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 해는 불안한 전망이 이어지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자. 실천이 가능한 것을 차근차근 실현하며 임기응변에 능한 뱀처럼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
만만치 않은 일 년이 예상된다고 하는데......
올해는 을사년, 푸른 뱀(靑蛇)의 해이다. 을사년과 관련한 글을 쓰려고 하니 120년 전인 1905년, 을사오적이 우리 외교권을 일제에 넘겨 대한제국을 대외적으로는 그들의 보호령, 즉 속국이나 다름없게 만든 ‘을사늑약’이 떠오른다. 을사오적은 대한제국을 일제에 팔아먹은 바나 다름이 없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매국노 이완용만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도 같은 자들이다.
60년 전인 1965년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이다. 제3공화국 박정희 정권 시에 한일 협정, 한일 국교 정상화, 비둘기부대 첫 베트남 파병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올 한 해도 국내외 정세는 물론이고 우리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이 만만치 않게 시끄러울 전망이다.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는 정상적이고, 평화로웠던 적이 거의 없으니 고대 삼국시대로부터 천여 년이 넘는 두 나라 간의 업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해답을 찾기 어렵다. 그건 그렇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국가 경제는 특별하게 나쁘지 않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생활 경제, 가정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상황도 설상가상 왜 이리 어렵고, 힘들어 울화가 치미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고비용, 높은 실업률, 시원치 않은 밋밋한 내수 경기, 위축된 소비 심리, 저임금, 저수익 등......
2025년은 국가적으로 큰 위기는 없는 듯이 보이나 정치 사회 부문은 문제가 큰 듯이 보인다. 민생을 외면하고 극한 싸움으로 치닫는 정치 상황, 그에 부화뇌동하여 양극으로 편을 갈라서 갈등하는 사회 상황이 그렇다. 이 같은 국내 상황에 더욱 어려움을 가중할 것으로 보이는 게 미국 대통령 트럼프 정부 출범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또 올 한 해는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국가적 이벤트도 없어 변수가 없으니 걱정이다.
뱀처럼 지혜롭게, 그러나?
“내가 너희를 뱀처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성경 말씀이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뱀같이 지혜롭다’라는 말은 썩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비유 중 뱀처럼 지혜로워지라고 하셨던 것일까?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때 작은 구멍만 있어도 빠져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상황에 잘 적응하는 임기응변에 능한 뱀같이 원수들의 계교에 빠졌어도 잘 헤쳐 나가라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뱀같이 머리만 쓰다가는 잘못 하면 쉽게 타락하여 망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뱀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계속 허물을 벗는다. 그리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모든 활동을 멈추고 동면(겨울잠)에 접어든다. 상황이 호전되어 기온이 따뜻해지면 체온을 높여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탁월한 후각과 촉각, 심지어는 혀의 감각을 동원하여 먹이와 천적의 정보를 수집하여 생존해 나간다.
2025년은 격변의 시기인데 경제는 지루하고 밋밋할 것으로 전망한다. 경기 회복 등 긍정적 조짐은 보이지 않고, 정치, 사회 부문은 부정적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응이 매우 어려울 듯싶다. 그저 오감을 모두 동원해 상황을 점검하고, 주변을 잘 다지고, 마음을 편히 갖고 작은 것일망정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욕심과 교만, 음모와 계략, 소탐대실은 금물이다.
갖고 있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잘 관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가성비(價性比)라는 말이 인기어이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 즉 어떤 품목이나 상품에 대하여 정해진 시장 가격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능이나 효율의 정도를 말한다. 시성비(時性比)라는 말도 생겼다. 시간 대비 성능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로, 가성비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시간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등장한 신조어이다. 모두 돈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사용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익을 거두고자 하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짠돌이 전략에서 나온 말이다.
갖고 있는 능력이든 에너지든 돈과 시간이든 효율적으로 잘 배분하여 사용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때이다.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잘 살펴보고 무리하지 않고 적정하게 행위하고 투자해야 할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아무리 자그마한 것이라도 계속 반복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비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뱁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몸집이 약 13cm밖에 안 되고 다리도 매우 짧은 새이다. 반면, ‘황새’는 몸집이 약 112cm이고, 몸집에 맞게 다리도 길다. 다리가 긴 황새를 다리가 짧은 뱁새가 따르려면 황새걸음 폭에 맞춰 다리를 넓게 벌려야 하니까 가랑이가 찢어질 수밖에 없다.
이 속담은 자신의 능력이 안 되는데도 억지로 남을 따라 하다가는 큰 피해를 보니 분수를 지키라는 뜻이다. 지나친 욕심은 불행을 가져오는 법이다. 두 속담은 경제 상황 등에 있어 어려움이 예상되는 올 한 해, 특별히 가슴에 담고 곱씹어야 할 속담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루하고 밋밋하나 무탈한 평상의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
일본에서 제작되어 2024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상영되어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든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라는 영화의 내용이 작년 우리 젊은이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 바 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반복되는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출근해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한다. 편의점표 점심을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찍고,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을 기울인다.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나 큰 근심 없이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누구보다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그의 하루는 반짝인다. 우리의 하루가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묻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내용이다.
어느 20대 젊은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무 행복한 것도 원하지 않아요. 오늘은 밋밋하고 무탈한 하루였어요. 내일도 특별한 일이 없이 그냥 딱 오늘만 같으면 좋겠어요. 큰 행복이나 대박이 있으면 다시 평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힘들어요.“
매일 매일 모두가 최선을 다해 눈을 부릅뜨고 오늘을 살아가는 숨 가쁜 삶,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는 오늘의 삶은 간절하게 숨구멍과 탈출구를 찾는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올해는 아무튼 변해야 한다
시대 상황이 어렵거나 답답하고 단조로울 때 일반적으로 자극적인 것, 파격을 찾는 경향이 있다. 맛으로 치면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맛과 향을 선호한다. 요즘이 그렇다. 유행 속의 젊은이는 더 강한 맛과 향의 탕후르, 마라탕, 훠궈에 환호한다. 먹방 프로그램이나 길가의 음식을 더 예로 들 필요까지 없다. 행동이나 말도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다. 성과 관련해서는 노골적 선정적 수위가 더욱 상승한다.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강도의 질주가 멈추지 않는다. 가장 큰 영향력의 TV 영상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압도하고 있다.
일부 정치, 언론 등은 노골적으로 국민을 양극으로 편 갈라 대립시키려 하고 있다. 이완과 긍정, 타협과 화해, 적정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다. 더 극단으로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다. 최상만을 목표로 바라보다 절망적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상이 아니라 최적의 타협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 국민 모두는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과 가족의 안전에 신경 쓰고, 여유를 찾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했으면 싶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주변을 살피지 않고 그것만 들여다보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사람, 횡단보도 등 도로를 걷는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을 뜻함)들은 자신의 안전은 물론 다른 사람의 불편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버스에 오르면서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하며 다른 한 손의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하다 넘어지신 어르신, 스마트폰을 보며 위태롭게 전동 킥보드를 타는 젊은이는 제발 이제 그런 위험한 행위를 멈추고 여유를 찾아야 한다.
또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 나는 물론 타인의 모습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으면 싶다. 상황이나 행위 등을 피할 수 없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했으면 싶다. 또 최상만을 목표로 삼아 쟁취하려 전투하듯이 살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면서 적절하고 실천이 가능한 것을 차근차근 실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