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김순희 에세이 '병아리 손자의 어느 봄날'

2022년 가을호 계간 '한국작가 73' 시부문 등단, 포천문인협회 회원

 

 

포천좋은신문의 '포천 문학산책'은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포천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 란에 자신이 쓴 시와 산문, 수필 등을 자유룝게 발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포천 문학 산책'에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큰 호응을 부탁합니다. 이번 주는 김순희 시인의 에세이 '병아리 손자의 어느 봄날'을 게재합니다.

 

 

 

병아리 손자의 어느 봄날

 

병아리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봄날!

학교 앞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살만한 구경거리들이 참 많았습니다.

몇 푼 안 되는 주머니 용돈으로도 살 만한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어요.

설탕 한 스푼 넣고 기계를 돌리면 빙글빙글 돌면서 금세 구름이 되는 달콤한 솜사탕도 정말 신기하고, 어항 속에 담긴 금붕어들이 이리저리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놓칠 수 없었죠.

엄마가 옆에 계시면 당장 달려가 사달라고 졸랐겠지요. 기어코 한두 마릴 사서 물 담은 비닐 어항(비닐봉지)에 담아 가기도 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눈망울 초롱초롱한 초등학교 1학년 아가들이 입학한 지 한 달쯤이면 혼자서 학교를 곧잘 다니지요. 우리 손주가 학교를 잘 다니는지 궁금해서 어느 날 아들 집엘 갔었답니다.

“삐약삐약....삐약삐약....”

어디선가 병아리 소리가 나는 거예요. 아파트 안에서 병아리 소리가...?

"얘들아, 어디서 병아리 소리가 나는 거 아니니?"

"어머니! 그거 진이가 학교 앞에서 사 왔어요!"

"그걸 진이가 샀다고? 돈이 어디서 났어?"

"아, 그거 일요일에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이 마침 주머니에 있었대요..."

그러면서 며느리가 들려주는 병아리를 사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막 교문을 나서는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인 사이로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리니까 너도나도 똘망똘망 눈망울이 커진 아이들, 아예 주저앉아서 병아리를 살펴보느라고 정신이 없었겠지요?

그때 우리 손주 반 아이가 갑자기 우리 손주에게 "야! 너 돈 있니?" 물었어요.

우리 손주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어제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을 운 좋게 발견하고는 "응, 있어!" 대답했지요.

"그럼, 나 좀 빌려줘 봐! 병아리를 사게....."

병아리를 산다는 바람에 우리 손주는 그 아이에게 덥석 만 원을 주었답니다.

 

병아리 장사는 만 원을 받고 병아리 세 마리를 조그만 새장(?) 같은 들것에 담아 주었답니다. 그리고 병아리를 산 그 아이는 인심을 쓰듯, 우리 손주에게 병아리 한 마리를 주었고요. 우리 손주는 그 병아리 한 마리를 들고 와서 애지중지 기르는 중이었어요.

"삐약삐약.....삐약삐약....."

에혀.....돈을 빌려주는 게 뭔지, 언제 돌려받는 건지도 모르고 사 온 병아리 한 마리!

작은 생명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예뻐서 한바탕 웃고는 잘 기르라고 좁쌀 한 봉지를 사주었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오는 봄날 '병아리 사건'입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어요.

등교길에 학교 앞 문구점에서 공책을 산 병아리 손주는 큰 걱정이 생겼어요. 공책을 사고 난 300원이 걱정인 거예요. 담임 선생님은 절대 학교에 돈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단단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집에 갈 수도 없고, 돈을 주머니에 넣어가면 안 되는데.....?

병아리 손주는 할 수 없이 교문 옆에 있는 작은 돌 위에 300원을 잘 올려놓고 교실로 갔어요.

병아리 손주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거든요.

 

수업이 끝날 즈음, 엄마가 마중을 갔어요. 교문을 나온 병아리 손주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으며......

"왜 없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엄마, 나 여기다가 거스름돈 잘 놔뒀는데, 돈이 없어졌어.....!"

"응? 왜 돈을 여기에다 놔?"

"선생님이 돈 가지고 다니지 말랬거든...."

"응... 그랬구나...!"

그리하여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병아리 손주는 그 순수한 마음에 또 작은 상처(?)를 입었어요.

 

이렇게 세상 밖에 처음 나온 병아리 손주....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오는 귀여운 이야기들이죠. 세상의 때라곤 눈곱만큼도 묻지 않은 이런 '순수시대'가 너무 그립습니다. 오직 그 나이 때만 가능한 그 생각들....

병아리 손주는 이제 다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진이의 트레이드 마크 "순수시대" 그 본바탕은 아직도 고이 간직한 마음 착한 청소년이 되었답니다.

<끝>

 

 

 

 

김순희(金順熙) 시인.

경기도 포천 출생 (1953)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 (1999)

계간<한국작가 73회>시부문 등단 (2022 겨울호)

포천문인협회 회원

초등교사로 35년 재직 (포천시, 의정부시, 양주시)

'宋純 詩歌의 특성 연구' 석사 논문 (1999.성균관대교육대학원)

녹조근정훈장 수훈 (2015.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