외치며 리어카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반려인과 운전자들의 양식있는 행동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운 산책길이 되길 얼마 전 알고 지내는 한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들에게 예의 바르고 승부 근성을 가진 친구라는 말을 듣는 인생 후배이다. 포천에 사는 후배는 몇 번인가 말하려다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나 해서 접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니다 싶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소연하며 일부 사람들의 후안무치한 행위를 알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후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포천천 자연 산책길을 걷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일부 사람들이 '기본과 상식'이 없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면서 타인들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포천천 변의 산책길은 시민들이 걷기, 달리기, 자전거 운동 등을 마음 놓고 즐기는 곳으로 반려견과 함께 걷거나 운동하는 반려인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제방 왕벚꽃 산책길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산책길을 이용하는 반려견에 대한 일부 반려인의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이 청량하게 운동하는 이들의 마음을 불쾌, 혐오, 두려움으로 평온한 시간을 망치게 한다. 기본적으로 공공장소인 산책길에서는 목줄 착용, 배변 수거 등은 필수이다. 어느 한 반려인은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리센느’라는 걸그룹이 방송가 및 인터넷에 대세로 들썩이고 있다. TV프로그램, 음악, 광고, 숏폼 콘텐츠 등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에는 2주 연속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한 회는 다른 연예인 없이 ‘리센느’ 단독으로 게스트로 초대되기도 했다. 2024년에 데뷔한 초소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햇수로 3년이 지난 2026년 역주행과 음악방송 1위를 하게 되는 계기가 무엇이었나? 그것은 리더 원이의 개인 방송 중 행해진 하나의 행동이 밈(meme)이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밈(meme)’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더니, 뜻밖에도 아주 유명한 책에서 나타나는 개념이었다. 찰스 도킨스라는 학자가 1974년 쓴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나타난다. 이 책은 문화유전학을 위한 교과서인데, 그 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도킨스는 유전학적 진화 외에도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Meme)'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했다. 밈(meme)은 유전자가 DNA를 통해 복제되듯, 사람의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 종교, 유행
포천문화대 총동문회의 사퇴 요구, 시민 1만 명 퇴진 서명 운동 시작, 전국 문화원으로부터 부적절하다는 의견 확산, 원로 포천문화원장들의 용퇴 권유 등... 박 당선인의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포천문화원장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7월 9일 포천문화원장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1표 차이로 당선된 박찬억 당선자는 오는 8월 18일 취임식을 한다. 포천문화원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전임과 신임 문화원장의 이취임식은 같은 날 내외 귀빈을 문화원에 초청해 많은 시민의 축복 속에 함께 치르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말 포천문화대 총동문회는 박 당선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여성 시민단체도 박 당선인의 사퇴 촉구에 합세했다. 박 당선인의 22년 전 과거사가 한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포천문화원장에 당선된 그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신문에는 박 당선인이 공무원 재적시 기혼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그의 가정과 삶을 망가뜨렸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피해를 보았다는 여성은 7월 29일 포천문화원 앞 시위 현장에 나와 박찬억 당선인이 비도덕적이었다며 과거사 내용을 낱낱이 밝혔다. 그는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필수적인 포천문화원장으로서는 아무리 과거의 일이지만
반 아이들의 결석 지루하게 계속되던 여름 장마가 잦아들었다. 먹장구름 틈새로 파란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다가 황혼빛에 이어 어둠이 깔린다. 도립병원 구급차가 학교 앞 김 주사 집 마당에 정차했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사내 둘이 들것을 들고 옹기종기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대문 안으로 황급히 사라진다. 잠시 후 어린아이가 들것에 실려 차로 옮겨졌다. 저녁 식사 후 학교에 당직하러 가던 김 선생님이 가까이 가보니 반 아이 영철이다. 들여다볼 틈도 없이 쌩 구급차가 사라진다. 올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이곳 산골학교에 오게 된 스무 살, 김 선생은 자취방에 누워 병원에 실려 가던 영철이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고, 걱정이 된다. 다음 날 비가 완전히 그쳤다. ‘파란 하늘, 습기 없는 상쾌한 공기, 진록의 산과 들’ – 싱그러운 아침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명랑하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방학식이다. 시끌벅적 들떠 있는 아이들 모습과는 달리 출석부를 펼치는 김 선생의 얼굴은 마냥 어둡기만 하다. 오늘은 결석한 아이가 모두 셋이나 된다. 어제 구급차에 실려 간 ‘영철이’, 능안골의 ‘민호, 명수’. 무슨 일일까? 영철이는 지금 병원에 있고,
들어가는 말 민호 엄마, 일태 엄마, 영준 엄마는 아래, 윗집에 살고 있어 자주 어울린다. 명절에는 물론이고 모내기, 타작 등 행사가 있을 때, 특히 막걸리를 좋아하는 영준이 엄마는 기세 좋게 민호네 집에 들어와 마루에 턱 앉으며 큰 소리로 외친다. 민호 엄마, 막걸리 한 사발 주소! 마치 맡겨 놓은 막걸리를 찾는 듯이 당당하다. 민호 엄마가 노란 막걸리 주전자와 간단한 안주를 쟁반에 차려 부엌에서 나올 때쯤이면, 아래 집 일태 엄마가 배시시 웃으며 또 대문에 들어선다. 막걸리 두어 잔에 아낙들의 취기가 오를 즈음, 술을 잘 못 마시는 민호 엄마도 막걸리 사발에 살짝 입을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용히 두 여인의 넋두리를 듣는다. 어린 민호는 앞으로 전개될 술주정에 가까운 레퍼토리를 이미 짐작하고 있다.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세상에 대한 원망, 신세타령, 자식 사랑이 그 줄거리다. “엄마! 일태와 영준이 부를게! 취하시면 모시고 가야 하잖아.” 민호 말에 끄덕이는 엄마, 별수 없다는 얼굴이다. 이야기 1 : 궁사(弓師)의 아내, 일태 엄마 민호가 사는 동네에서 윷놀이 및 활쏘기 대회가 정월 대보름 다음날 열렸다. 윷놀이대회(소위
일태야, 우리 아버지가 오늘 장에 가서 라디오를 사 온다고 하셨다. 민호의 자랑이다. 사실 민호는 외갓집에서 몇 번 라디오를 보긴 했는데, 집에 라디오가 생긴다니 기쁘고 궁금하기가 짝이 없다. 밀껌 만들기 5월 초 밀밭은 누런 기운이 약간 돌지만, 아직 파랗다. 민호는 친구 일태와 ‘밀껌’ 만들어 씹기에 정신이 없다. 밀대에서 밀 이삭을 쏙 뽑아 이삭만 잘라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눌러 비비면 껍질과 푸른 알갱이가 분리된다. 껍질을 입김으로 훅 불어 날리면 알갱이만 남는데, 이것이 소위 밀껌 원재료다. 꼭꼭 씹으면 전분이 있어서 지금의 껌과 맛이 비슷한 ‘유사 껌’이 만들어진다. 과정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은 알갱이를 계속 씹어 풋밀 알갱이 단맛이 사라지고, 약간 끈기가 있는 눅진눅진한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반죽을 혀와 이로 잘 모아서 계속 씹으면 끈기가 덜해 풍선을 불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껌 맛과 비슷한 껌이 만들어진다. 밀에 함유된 글루텐 성분을 이용해 ‘천연 껌’을 만들어 씹는 것이 ‘밀껌’ 만드는 원리다. 민호 동네의 오뉴월은 주전부리가 아주 귀하다. 어른들은 싫어하지만, 동네 밀밭은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제공하는 고마운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