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녹정 서영석의 시 '풀무' 외 2편

(사)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 회장

 

 

풀무

 

 

1.

갈탄 위에 불쏘시개를 놓았다

 

생명을 잉태하고 뜸을 들이던

어둠속의 터널을 빠져나와

숨을 얻으면서

세상의 타임라인을 따라 펼쳐진

공기와 시간 속을 유영한다

 

2.

갈탄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하얀 캔버스를 사각의 틀에 얹고

네 모서리를 정렬하여

아직 때 묻지 않은 시간의

순결한 뼈다귀들로 만들어진

이젤위에 올려 놓는다

 

3.

서서히 달아오른다

 

생명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아무것도 기약하지 않는

텅 빈 캔버스의

밑그림일 뿐인 것을

 

4.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른다

 

너를 향하여, 네가 소유한 시간의

나이테를 향하여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영혼이 핏빛으로

물들고 스러져간 잿더미 위로

유영하는 시간 여행자

 

5.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잿더미마저 바람에 날려버리고…

 

 

 

도시의 25시

 

 

문을 나서면

검은 도시 계곡과

황량한 아스팔트 벌판 위로

거리를 스캔하듯 펄럭이는

현수막 갈기가 파도처럼 밀려와서

졸고 있는 가로등을 두드려 깨우고

 

별 빛도 비켜가는 좁은 골목 안에서

들고양이와 유기견의 앙칼진 비명이

하수구를 돌아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기울어 가는 여인숙의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노상방뇨중인

거렁뱅이의 발가락을 물어 젖히니

 

피 흘리는 도시는 썩어 문드러져

새벽의 대지 아래 묻히고

팔랑거리는 나팔꽃의 눈물이

아스팔트를 적시는 도시의 아침은

알콜에 젖은 걸음으로 주절거리며

블랙홀 같은 세계로 빠져드는

승냥이들로 가득하다

 

 

 

삶은 김치찌개다

 

 

파, 마늘

고춧가루, 두부, 김치

갖은 양념과 재료가 잠든

호수 둑 아래에서 띠겁게 띠겁게

입술을 들이 미는 푸른 춤사위에

뚝배기 안을 도리질 치며

유랑하는 덜 익은 호박이 머리를

풀어 젖힌다

 

서로 엉기며 제살을 풀어

너에게로 나에게로

스미고 하나 되어 내 맛과 네 맛이

무지갯빛으로 세상에 다리를 놓고

욕정으로 물든 거룻배 하나를

늪에 띄워서 거미줄처럼 갈갈이

찢어진 탐닉의 계단으로 오른다

 

때로는 시커먼 숯덩이가 되고

가끔은 술에 물탄 듯 의미 없는

눈빛으로 희희낙락하는 초침처럼

세상을 유유자적 오르고 내리고

돌고 도는 쳇바퀴 속에서

갖은 이야기와 향기가 어우러져

진한 삶의 육수를 몸 밖으로 밀어내니

 

너는 내가 나는 네가 꿈꾸는 곳으로

서로의 갈 길을 따라서

감칠맛 나는 호수를 여행하다가

마주하는 작은 찻잔속의 새 두 마리

 

 

 

 

서영석(徐榮錫)

- 시인

- 아호 : 녹정(鹿井)

- 세례명 : 요셉

 

- (사)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 회장

포천문화원 이사

동농이해조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한국문예협회 부매니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문학광장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포천문화예술인협회 회원

마홀문학 회원

시와창작 동인, 청로 동인, 문학공원 동인

 

- 2011 문학광장 시부문 신인문학상,

경기도문학상 공로상,

경기도의회의장상 문학공로상,

2018 프랑스 칸느시화전 칸느문학상

 

- 2016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시화부문 초대작가

 

- 시집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

『물이 되고 공기가 되고 별이 되리』

『시간의 향기』

『낙원의 입구』 외 다수의 동인지 및 잡지에 작품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