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이벽, 19세에 '천주실의' 공부했다는 기록 첫 발견

김승한 이벽 유적지 해설사가 '내암 최좌해의 맹자학 연구' 논문에서 찾아내

▲사진 위, 이벽 성지. 가운데, 광암 이벽. 아래, 천주실의.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이벽(李檗, 1754-1785)은 한국 천주교의 성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런 이벽이 열아홉 살 되던 해인 1772년에 이미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보았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발견되어 학계와 종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기록은 최근 포천문화관광재단에서 이벽 유적지 해설사로 근무 중인 김승한 씨가 '내암 최좌해의 맹자학 연구'(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김도혁의 2023년 석사학위 논문)에서 찾아냈다. 천주실의는 1607년 중국 북경에서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 신부가 한문으로 출간한 천주교 교리서다. 

 

춘천 최좌해와 이벽의 만남

'내암유사(乃菴遺事)의 연보(年譜)에 의하면, 영조 48년 임진년(1772) 당시 내암 최좌해 선생의 나이는 35세였다. 그는 춘천의 청평산(淸平山) 선동암(仙洞菴)에서 독서하였다. (중략) 이 해에 한양의 이벽(李蘗)이 찾아왔는데, 나이는 19세이고 재주와 명망이 있었다. 내암 선생이 그와 대화하고, 물러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이벽)는 총명하고 기(氣)를 숭상하니 끝내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뜻이 너무 높고 자질이 너무 맑다. 옥은 맑아도 깊지만, 수정은 맑기만 해서 너무 맑다. 너무 맑으면 실질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만약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장차 끝내 우리 도가 평범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쉽게 이교의 높고 기이함에 빠져들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예전에 나는 '천주실의'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교(異敎)였다. 이 도를 행하는 자는 임금을 시해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10여 년 후에 서구의 종교(가톨릭)가 과연 세상에 횡행하였는데, (이 일은) 실로 이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논문은 서울에 거주하던 이벽이 춘천의 선동암에서 공부하던 내암 최좌해(1738〜1799) 선생을 찾아가 천주실의에 대해 토론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최좌해와 이벽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16년이라는 차이가 난다.

 

천진암 강학회보다 7년 앞서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에서 열렸던 강학회는 1777년 정조 1년에 양근에 사는 권철신의 주도로 권신일, 이승훈,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등 남인 소장 학자 10여 명이 서양 학문과 천주교리 연구를 시작한 모임이었다. 이 강힉회 모임 소식을 들은 이벽은 몹시 추운 눈길을 단신으로 100리나 달려가 이 모임에 참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벽은 1779년 열린 천진암 강학회에서 천주실의를 토대 삼아 서학(천주교) 사상과 유교학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밤샘 토론을 이끌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가 이 무렵에 이 책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이번 논문의 발견으로 그는 7년 앞선 1772년 19세 때에 이미 천주실의를 공부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처음으로 증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