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일제 강점시 전쟁 등 참혹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경제,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세계 중심 국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됐는가 지역에 있는 대학의 강의를 맡으면 아침 5시대에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분을 만나게 된다. 장사하는 분, 건축 일을 하는 분, 미화 일을 하는 분, 원거리 출퇴근하는 직장인, 학생 등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새벽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6시가 되면 새벽 지하철이 만원인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분이 이들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새벽을 여는 곳으로는 동대문 의류상가, 남대문 시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밤새 불야성인 시장이다. 언제가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전국 각지의 소매상들이 관광버스로 도착하여 물건 구매를 시작하는 때가 하루의 시작이다. 그들이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들인 후 해장국 한 그릇을 들고, 버스에 올라 출발하면 대충 아침 장은 끝난다. 가락동 농수산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등은 거의 24시간 개장 중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지런히 살아 움직이는 곳,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 정직하고 소박하게 땀 흘리며 사는 모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면 원망 얻을 일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가혹하며 그 정도도 너무 지나치다. 사람들은 남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여 평가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함을 넘어 미화적 잣대를 적용하여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정치, 사회에 있어서는 그 정도가 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생각이다. 극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개그적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전통적으로 품격 있는 엄한 집안의 가르침, 훈육의 시작은 바른 마음가짐, 몸가짐이다. 항상 겸손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할 것을 가르쳤다. 큰 뜻을 펼치려면 먼저 자신과 가정을 수양하고 반듯하게 행동하라고 타일렀다. 바로 선비 정신을 가르쳤다. 그런데 20~21세기를 지내는 사이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선비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심하게 표현하자면 ’거꾸로 선비 정신(?)‘이 정치판 등에서 횡행(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함)함을 넘어 일반화하고 있다. 기독교 복음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늘 왼편을 돌려대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희생과 헌
한국 사회는 개인과 가족의 생애주기와 알맞은 발달 과업인 출생, 학습, 결혼, 취업, 독립, 부양 등이 뒤엉키고 그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개인, 사회, 국가 모두 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생애주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가정을 비롯한 혈연 지연의 공동체는 개인이 편안한 휴식을 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삶의 재충전 공간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등 여러 이유로 이러한 공동체가 옅어지고 성격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소위 '나노 사회'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안온한 곳이던 가정, 혈연·지연의 편안한 커뮤니티는 점차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가며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의 일원으로, 가족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개인으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생애주기는 사람의 생애를 개인이나 가족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커다란 변화를 기준으로 하여 일정한 단계로 구분한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발달 단계에 따라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 여섯 단계로 구분된다. 한편, 가족 생애주
인간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거나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크다. 그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데, 필자는 바로 이것이을 인문 역량,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부른다. 인문(人文)의 대중적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일부 인문학 강좌의 대중적 인기가 대단하다. 모 인문학 교수는 TV 인문 강좌 프로그램, 인문 캠프, 인문 교양 강연 등으로 학원가 인기 일타 강사를 능가하여 연예인과 다름없는 스타 교수가 되었다. 또 인문학 소재인 역사, 세계사 프로그램, 국내외 유명 학자의 인문학 강의가 TV의 주요 프로그램이 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 지역의 인문학 아카데미는 ‘삶, 인문학과 만나다’라는 부제로 ‘읽기, 쓰기, 말하기, 철학, 미술, 영화, 여행, 와인 등 음식’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다양한 인문 강좌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문 도시를 지향하며 인문 관련 각종 사업,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다. 인문, 인문학, 인문주의, 인문학적 소양, 인문 교양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인문(人文)’의 뜻과 의미가 궁금하다. 그리고 ‘인문’을 키워드로 하는 다양한 파생어들의 의미와 지향하는 바는
최근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는 흐름 중 하나가 '스페드 업(Sped Up)'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편히 숨 쉴 휴식 공간이 필요한 요즘은 긍정적인 사고로 순수한 마음으로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도 한 방편이 된다. 요즘 가정이나 직장 등 생활이 팍팍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경제가 제일 문제인 듯싶고, 인간관계가 편치 않은 듯싶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미래를 위해서라도 여유 있는 생활이 힘들다.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경제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생활이 편치 않다. 돈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니(절약을 포함하여) 가성비를 따지고, 심지어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는 시성비(時性比)라는 말까지 생겨나 시간까지 아껴 쓰자고 한다. 돈은 물론이고 시간, 노동력, 노력, 열정 등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니 피곤하기 짝이 없다. 효율성 최우선 사회가 되어버렸다. 일을 빨리빨리 해야 함은 물론 두세 가지 행위를 동시에 해야 하니 힘이 든다. 다른 사람보다 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사회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걸으며 스마트폰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며 스마트폰 하는가 하면, 어느
