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신읍동에서

나의 이야기 2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신부님은 나에게 성당에 나가라던가, 성경책을 읽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헤어질 때 나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면서 이 한마디는 언제나 빼놓지 않으셨다. "Tai, be good!"

쉬운 영어인 듯 보였지만 내가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이 지난 뒤였다. 맨 처음에는 '내가 좋다는 뜻인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말이 '승태야, 착하게 자라라'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을 지난 뒤였다.

 

 

신부님은 예쁜 포장지에 싸인 사탕이나 쿠키를 상자에서 꺼내주며 이렇게 설명하셨다. "타이(내 이름의 끝 자 '태'를 이렇게 부르셨다), 이 쿠키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님이 추수감사절 기념으로 각국에서 선교 사업을 하는 신부님들에게 보내준 선물이란다. 자, 한번 먹어봐라."

 

사탕과 과자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렸다. 나는 그 과자의 맛보다는 그 과자를 싸고 있는 예쁜 포장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 슬그머니 빈 포장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브라이언 신부님은 내가 과자를 더 먹고 싶어서 그런 줄 알고 헤어질 때면 언제나 내 주머니에 과자를 한 움큼씩 집어넣어 주셨다.

 

브라이언 신부님의 책상에는 낡고 오래된 지구본이 있었다. 신부님은 지구본을 몇 바퀴씩 돌리면서 미국과 영국, 남미의 브라질과 칠레, 아시아의 여러 나라, 그리고 아프리카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브라이언 신부님의 방은 소년에게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꿈을 키워준 방이었다. 그 덕에 내가 지금까지 30여개 국을 돌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캄캄한 밤이면 정원으로 나와 북극성을 비롯해 전갈자리, 삼태성 등 하늘의 별을 공부했다. 신부님은 나에게 성당에 나가라던가, 성경책을 읽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헤어질 때 나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면서 이 한마디는 언제나 빼놓지 않으셨다. "Tai, be good!"

 

쉬운 영어인 듯 보였지만 내가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이 지난 뒤였다. 맨 처음에는 '내가 좋다는 뜻인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말이 '승태야, 착하게 자라라'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을 지난 뒤였다.

 

브라이언 신부님과 헤어지면 나는 그 커다란 파란 문을 뒤로 하고 또다시 돈암동 달동네로 돌아가야 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 그리고 여섯 식구가 한방에서 이리저리 포개어 자던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브라이언 신부님의 방에서 꿈을 꾸었던 세상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갈 때는 레테의 강을 건넜지만, 돌아올 때는 그 강을 건너지 않았던 것이다.

 

가난 때문에 나는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싶었다. 그런 나의 처지를 잘 알았던 신부님은 가끔 등록금을 보태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타이, 이건 내가 주는 돈이 아니란다. 하느님께서 착한 네게 선물하시는 거야.”

 

난 웃으면서 그 돈을 받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신부님은 나의 등을 토닥거려 주곤 했다. 나는 신부님도 조금이지만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훨씬 후에나 알았다. 그리고 나처럼 신부님께 용돈과 학비를 받는 달동네 아이들이 꽤 여럿이 된다는 사실과 함께.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때마다 브라이언 신부님의 골롬반 수도회의 정원은 갖가지 다른 빛깔을 띠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었고, 장미와 벚꽃이 연이어 활짝 피었다. 여름이면 히아신스, 수선화, 달리아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그 꽃들 가운데 서면, 마치 내가 남국의 이름 모를 아름다운 정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가을이면 국화가 만발했다. 난 노랗고 풍성하고 소박한 국화를 좋아했다. 서정주 시인의 돌아앉은 누님 같은 꽃이었다. 겨울이면 온통 백색의 세계였다. 그때면 난 알래스카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무궁화였다. 성모님 상 앞에 피어있는 무궁화는 학교 조회 시간 때마다 매일 부르는 애국가에 등장하지만, 당시에는 보기 힘든 꽃이었다. 난 왜 외국 신부님이 사시는 이곳에, 그곳도 성모님 상 앞에 무궁화꽃이 피어 있는지 한참 동안 궁금해하곤 했다.

 

골롬반 수도회의 정원 한가운데에는 탁자가 있는 하얀 벤치가 있었다. 그 벤치가 바로 세상의 어느 것에도 부럽지 않은 나의 멋진 공부방이었다. 달동네의 좁은 우리 방에는 책상도 없었기에. 난 그곳에서 꽃들의 향내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신부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갔다. 그렇게 세 해가 지나갔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