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위기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사회적 갈등의 해법으로 여론조사나 다수결로 결정하려는 정치적 시도가 있는데, 그 결과 기본권인 자유의 가치가 축소되고 민주주의의 시련과 붕괴의 위기가 걱정된다.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정치 체제는 ‘훌륭한 국민의 선택, 선거, 투표’에서 지켜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독재 가능성을 경고하는 석학과 그 주장에 공감하며 우려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수결주의, 자유와 평등, 법치주의,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 상황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당, 정치인, 시민단체는 독재 정치와 민주주의 붕괴를 주장하며 국민의 자유와 평등 등 기본권, 국가의 독립과 안보, 국민의 생존을 정치 의제로 삼아 상대를 적대시 하며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나아가 붕괴를 경고하는 석학의 주장을 살펴보고, 원인을 진단하고자 한다.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 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정치·경제·사회 등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복합적인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에 우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 징후는 무엇이고, 상황은 어떠한지 등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모든 민주주의는 유사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 석학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다. 그들은 〈뉴욕 타임스〉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모든 민주주의는 유사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붕괴한다”라는 주장은 열화같은 독자들의 청에 의해서《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으로 거듭났다.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가 보내는 '경고신호'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그 경고신호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미래의 독재나 전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독재자(?)를 여러 신호로 감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권력자가 되기 전에 독재 조짐, 예를 들면 폭력에 가담하는 등의 특성을 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재자가 이런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민주주의 규범을 성실히 따르다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 시그널을 개발해서 소개한다.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는가?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 드는가?”이다. 이와 같은 시그널로 잠재적 독재자를 사전에 검증하고 걸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서 최고 권력자에 대한 견제 및 감시 기능이나 법 등을 ‘공공의 이익 등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또는 편중된 인사 등 방법으로 자신 편으로 끌어들인 다음, 무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에서 중립적 중재자 역할, 견제·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규제기관 등을 장악하여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수사와 고발 등을 차단함으로써 잠재적 독재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고 한다. 다수결로써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법을 개정하거나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정치인과 정당은 서로를 ‘독재 정권’ 또는 ‘국민의 적’이라고 부르며 적대시함으로써 극단의 대립과 혼란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부 등의 힘을 앞세워 독재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언론 장악, 인기에 영합하는 선전선동가 포퓰리스트 등장 등을 경고 신호의 예로 든다.

 

한편, 다수결주의의 횡포와 폭력성, 대립하고 갈등하는 가치인 자유와 평등 가운데 자유라는 기본권 위축을 경고하는 학자가 있었다. 근대 프랑스 정치 절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민주 정치의 문제는 다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수에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수의 이름으로 법률을 만들고 감독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다수의 전능은 전제정치(專制政治)도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전제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보다는 평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개인을 약하게 국가를 극단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간다. 평등의 원리가 인간이 과거와 같은 예속 상태로 나아가게 할지, 평등이 공급하는 새로운 이익(독립, 지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얻는 쪽으로 나아가게 할지는 전적으로 국민의 노력에 달렸다”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정치와 정부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에 비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이자 한계점이 곧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시련의 주요 요인으로 등장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뇌는 ‘다수결주의’, 서로 갈등하며 대립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이자 정치사상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국민투표로 다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수에 의한 지배로서 실현되는 그 핵심 원리가 자유롭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고, 폭압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몰락을 보면서, 그 원인으로 '중우정치'를 꼽고, 다수결의 원리 등 민주주의 병폐가 정치 형태로 나타난 것을 중우정치라고 말하였다. 그에 따르면 중우정치의 병폐는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개인이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현상, 다중의 정치로 변질될 가능성 등이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가장 합리적인 정치 형태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민주주의의 잘못된 병폐 -‘중우정치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 나아가 붕괴의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도 민주주의를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붕괴를 경험한 여러 나라도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 나라 못지않은 훌륭한 헌법, 법률 등 규범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고, 그 가운데서도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규범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 문제없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이자 정치사상으로서 무엇보다 선거와 국민투표 등으로 다수 의사가 반영되고, 실현됨으로써 그 원리가 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투표를 잘하고 잘 뽑아야 한다. 선거를 통한 공직자 선임은 결격 사유가 적은 후보가 아닌 최선의 후보를 뽑아야 한다. ‘결격 사유’에 온통 신경을 쓰고 집중하다 보면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의 인물을 뽑을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는 경쟁 정당과 정치인을 민주주의의 파트너가 아닌 적군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절차와 과정인 공론화, 합의와 협의·협상, 공정한 다수결, 소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미덕과 가치는 꽤 오래전부터 사라졌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당과 의회는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 현상, 팬덤 정치의 만연으로 정치인 개개인의 건강한 의사는 무시된 채, 명령과 복종이 강요되고 있다. 극단적 정치 팬덤들은 특정 후보, 특정 정치인, 특정 권력자를 맹신적으로 지지하며 다른 이에게도 복종을 강요하는 폭압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치적 태도가 우리 정치 전선을 ‘열광’과 ‘냉소’의 극한 대립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그 전선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는 우리 정치와 사회를 반목과 극한 분열로 만들어 갈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격화되는 반목과 분열은 결국 극한적 사회 혼란을 야기, 민주주의가 붕괴하기 직전의 위험한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양극화와 극단적 팬덤 정치는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패권주의를 낳고,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생략한 채, ‘도 아니면 모’라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적 행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앞에서 필자는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민주주의 핵심 원리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다수결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경향이 있다. 전가의 보도(傳家之寶)는 본래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보배로운 칼’을 뜻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뛰어난 해결책이나 방법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이다.

 

주요 갈등이나 이슈가 있는 현안, 정책 등이 있을 때, 그 해법으로 여론조사 또는 다수결로 결정하여 엇비슷한 상대 세력, 상대 여론을 누르려는 정치적 시도가 거의 습관적으로, 거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그 결과 소수의 의견, 소수의 자유는 다수라는 이름으로 무시된 채 다수의 힘, 평등의 힘이 전체를 지배하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주의적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기본권인 자유라는 가치마저 축소하려는 위험한 발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주의의 시련과 위기, 나아가 붕괴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정치사상이자 체제는 ‘훌륭한 국민의 선택, 선거, 투표’에서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