한국인이 변하고 한국 문화와 사회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해가 바다에서 뜰 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몇 가닥 빛이 바닷물을 적시며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에 찬란한 태양으로 어둠을 뚫고 온 바다를 붉게 만들며 불쑥 솟는다. 일몰은 반대다. 서녘 하늘로 천천히 저무는 해와 황혼빛의 시작, 막바지 황홀한 황혼에 이어지는 어스름, 갑자기 닥치는 일몰, 그리고 어두움이다. 일출, 일몰 모두 급박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세상은 극으로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지금 일출과 일몰같이 급박한(?) 변화 속에 놓여 있다.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 격랑의 높이와 속도에 적이 당황해하고 있다. 1990년 초, 필자는 일본 출장 중 일과 후 도쿄의 어느 포장마차에 들른 적이 있다. 6~7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나와 직장동료, 일본인 2명, 국적은 모르나 백인과 흑인 등이다. 옹기종기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은 포장마차에서 옆자리 손님에게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이국적인 자리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 체제라도 권력자나 정치인은 여론, 민심과 함께하기를 소원한다. 그것을 잃으면 결국 권력을 상실한다. 민심과 여론은 그래서 무서운 양날의 검이다 권력과 민심과 여론 민심과 여론은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해서 논하는 게 쉽지 않다. 대한민국 현재의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민심은 일반적으로 권력과 백성이 수직적 관계일 경우 백성의 의견과 관심을 전통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소위 루소가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다는 여론(public opinion)은 서구 시민사회가 형성되며 국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수평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두 용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가려 쓰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엄격하게 구분해서 쓰지는 않고 유사 의미로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는 민심을 공론(公論)으로 보고 백성이 가진 판단이나 의견은 군왕도 거역할 수 없는 신성하고 옳은 것으로 보았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네카나 마키아벨리와 같은 철학자의 어록을 예로 들 필요까지 없다. 민심이나 세론(世論)은 신성한 소리며 현자는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거역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요즘 어떤 모임이든 정치 시사 관련 대화를 삼간다. 대화의 주제는 제한되고 영혼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은 허전하고 도대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듯 싶다. 극단적인 여론의 양극화, 정치적 극단주의가 원인이다. 극단적인 여론의 양극화와 표현의 자유 요즘 어떤 모임이든 정치 시사 관련 대화를 삼간다. 자연스럽고 평안한 대화로 계속 이어지기가 어렵고, 언쟁이나 드잡이가 일어 모임이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식의 진학, 취업, 결혼과 재테크 관련 대화도 일반적으로 삼간다. 대화 도중에 서로 자존심을 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의 주제가 아주 제한되다 보니 모임은 영혼(?) 없고 내용 없는 수박 겉핥기의 신변잡기, 연예인 얘기, 건강·취미 얘기, 개그 등으로 시간 보내며 술 몇 잔 먹고 끝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도대체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 말할 자유가 있는지 싶다. 답답한 심경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라고 외치고 싶다. 가정, 사회, 국가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 시름, 우울함을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내 속내를 속담으로 비유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가 딱 맞는다. 친구나
어른이 된 나는 어느 해 4월 그곳을 일부러 다시 찾았다. 아! 콧등을 스치는 온갖 내음들이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어머니 손길보다 더 다사롭게 느껴지는 봄철 꽃바람은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나를 싣고 간다. 지루한 겨울, 늦게 시작하는 봄 내 고향은 원산의 영흥만(永興灣)에서 시작하여 포천, 의정부 그리고 서울을 거쳐 서해안까지 길게 전개되는 좁고 낮은 골짜기, 즉 추가령 지구대로 무서운 삭풍의 통로가 된다. 그래서 겨울은 일찍 시작되어 3월까지 지루하게 계속된다. 그리고 4월이나 되어 시작하는 봄은 짧게 끝난다. 마을은 농촌이라고 하지만,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정확히 표현하면 ‘농산간 마을’이 맞을 것이다. 이런 곳의 기후 특징은 겨울이 매섭게 춥고, 눈이 많이 자주 내린다는 것이다. 요즘은 눈이 그리 많이 오지 않지만 1960~1970년에는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많이 내려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가는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학교 가는 길’이었다. 여름철 폭우가 무섭지만 겨울의 폭설은 더 길고 독하고 무섭다. 빗물은 흘러 내려가면 끝이기에 폭우는 그치면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눈은 계속 쌓이기 때문에, 나와 자연을 감금하여 고립시키는 등 뒤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은 너무 심각하다. 서로 역지사지의 이해와 배려로 포용과 소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집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 2010년 초반, 40%를 넘는 시청률을 올리던 모 방송 인기 홈드라마의 배경이 된 어느 단독 주택의 거실 중앙의 벽에는 투박한 붓글씨로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라고 쓴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늘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고, 모두 그 이유와 의미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드라마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식구 간의 가족 문제로 인한 갈등을 되짚어 보고 사랑과 배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유쾌한 홈드라마였다. 드라마 대가족의 어른 역할을 하는 탤런트 ‘장용, 김해숙, 나문희’는 식구 간 갈등과 문제가 생길라치면 ‘입장 바꿔 생각하자’ 가훈이 걸린 거실 앞 응접실에 관련 식구를 모두 불러 앉혀놓고, 가훈의 뜻과 배경을 설명하며 훈계와 설득으로 갈등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 드라마의 ‘가훈 - 입장 바꿔 생각하자’ 자체가 언론의 피처 기사가 되곤 한 기억이 떠오른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의 한자 고사성어가 역지사지(易之思之)이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