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폐단이 심각한 우리 말과 글의 혼란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잘못된 말과 글은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민, 우리 사회가 모순과 잘못된 현실을 고치는 것을 사필귀정이라는 하늘의 순리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쟁이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큰 시련과 형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 본 스마트폰 카톡 속의 문자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공지 사항 알림과 문자 댓글

-ㅇ

-ㅇ

 

안부 인사와 문자 댓글

-ㅈ

아름다운 꽃 그림과 좋은 글을 받은 후의 답례 문자

-B6

-ㄴㄷ

 

카톡 속 문자 댓글은 암호나 다름없습니다. 뜻을 알 수 없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시원스레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지한지 아니면 언어 사용에 있어 시대 조류에 뒤진 게 아닌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합니다.

 

전광석화 같은 전자통신기술의 발전은 지구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합니다.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산업, 정신세계, 생활 습관, 인간관계 등 모든 걸 통째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되었던 인간의 삶의 공간이 인터넷 등 가상공간과 융복합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나온 2000년 역사를 뛰어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말과 글의 변화도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말과 글의 축약(줄임과 생략 등) 현상’과 ‘거칠고 강한 음으로 바뀌는 현상’, ‘빠른 발음’ 등이 대표적 변화이지만 필자가 언어학자가 아닌지라 깊이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위 소통에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몇 가지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사람에 대한 호칭과 지칭, 바로 써야 합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이 좀 나이가 들어 보이면 ‘이모, 고모’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화되었습니다. 자신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면 성별 불문하고 언니, 오빠라고 부르곤 합니다. 연로하신 분에게는 할머님, 할아버님 호칭을 써도 괜찮습니다. 노인에게 붙이는 높임말로 굳어졌다는 생각입니다.

 

방송에서 사회자가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분에게 ‘어머님,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이 이제 일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 관계 없는 분에게 어머님, 아버님이라 부르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낳아주신 진짜 부모님 기분과 생각은 더욱 그러시겠지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언어 현상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돌이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소통에 장애가 되고 국어의 체계와 질서를 혼란케 하고 있으니 시급히 대책이 필요합니다.

 

국민 가수, 국민 탤런트, 국민 엄마, 국민 손자, 국민 효녀 등처럼 특정인 호칭에‘국민’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유행입니다. 방송에서 이러한 말들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검증 없이 마구잡이로 이런 호칭을 쓰고 있는 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정인의 대중성 혹은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정치, 사회, 문화 관련 일부 단체, 집단은 국민을 빙자(?)하여 특정 생각, 의견, 정책 등을 공식화하거나 정당화 또는 여론화를 시도합니다.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보편적 이데올로기로 왜곡하려 합니다. 공적 검증이나 절차 없이 함부로 국민의 대변인, 국민의 대표, 시민의 대표 등의 명칭을 사용함은 어찌 보면 과장, 허위로 사기 범죄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관련 단체, 구성원 간의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는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말과 글, 사실을 왜곡하여서는 안 됩니다>

청과물 시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강조하기 위해서 상품 가치를 과장합니다. 꿀사과, 꿀 대추, 꿀참외, 설탕 알타리 등처럼 말입니다. 이는 어른들이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며 하는 말 ‘어이, 시원하다’, 뜨거운 해장국 등을 드시며 ‘시원해서 속이 뻥 뚫린다’라는 말처럼 강조하기 위하여 과장하거나 반어적으로 쓰는 표현 등인데 말 개그나 애교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말, 즉 왜곡하는 말로 특정인에게 이득을 주거나 해를 가하는 표현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하는 방송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대중가요 가수를 대단한 명곡을 부른 실력 있는 가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래 실력 또한 그렇지 않았고 관객 반응도 시큰둥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황제, 제왕, 여왕 등의 명칭을 가수 등 연예인, 체육인에게 검증 없이 마구 붙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의 유명 가수, 예를 들면 ‘마돈나, 마이클 잭슨, 비지스, 비틀즈, 시나트라’ 등의 이름을 빌려서 ‘한국의 마돈나’ 등으로 호칭하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크기를 확대 또는 과장하거나 축소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마무시(방언)하게, 엄청나게, 매우 매우, 굉장히, 하늘 끝까지, 땅끝까지’와 같은 표현으로 크기, 정도 등을 과장하거나, ’손톱, 눈곱, 일원, 한 푼, 조금, 하나‘와 같은 표현으로 정도를 축소하려 합니다. 때로는 애교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 사고의 피의자, 명백한 잘못으로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정치인, 경제인 등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 같은 표현을 쓰며 잘못을 전면 부인하며 뻔뻔스럽게 행동하다 들통나 결국 국민의 공분을 산 사례가 있습니다.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던 정치인이 ’일 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다 그렇지 않음이 들통난 난 일이 생각납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혀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섭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의 말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하거나 해를 가한 사례를 수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요즘 우리나라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 미디어 등 세태를 냉소적으로 꼬집는 말이겠지요. 지상파 방송, 케이블 방송,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튜브 등 방송 미디어, 신문, 잡지 등 인쇄 미디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소수 미디어 매체는 본분마저 망각하고 거짓, 왜곡 정보를 뉴스로 보도해 국민적으로 지탄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정보는 시빗거리가 되다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과장하여 우리 사회를 ’서울 안 가본 사람하고 가본 사람이 다투면 가본 사람이 지는 사회‘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 쏟아낸 정보와 관련한 진실과 거짓 공방으로 소모적 갈등이 끊임없이 일고 있습니다. 국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국력마저 낭비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미디어를 여론전의 무대로 하는 ’말과 글‘을 매개로 한 정치판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그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서울 광화문, 용산, 서초 등 도처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조차 그 진위를 가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민적 갈등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으로 나치 독일 히틀러의 일급 참모인 괴벨스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대중은 그저 빵 한 조각과 왜곡된 자극적인 정보만 주면 충성스러운 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 거대한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그것을 믿게 된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한 그의 말과 글, 그것을 믿게 된 나치 독일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참혹하게 학살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터넷 등에서 괴벨스가 인기 검색어 가운데에 속해 있습니다. 이 경향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잘못된 말과 글은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항상 속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민, 우리 사회가 모순과 잘못된 현실을 고치는 것을 사필귀정이라는 하늘의 순리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쟁이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큰 시련과 형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말과 글은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올바른 사용은 소통을 투명하게 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증진합니다. 거짓된 말,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축소된 말, 정확지 않은 말, 사칭하는 말 등은 소통을 불투명하게 하고 사회의 불신을 키웁니다. 그러한 말과 글은 나아가 무고한 많은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