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김은경 수필 '새끼'

시인·수필가, 포천문인협회 회원

 

모든 생명은 신비하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내 가족은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집 반려묘 유지가 새끼를 낳는 날이 돌아왔다. 병원에서 낳는 날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 걱정되어, 어제 딸에게 다시 병원 가야 하나 이야기를 했는데 드디어 소식이 왔다. 야옹야옹 울면서 아파 끙끙거린다. 말 못 하는 너의 표정 속에 큰 눈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인다.

 

이런 날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네가 좋아하는 등만 두드려 주면서 '잘한다'고 '잘한다'고 하면 될까. 고양이 새끼 낳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기에 어색하고 겁난다. 그 오랜 진통 후 드디어 조그마한 새끼 한 마리가 뚝 떨어진다. 초산이고 온몸 반을 피가 차지하니 덜컥 겁이 났다. 세상의 오는 모든 새끼는 위대하고 그 과정은 신비하다. 어미의 산고와 함께 새끼의 어마어마한 세상과의 만남에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은 생명의 탄생에 무한한 축복과 위로를 동시에 보낸다.

 

벌써 몇십 년이 흘렀다. 젊은 날 첫딸을 낳고 난 뒤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나처럼 힘들게 살아가게 될까 봐 미안하고 절망스러워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런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찬가지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가. 삶은 전쟁으로까지 비유되지 않은가. 살아가기가 힘들어 스스로 생을 버리는 사람도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사람이나 짐승도 다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벌어서 살아내기에는 힘든 세상이다. 아니 안쓰러움이 더해진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사는 게 힘들기만 하다면 영악해진 젊은이들이 선뜻 아이를 낳을까 봐 고개가 저어진다.

 

연약하고 무료한 한 생명체가 녹록지 않은 세상에 나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자라나가자면 그에 따르는 수많은 노고가 온전히 부모 몫이므로 자기 세계를 우선시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육아의 복잡함은 임신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기도 하겠다. 그래서인지 요즘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가 많다. 부모지만 내 자식이어도 강요할 수도 없다. 임신에서 출산, 출산에서 양육과 보육, 교육 지원, 결혼시키기까지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은 너무나 크다. 경쟁사회까지 다른 집 아이들보다 더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집안들이 하는 교육은 다 따라서 시켜야 하니 더욱 힘들다.

 

새끼라는 생명의 존재가 탄생하는 곳은 어미의 배 속이다. 어두운 배 속에서 태어나는 새끼는 온몸에 털이 생기고 눈, 코, 입 등이 차례대로 나와 어미를 닮은 모습과 고양이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나는 방금 세상에 나온 유지의 새끼가 잘 자라 한 생명체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미의 사랑을 받으며 온 세상을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했다. 한 새끼의 탄생과 함께 멋진 세상에 나온 것을 축복하며 기원했다.

 

작은 신음을 내며 애처롭게 쳐다보는 새끼의 얼굴이 어느 순간 어미 고양이의 형상이 닮아 있었다. "유지야, 새끼 낳느라 고생했다."

 

유지는 한 마리를 먼저 낳고 연속적으로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를 낳고 기력을 다 소비하다 보니 맨 마지막 여섯 마리째에는 움직일 힘도, 핥아주는 힘이 없는지 막을 제거하지 못하여 죽게 되었다. 생명이란 무엇이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해온지라, 마지막으로 나온 새끼가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 유지야, 초산치고 너무 수고했다. 어미가 됨을 축하하고 새끼 잘 키우기를 바란다. 산실은 조용하고 아늑하게 만들어놨으니 걱정하지 말고 내일 다시 점검할게. 겁이 나고 네게 신경가지 않도록 네가 화장실 갈 때, 청소할게."

 

"유지야, 새끼는 집에서 다 키우지는 못해 입양 보내지만, 그동안 건강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자. 내일부터 몸보신 먹이 만들어 줄게. 더운 여름에 고생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며 더욱 잘 지내자."

 

집에 새 식구를 만들어 주고, 웃음꽃 피는 하루가 지나간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많이 낳아서 결국 한 마리만 죽고 다섯 마리는 잘 살아남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한 마리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전부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미 고양이는 새끼 죽음에 대해 어미는 어떤 심정일까 궁금했다.

 

토킨스에 '이기적 유전자'가 생각이 났다. 그의 주장대로 저들에게 먹이를 풍부하게 해주면 어미가 새끼들을 다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동물들은 먹이가 부족하고 적이 많으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새끼를 적게 낳거나 낳게 되더라도 죽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형제들 간에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적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형제를 죽이기도 하는 이론이었다. 결국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반론이 거센 하나의 주장일 뿐인데도 묘한 설득력이 있다. 다섯 마리 전부 살아서 내가 고양이 새끼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꼈으면 좋겠다. 어둠이 어두운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유지네 가족들! 잘 자라."

 

 

김은경

포천문인협회 회원

마홀문학회 회원

글로벌 21문학인협회

 

2019 계간 운율마실 신인상

2016 여성기·예전 시부분 최우수상

2022 제20대 새로운 대한민국

디카시 공모전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