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기도 과천시 이민정책연구원에서 '함께하는 다문화네트워크'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포럼이 열렸다. 신상록 이사장의 인사말과 반기문 전 UN 제8대 사무총장의 축사로 시작된 이번 포럼은 국내 최초로 '기후 위기 시대의 이민 정책'을 주제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포럼의 첫 발제를 맡은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대사(현 유엔글로벌콤팩트 사무총장)는 "인류의 생태계 파괴가 야기한 기후변화는 이제 전 지구적 생존의 위협"이라며 기후 난민 문제를 조명했다. 그는 "현행 1951년 난민협약은 박해로 인한 난민만을 규정하고 있어,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놓여있다"고 지적하며,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이어진 두 번째 발제에서 현한나 디아스포라 이슬람 연구소 대표(전 장신대 교수)는 기후 위기 속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을 조명하며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 큰 주목을 받았다. 현 대표는 "베트남 메콩강 유역의 해수면 상승 문제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는 동안, 정작 북부 고산지대 소수민족의 가난과 환경 난은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폭염 속 열악한 주거와 노동 환경에 노출된 한국의 계절근로자, 유학생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현 대표는 '상생형 스마트팜 인재 협약'을 제안했다. 한국이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베트남에 스마트팜 기술을 전수하고 있듯이, 이 기술을 관리할 동남아 인재들을 '농업기술 특화 비자'로 초청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방 소멸 위기 극복 ▲미래 농업 인력 확보 ▲안정적 식량 주권 확보라는 한국의 과제와 ▲기후 위기 피해국의 안정적 이주 경로 마련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윈윈'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전국 6만 6천 채가 넘는 농촌 빈집을 공공 임대주택으로 활용해 이들의 주거를 지원하고, 민간 브로커 개입을 원천 차단하며, 종교·시민단체의 정착 지원이 결합한다면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 손치근 전 카자흐스탄 총영사는 태평양 도서국 투발루의 '디지털 국가 선언'은 한국이 재해 지역 국가와의 협약을 확대할 기회임을 강조했으며,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실장은 "한국 사회는 난민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체류도 쉽게 전망할 수 없지만, 한국이 어떤 정책을 마련할 것인지 기후 위기는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안일선 '함께하는 다문화네트워크' 이사와 박찬식 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 소장은 현한나 대표의 제안에 깊이 공감하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종교계의 역할과 이주민과 상생하는 기업 모델 개발에 민간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포럼 좌장을 맡은 이규홍 이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국내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고려할 때, 기후 위기 이주민을 난민으로 수용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그러나 "호주-투발루의 '팔레필리 협약'처럼 '특별 인도적 체류' 자격을 부여하거나, 현한나 박사가 제안한 특별자격 인도적 체류와 전문 기술 인력 유치 방안은 엄격한 난민 심사를 우회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청중석에서도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기후 위기 취약성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캐나다처럼 시민·종교단체가 여론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갈 방안은 무엇인지 등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포럼은 예정된 5시를 넘기면서도 제안할 점과 질문이 청중석에서 계속 이어졌고, 주최 측 신상록 이사장과 좌장의 감사 인사로 뜨거운 열기 속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대안들이 정부의 이민 정책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실질적인 법과 제도로 이어져 기후 위기 시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안과 미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