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5천 년을 열흘에 본 이집트 여행 5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12월 20일


아침에 일어나니 룩소르에서 100㎞ 정도 나일강의 상류로 배가 움직여서 에드푸(Edfu)라는 곳에 정박해 있다. 오늘은 나일강 서쪽에 있는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이라는 묘역을 보러 간다.

 

 

 

이곳은 멀리서 보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인데 피라미드 모양이다. 피라미드를 짓는 것이 너무 과하다 여겼는지 피라미드를 닮은 산을 파고 들어가서 다음 생을 준비할 궁전을 짓고 그곳에서 안식하였다.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장 최근에(1922년), 도굴되지 않은 투탕카멘의 묘를 발견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살던 집이 언덕 위에 앉아서 우리를 맞이한다. 세계인이 지금도 열광하는 투탕카멘의 묘를 고대 이집트 역사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집념으로 발견한 업적으로 그가 살던 집도 관광객들이 들러볼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거대한 바위산에 지금까지 발굴되어 번호가 붙여진 무덤만도 60여 개에 이른다. 대부분 상형 문자의 해독으로 누구의 무덤인지 알려져 있으나 거의 모든 무덤이 이미 도굴된 채 발견되었다. 금은보화가 땅에 가득 묻혀 있는 것을 아는데 호시탐탐 훔쳐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강력한 유혹이었을 거다. 특히 고대 이집트가 여러 왕조를 거치는 동안 치안이 허술한 시기에 도굴되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기원전 16세기에서 11세기, 500여 년에 걸쳐서 왕들과 귀족들이 이곳에 묻혔는데 일찍이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곳은 관광지였다고 한다. 나일강 가까이에 있어 그 당시에도 배로 접근하기 좋아 호기심 많은 로마인을 불러 모았던 것 같다. 여행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쁨은 고대 사람들도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많은 무덤 중에 관광객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무덤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에 우리는 서너 개를 들어가 보았다. 이집트 고대 왕 중에 가장 유명 인사인 람세스 2세의 무덤은 들어가 볼 수 없었으나 무덤 안의 방이 90여 개에 이르며 그의 자손들도 그 방들에 안치됐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한다.


무덤은 지하 궁전이며 현대미술관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그림들을 정성스럽게 부조로 만들고 수천 년을 살아남는 채색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어마어마한 문명의 주인공들이 수천 년 전에 맥이 끊겨 모두 사라져 버려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공수래공수거라며 우리는 이생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통념을 인류 역사상 최고로 강하게 부정하며 무덤 속으로 바리바리 껴안고 떠나간 사람들이 파라오들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에 우리에게 나타나서 세계를 열광하게 한 투탕카멘의 묘는 다른 파라오들의 묘에 비하여 너무나 작은 규모인데도 5천여 점의 유물이 나왔는데 거대한 규모의 파라오들의 묘에서 도굴되었을 유물들의 규모는 어떠했을지 가늠해보기도 힘들다.


경이로운 지하 궁전 방문 후 근처에 있는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으로 간다. 고대 건축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여왕의 신전은 기원전 15세기에 석회암, 사암, 화강암 등으로 지어져 왕의 사적을 기념하고 신들을 경배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그 보존 상태도 놀랍지만, 파라오의 딸로 태어나 이복 남매인 파라오에게 시집갔고 다른 여인이 낳은 남편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파라오가 되자 수렴청정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어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이집트를 통치한 여왕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특히 구약 성경 모세의 이야기에서 유대인의 아들들은 낳자마자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을 피해 바구니에 담겨 강에 떠내려온 아기 모세를 건져서 궁전에서 자기 아들로 키운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은 신이 주는 것이라는 관념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어른들이 나라님은 하늘에서 내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종종 들은 기억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왕은 오늘날에도 천황으로 불리고 있고 가십거리 안주로 전락한 듯한 영국의 왕은 오늘도 영국 성공회 교회의 수장이다. 백성들의 신앙의 대상은 더 이상 아니지만 왕권은 신권이라는 개념은 디지털 시대에도 흔적으로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가 신전에서 공공연히 제사를 받는 존재였으며 벽화나 석상에 표현된 신의 형상과 왕은 동일 인물인 경우가 많다.

 

 

고대 이집트에 여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직도 여러 유적과 기록으로 그 업적과 치세가 남아 있는 핫셉수트 여왕의 존재감은 각별하다. 그녀는 통치 시절 많은 업적을 남긴 유능한 파라오로 기록되어 있다. 여왕의 뒤를 이어 드디어 왕좌에 오른 투트모세 3세가 구약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의 재앙을 겪고 할 수 없이 풀어준 유대 백성들의 뒤를 쫓던 파라오라는 추론도 나온다(1956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십계명>에서는 율 브리너가 람세스 1세로 나온다). 


가나안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운 후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대신 세상의 힘에 의지하는 불신앙으로 갈 때 세상의 힘은 곧 이집트로 표현되곤 한다. 그만큼 고대 이집트는 지구에서 최강 제국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이다.


3,000년 이상의 세월을 머금고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여왕의 신전 규모와 아름다움으로 고대 왕국의 엄청난 부와 문명 수준을 다시 확인한다.


신전에 조각된 기록 중 여왕의 이름을 지워버린 흔적이 선명한 것은 자신을 그동안 핍박하고 권력을 누린 여왕에 대한 투트모세 3세의 복수심 때문이라는 학설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근래에는 두 통치자가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는 여러 정황으로 인하여 왜 여왕의 이름이 지워졌는지는 아직 규명이 안 된 것으로 결론 난 상태이다.


대한민국 역사에도 여러 왕이 있었으나 특별히 얘깃거리 소재로 단골로 등장하는 왕이 있듯이 수천 년 전 파라오 중에도 더 많이 얘기되는 유명 인사들이 있고 핫셉수트도 그중 하나이다.
숙소인 유람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대한 석상 멤논을 만난다. 아멘호테프 3세의 18m 높이의 석상은 세월 가운데 없어진 신전의 입구를 장식했던 작품이었다. 지금은 두 개의 거대한 석상이 평원에 서 있을 뿐이다. 석상의 크기로 신전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방금 보고 온 핫셉수트의 신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을 것 같다.


이 석상들도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해가 다시 떠오르듯 우리도 다시 떠올라 영원히 살 거라는 신앙심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