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혜송 김순희 수필, ‘천상병 귀천 공원’을 만나다

시인 · 수필가, 포천문인협회 이사 · 한국작가 정회원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쐬러 강화도로 향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채우지 못한 헛헛함이 자꾸 가슴속에 열불을 피워 가만히 있어도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고 있으니,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어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것이다. 

 

강화도 중에서 낯익은 곳은 동쪽 해안도로였지만, 해안도로는 바다와 좀 거리가 있고 길게 뻗은 해안도로가 아니어서 늘 바닷물이 빠진 개펄만 바라보고는 아쉬움이 가득한 채 발길을 돌리곤 했다.

 

오늘은 욕심을 부려 해안 서로 쪽으로 가보고 싶어서 네비게이션에 ‘석모도’로 쳤다. 강화도는 섬이어도 넓은 논이 많고, 순무, 포도, 속노랑고구마 산지로 유명해서 가는 곳마다 농작물을 파는 가판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강화도 마니산과 고려산 이런 이정표들을 지나 외포리 포구에 닿았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 석모도엘 갔었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에 앉아 석모대교를 건넌다.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석모대교를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넓어지고, 바깥으로 나와 찬 바람을 쐬는 동안 추위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같은 해안도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곳곳마다 해안을 지키는 작은 초소들이 많았고, 작은 선착장들과 고깃배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이름도 낯선 포구의 이름을 일일이 읽어보며 휴가철에 이런 곳에서 묵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길을 따라가느라고 지루한 줄을 몰랐다.

 

오래전에 왔던 강화도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섬 전체가 관광지가 되어 지중해의 산토리니를 닮은 찻집도 있고, 새롭게 지은 숙박시설들도 명실공히 휴양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침, 금빛 노을이 지는 바다를 감상하느라 천천히 해안로를 달리는데, 도로 바로 옆에 ‘천상병 귀천공원’이란 하얀 글씨가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아니, 천상병 시인이 왜 여기에?’ 너무 뜻밖이라 얼른 차에서 내리니, 입구에 작은 체구의 천상병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어깨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천상병 시인이 바로 이 건평항에 머물며 지은 시가 ‘귀천’이라는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천상병 시인은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랐다. 이곳 강화도 건평항은 가난한 시인 천상병이 마산 바다가 그리워 자주 찾았던 마음의 고향이었다. 어느 날 동향인 시인 박재삼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이곳에서 쓴 시가 바로 ‘귀천’이었다.

 

1967년 천상병은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등 폐인이 되어 세상에 행방이 묘연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박재삼은 천상병 시인이 죽은 줄 알고 ‘귀천’을 유작으로 발표하였고, 천상병 시인의 첫 시집 <새>가 유고 시집 형태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천상병의 유고 시집이 출간된 전무후무한 일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천상병 시인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일설에 의하면 여기 건평항에 머물던 그는 차비가 없어서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천상병 시인의 동상은 막걸리 한 잔 들고 파안대소하는 고무신 차림의 촌로 모습이다. 이 천상병 시인과 어울리는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벤치에 앉아 서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이 콘셉트만 봐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지 쉽게 이해가 되었다.

 

내가 아는 천상병 시인은 만년에 의정부에서 살았다고 하여 해마다 의정부시에서는 ‘천상 음악회’ ‘천상 백일장’ ‘천상 詩 문학상’등 문학 행사를 벌이고 있었던 터라 남다른 호기심에 ‘천상병 귀천공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의정부시에서는 천상병 시인의 문학작품들을 모아 천상병 문학관을 세우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그의 고향인 마산에서도 천상병 문학관을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산문학관에 육필 원고 등 자료가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스승 김춘수 시인이 천상병 시인의 마산공립중학교 5학년(고2) 때 담임이었으며,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다고 하니, 천상병 시인의 문학적 태생은 마산이다. 마산고 교정에 '스승 김춘수와 제자 천상병의 만남‘시비가 세워졌는데, 김춘수 시인의 '꽃'과 천상병시인의 '피리'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문학적 소양을 쌓는 기회가 되었다. 살았을 때는 변변치 못한 삶을 살았던 천상병 시인이 성치 못한 몸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맑은 시를 써서 많은 사람을 위로한 것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너무나 천진난만한 그 표정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따라 웃게 될 것이다. 그런 그는 인생을 ‘소풍길’에 비유하여 시를 썼으니, 삶의 저 너머 또 다른 인생 모습을 상상하며 여유롭게 인생을 즐겼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사후에도 시혼(詩魂)으로 살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천상병 시인은 마산에서, 의정부에서, 강화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 곁에 함께 머문다.

 

모처럼의 짧은 여행길에 천상병 시인의 육필 시를 마주하고 읽으며, 그의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언젠가 다시 건평항으로 돌아가, 고향의 품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시는 이런 마음으로 진솔하게 써야 하는구나!’ 감동을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마음이 뿌듯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그 짧은 시가 입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혜송(慧松) 김순희 시인, 수필가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석사)

∙한국작가 詩, 隨筆 등단

∙한국작가 詩 부문 신인상, 隨筆 부문 신인상

∙스토리문학 隨筆 당선, 스토리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포천문학 대상(2024)

·저서 시집『클림트의 겨울 숲에서』

∙한국문인협회 시 분과 정회원

∙경기문인협회, 포천문인협회 정회원(이사)

∙한국작가 정회원, 스토리문학 정회원, 순수문학 정회원

∙한국문인협회·순수문학 동인/ 한국작가 사화동인/ 스토리문학 동인

 

<작품발표활동>

∙詩의 四季(2024 한국문협사화집), 春夏秋冬(2025 한국문협사화집),

경기문인대표작품선집(2025 경기문협) 월간문학(2026. 1월호)

순수문학(한국문협 시 분과 2025 사화집)

한국작가동인사화집(2025)「특별한 우리」

∙ 문예지: 스토리 문학, 경기문학, 포천문학(25, 26, 27집)

∙ 포천문예대학작품집, 포천좋은신문, 포천신문, 포천소식지, 포천예술지에 시, 수필 발표

∙ 포천문협시화전 참여: 포천예총 삼색어울림전/ 물골연등제/ 구절초 거리 시화전/ 고모리호수 시화전/ 산정호수 억새꽃 축제 시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